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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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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너머 생명 연장의 꿈

깊은 맛 자랑하는 신림동 나주곰탕
등록 2011-12-09 10:37 수정 2020-05-03 04:26

지난 월요일 퇴근 뒤 집에 오니 집안은 벌써 2차 호프집 분위기. 와잎이 아들의 여자친구 승주 엄마와 치맥 술판을 벌이고 있던 것. 아들녀석은 여자친구와 물컵을 들고 “건배~” 하며 ‘엄마아빠놀이’(진정 엄마아빠구나~)를 하고 있고, 와잎은 “괜찮아~”를 연발하며 나를 보고 머쓱해하는 승주엄마에게 어서 마시라고 채근하는 콩가루 집안의 흥겨운 저녁 풍경. 집안 꼬라지하고는~ 술시도 지났는데 웬 술판이냐~는 급짜증을 뒤로 하고 승주엄마에게 말했다. “내 집처럼 편하게 드세요.” 와잎은 속도 모르고 “자기도 이리 와서 한잔해~”라고 말한다. 술집을 차리는 건 어떠니~. 글고 니가 계주니? 아주 이어달리기를 하는구만~.

그렇게 유부남 하나와 유부녀 둘이 술을 마셨다. 대기업 사원인 남편이 매일 늦게 들어와 얼굴 보기 힘들다는 승주엄마의 푸념을 듣던 와잎이 득달같이 말했다. “그래도 남편이 돈 많이 갖다 주잖아~.” 이윽고 나를 보며 “최악은 돈 적게 갖다 주고 늦게 오는 거야”라고 덧붙이는 촌철살인의 센스. 날 왜 불렀니? 오늘도 늦게 올걸 그랬네. 근데 적은 돈으로 만날 술먹는 니가 최악인 거 모르니~. 그날 결국 술 못 먹는 승주엄마는 새벽녘에 퇴근한 남편 차에 실려 귀가했다. 두 번에 걸쳐 잠든 아이와 실신한 아내를 차에 태우느라 초면의 그 남편은 10분 만에 10년이 삵어버렸다. 매일 야근은 일도 아니죠? 아내를 둘러업고 인사하는 그에게 와잎은 “승주엄마한테 좀더 잘 해주라”고 당부했다. ‘너나 잘해주세요~.’

다음날 민방위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니 와잎이 말한다. "남편이 잘해준다고 했대~." 술 못 먹는 아내가 처음으로 떡실신을 했는데 달라지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겠냐. 나 같아도 업고 다니겠지 싶었다. 와잎이 묻는다. “만약 내가 술 끊으면 자기도 나한테 잘해줄거야?” 또 술 먹었냐? 아직도 술이 안 깼냐? 우리 헛된 꿈은 쫓지 말자~. 와잎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내가 술을 끊다니 안 되겠지? 안 되겠다. 사람 불러야지~.” 와잎은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나는 술을 먹어야 된다며 저녁 먹으러 나가자고 보챘다. 좋은 일 있니? 무슨 경사났니?

아들녀석을 데리고 와잎과 함께 도착한 곳은 신림동 나주곰탕. 와잎은 수육과 곰탕을 주문했다. 수육은 부드러운 육질에 적당한 육즙으로 맛이 고소했다. 짭조롬한 국물 맛이 일품인 곰탕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들자 숙취로 요동친 속이 조용히 다스려졌다. 와잎이 웃으며 말했다. “한잔 해야겠지?” 아, 돌고 도는 알코올의 뫼비우스 띠여, 끝이 없는 음주의 윤회여~. 문득 오후 민방위훈련에서 배운 심폐소생술이 생각나, 그 중요성을 전했다. “내가 갑자기 쓰러지면 자기 밖에 날 살릴 사람이 없어. 집에 가서 가르쳐줄 테니 배워봐~” 와잎이 소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별로 안 살리고 싶을 거 같은데~. 우선 소맥이나 말아봐~.” 완죤 적과의 동침이구만~. 나 죽으면 떡 돌릴 여자구만~. 내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난 부지런히 소맥을 말았다. 구걸하듯 심폐소생술을 전수한 그날, 난 동네 수퍼로 두 번이나 술심부름을 가야했다. 술상납으로 이룬 ‘생명 연장의 꿈’을 부여잡고 난 절규했다. 심폐소생술보다 인생소생술이 필요해~. 문의 02-886-9353.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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