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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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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고통과 희열

부드럽고 매콤한 맛의 신라갈비찜
등록 2011-09-30 17:31 수정 2020-05-0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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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비 맞은 개처럼 오돌오돌 떨었다. 겨울 추리닝을 꺼내 입고 오리털 이불을 덮었는데도 한기가 밀려 들어왔다. 열이 38.9℃를 넘나들었고, 두통과 기침에 정신을 못 차렸다. 일요일 오후 침대에 누워 갤갤대는데 와잎이 문을 열며 말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파본 사람은 안다.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이러니 와잎의 말에 울컥할 수밖에. 역시 조강지처가 좋더라~ 썬연료가 좋더라~ 누워서 어깨춤이라도 추려는 찰나, 친절하게 덧붙여주는 와잎. “니가 아파서 애를 못 보니 나도 아프(게 생겼)다.” 그럼 그렇지. 긴병에 효자 없다더니~. 아니 이건 긴병도 아니고 고작 하루 반나절을 누워 있었구먼 이러니, 아주 내 대소변 받아냈으면 난리가 났겠구나. 역시 울 엄마가 좋더라~.

식욕은 없었으나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요기를 해야 했다. 좀비 같은 몰골과 포즈로 주방을 어슬렁거리자 와잎이 말한다. “피자 사왔는데 피자 먹을래?” 감기몸살에 피자와 맥주가 특효약인 줄은 이날 처음 알았다. 감동의 눈물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피자를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안됐는지 와잎이 나가서 저녁 먹자고 한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난 곰탕이나 설렁탕 정도를 생각하고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서울 원효로4가에 있는 ‘신라갈비찜’. 와잎은 앉자마자 갈비찜과 함흥냉면, 소맥 각 1병을 주문했다. 가뜩이나 속도 안 좋아 폭포 설사를 하고 있는데, 매운 음식으로 아주 장 청소를 시켜주려고 작정을 했구나~. 나를 의식했는지 와잎이 점원에게 말한다. “조금 덜 맵게 해주세요~. 너무 덜 맵게는 말고요~.”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구나~. 그것도 조금~. “감기몸살 걸렸을 때는 잘 먹어야 돼~.” 잘 먹을 수나 있겠니? 근데 너도 감기몸살 걸렸니?

갈비찜은 약간 달고 많이 매웠다. 양념이 고기 속까지 스며들어 부드러운 육질과 잘 어울렸다. 곁들여 시킨 함흥냉면은 서울 오장동 흥남집에 필적할 만큼 맛이 괜찮았다. 면발은 쫄깃했고, 양념은 너무 달지도 맵지도 않고 적당했다. 아들 녀석은 갈비찜을 보더니 “잇몸 튼튼 이가 탄탄~” 노래를 불러댔다. 엄마가 그러라고 시키니? 빈속에 매운 음식이 들어가자 꾸르륵꾸르륵 열불이 났다. 와잎은 웃으며 소맥잔을 건넸다. “불이 났으니 꺼야지?” 와잎아, 이 무정한 사람아, 이 대책 없는 여자야~. 난 엉겁결에 받아 마셨고, 속은 뒤집어져도 몸이 뜨듯해지면서 거짓말처럼 두통과 오한은 잦아들었다. 내가 신기해하자 와잎이 말한다. “술이 보약이야~.” 어련하시려고요~.

그렇게 갈비찜과 더불어 소맥 네 잔을 연이어 마셨다. 그날따라 술은 더 빨리 취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뒤를 막고 화장실로 향했다. 와잎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말했다. “추저분한 짓은 혼자 다 하는구만~.” 그날 밤, 난 오한에 떨며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또 잡았다. 명멸하는 심지처럼 내 똥꼬는 하염없이 타들어갔다. 난 와잎의 이름을 부르며, 이 저주받은 사랑에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날 난 가장 큰 고통은 희열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똥꼬 깊숙이’ 느꼈다. 와잎은 거실에서 캔맥에 육포를 뜯으며 나른하게 말했다. “배고프겠다? 피자 좀 줄까?” 문의 02-719-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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