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남편 X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했어요. 회사로 무대의상을 가지고 와달라고. 사내 노래자랑 ‘슈퍼스타 H’에 출전한 X가 결선 리허설을 했는데 다들 의상이며 댄스며 준비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자기도 무대의상이라도 갖춰 입어야겠다는 것이었죠.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인데, 위기의식을 지금에야 느꼈다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출전할 때부터 느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거울을 봐봐~. 니 얼굴 자체가 위기예요~.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동작구의 자랑’이라고 플래카드 만들어 간다고 할 때는 펄쩍 뛰더니 이제 와서 왜 이러시나? 개망신이 두려운가 보죠? 그나저나 내가 니 시어머니가?
X는 김현식의 을 부른다며 선글라스, 비르도 재킷, 구두를 가져오라고 하더만요. 그냥 ‘비처럼’ 덩실덩실 춤이나 추면 ‘큰웃음상’이라도 받지 않을까 싶은데~. DJ DOC의 이재용 닮은 X는 가 딱인데. 그리고 무슨 패션쇼 나가시나? G드래곤 보고 있나, 할 건가? 행여나 참가상이라도 받으면 술값이라도 벌겠다 싶어 ‘내조의 여왕’답게 아들놈 데리고 부랴부랴 갔죠. 모르는 분들이 그 ‘와잎’이냐며 인사를 하더군요. 아무도 모르게 연재하라고 했건만 이 인간이 다 떠벌리고 다녔더라고요~. 다들 제 미모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어요. 저 술 안 먹고 갔어요. 난 사기 안 쳐요. 사기는 스스로 인기 칼럼니스트라고 말하는 X의 주특기예요.
드디어 X의 차례가 되었어요. 사회자는 육중한 체구라고 X를 소개하더만요. 사회자 하 기자도 만만치 않던데 말이죠.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한 X 때문에 잠시 장내가 술렁였어요. 난 시각장애인이 나온 줄 알았어요. X의 선글라스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내 걸 가지고 갔는데 안경이 얼굴에 꽉 껴서 가관이었어요. 아들 녀석도 “아빠 왜 그래?”라고 묻더라고요~. X는 초반에 떨더만 곧잘 불렀어요. 문제는 다른 참가자들이 더 잘 불렀다는 거. 마지막 등수인 3등만을 노렸으나 결과는 꽝~. X는 머쓱해하며 “나는 4등”이라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등수를 중얼거리더라고요~. 니가 심사위원인가요? 그리고 노래를 왜 그렇게 웅얼웅얼 부르나? 가오 잡나요? 옹알이하는 줄 알았고마~. 그렇게 X는 상품 하나도 못 받고 개망신만 받았어요. 술 먹을 때처럼 찧고 까불었으면 3등이라도 했을 텐데 말이죠. 니 얼굴에는 가 맞아요~. 아무튼 동네 아줌마 몰고 왔으면 나까지 개망신을 당할 뻔했어요. 내조의 여왕은 됐고~ 이제 내 실속을 차릴 때. X에게 기분도 그런데 치맥이나 먹으러 가자고 그랬죠. 풀이 죽어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X는 순순히 따라나섰어요. 역시 심플해요~ 사람이. 어디 슈퍼헤비스타 같은 대회는 없나요?
우리의 추억과 주사가 서린 바비큐의 원조, 서울 서초구 반포IC 부근 ‘금강치킨’으로 향했죠. 결혼 전 자주 앉던 2층 창가로 자리를 잡고 프라이드, 양념바비큐 반반과 생맥을 주문했어요. 주위를 둘러보며 “여기 정말 오랜만이다. 연애 때는 진짜 자주 왔는데 그지?” 말하고 X를 봤더니만 스키다시로 나오는 계란말이와 주전부리를 입에 쓸어담으며 말하더만요. “여긴, 이게 좋아~.” 너, 풀 죽은 거 맞나요? 뭐는 안 좋겠나? 주문한 치맥이 나오자 X는 정신없이 ‘비처럼’ 치킨을 ‘흡입’하더만요. 살찔 ‘비(肥)처럼’. 내조의 여왕으로 조신하고 단아하게 살려고 작정했건만 더는 못 참겠다~. 돼지야~ 안주 좀 그만 먹어~. 안주 많이 먹으면 술 많이 못 먹는단 말이야~. 문의 02-516-8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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