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한눈을 팔면 시간은 저만치 저 혼자 흘러간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누군가에게는 반갑고 또 누군가에는 야속한 흐름이려나. 맘을 달뜨게 하는 봄꽃맞이가 어제 같건만 어느새 여름휴가를 손꼽는다. 쉼은 가장 큰 생업의 원동력이다. 눈에 아른거리는 여행의 풍경만으로 힘이다. 그러니 그것이 어디인들 어떨까. 꽉 조인 넥타이처럼 갑갑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흡족한 것을.
강릉은 가장 잘 알려진 여름 휴가지다. 올여름도 많은 이들이 강릉을 찾을 것이다. 경포나 주문진의 바다려나. 조금은 덜 알려진 사천의 해수욕장을 거닐려나. 그 걸음을 바다로만 한정지을 것도 없겠다. 경포대 인근에는 선교장이 있다. 세조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지은 전통 가옥이다. 300여 년 동안 10대를 이어왔다. 99칸으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80여 칸이 전한다. 관동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손꼽는다. 민간 가옥임에도 이례적으로 문화재에 지정됐다. 그 이름 선교(船橋)를 풀이하면 ‘배다리’이다. 선교장에서는 경포호가 지척이다. 예전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다리인 선교를 만들어 건넜다고도 하고 배를 타고 오갔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나 그림 같은 풍광이다.
선교장의 본채로 들어서기에 앞서 활래정(活來亭)과 방지가 있다. 연못 위에 세워진 ‘ㄱ’자 모양의 정자다. 선교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활래정은 겹처마의 팔각지붕이 도드라진다. 하나의 건물은 공간에 따라 그 용도가 조금 다르다. 물가 쪽 둘기둥 위는 여름별장이다. 반대로 안쪽은 온돌을 깔아 겨울별장의 용도로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는 둥근 섬(方池)이 있다. 네모난 연못은 땅이고 둥근 섬은 하늘을 뜻한다. 음양의 조화다. 그 정취가 여간하지 않다. 절로 풍류를 부른다. 지난 5월31일에는 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섬을 잇는 목조 보교를 복원했다. 이전에 선교장을 다녀온 이도 다시 들러볼 만하다. 특히 활래정의 백미는 여름 휴가철이다. 7~8월에는 연꽃이 만발한다. 너른 연잎은 연못을 푸르게 물들인다. 연분홍 꽃이 그 위에 부처처럼 가부좌를 튼다. 더불어 그늘을 내리는 것 또한 꽃이다. 100일 동안 핀다는 백일홍이다. 연꽃과 닮은 색은 무리지어 피므로 다른 화사함이라지.
활래정 지나 본채 입구에서는 부러 뒷걸음질친다. 선교장은 고가의 위엄도 있지만 뒷산을 두른 해송의 자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철 푸름을 이은 집이다. 시선의 더위를 녹이는 또 하나의 여름 명물이다. 선교유거(船橋幽居)로 적힌 솟을대문을 지나자 비로소 본채다. 동쪽에는 안채, 서쪽에는 사랑채가 자리한다. 압권은 행랑채를 지나 열화당에 이르는 길이다. 바깥에서는 공간을 두른 담벼락이다. 50~60m 길이의 행랑채는 칸과 칸을 잇대므로 99칸 가옥을 부연한다.
그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열화당은 주인장의 공간이다. 전형적인 한옥은 아니다. 1815년에 지어진 건물은 러시아식 차양을 갖는다. 지금은 열화당 작은 도서관이다. 2시간 이상 독서한 이에게는 선교장 관람료를 환불해준다. 다만 유아를 동반한 입장은 불가하다. 본채의 바깥에는 홍예헌과 초가가 있다. 숙박이 가능하다. 휴가철에는 붐비므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선교장 내에는 연(033-648-5307)이라는 음식점 있다. 선교장의 집안 음식을 낸다. 강릉에서 맛봐야 할 음식으로는 초당할머니순두부(033-652-2058)도 있다. 간수가 맛을 잡는다. 강릉을 처음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 강릉 교동반점(033-646-3833)의 짬뽕과 보헤미안(033-662-5365)의 드립커피는 지방에 있다고 얕잡아봐서는 곤란하다. 전국에서 손꼽을 만한 고수들이다.
강릉=박상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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