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7022번이나 7212번 또는 1020번 지선버스를 탄다. 왼쪽 창가에 앉는다. 또는 선다. 중요한 건 왼쪽이다. 버스는 부암동을 향한다. 산 너머 청와대 뒷동네다. 경복고등학교를 지나 좌(左) 인왕산에 우(右) 북악산을 가른다. 그때부터 시선을 왼쪽 먼발치에 둔다. 겸재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인왕산이다. 북악산은 바로 곁이라 시야가 버겁다. 살짝 창문을 열어도 좋겠다. 같은 서울이지만 공기가 다르다. 곧 청운중학교 정문이다. 비로소 인왕산의 전경이 눈에 가득하다. 산은 어느새 색동의 저고리를 갈아입었다. 벚꽃이다. 진달래거나 철쭉이다. 뒤늦은 개나리다. 색과 색이 산자락에 뒤엉켰다. 밀리지 않는 초록의 빛인들. 중턱의 청운공원과 윤동주 시인의 언덕도 거든다. 열린 창문으로 먼 산의 꽃향기가 날아들었다면 거짓말이랄 테지.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봄은 단연 4월 말의 창의문로다. 버스 차창으로 바라보는 인왕산 자락의 꽃무리다. 마치 골짜기 마을을 달리는 버스인 양하다. 마음이 들썩댄다. 서울에도 봄꽃은 많다. 가로수이거나 공원이다. 물론 산의 봄꽃도 있다. 하지만 이토록 가까운 봄 산의 전경이라니. 그것도 버스 창밖이다. 스치고 지나는 것들의 소중한 표정이 새삼스럽다. 부암동이 안기는 첫 번째 매혹이다. 환대다. 누구는 부암동을 제2의 삼청동이라 부른다. 글쎄? 아마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들이 제법 자리한 까닭이겠지. 부암동을 즐겨 찾는 이들은 한적한 산동네라 좋아한다. 인왕산과 북악산, 멀리 북한산의 능선이 삼면을 두른 산의 동네. 시골 외갓집의 읍내 같으려나. 따로 로데오거리라 할 것도 없다. 카페도, 레스토랑도 대체로 단층의 건물이다. 띄엄띄엄하다. 그 사이 ‘부동산’이 아닌 ‘집’이 들고 난다. 오래 산 집의 꽃과 나무다. 담 너머로 삐죽 고개를 내밀고 그늘을 드리운다. 봄날의 자연스런 골목 풍경이다. 그마저 서울의 여느 지역보다 한두 주 늦다. 산자락이라 기온이 낮은 까닭이다. 서울에서 가장 늦게 봄을 맞고 가장 늦게 봄꽃을 떤다.
부암동은 그저 유랑하듯 골목을 떠도는 게 제일이다. 처음 온 이들은 북악산 방면이다. 드라마 의 촬영지이고 백사실계곡이다. 몇 번 다녀간 이들은 인왕산 방면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대표다. 누상동에서 하숙하던 윤동주 시인이 산책을 다녔을 법한 자리다. 공원에는 난간이며 바닥이며 윤동주 시인의 시구가 두드러진다. 일필휘지의 붓글씨다. 도로의 경계에는 서울성곽도 지난다. 북악산에서 내려와 인왕산을 잇는다. 그 정점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의 조망대다. 멋들어진 소나무 곁이다. 성곽 아래로 부암동의 생김이 고스란하다. 3층을 넘지 않는 집들은 산속에 포근히 안겼다. ‘병풍 같은 산’의 위세를 실감한다. 성곽 반대쪽은 서울 시내다. 종로를 지나 N서울타워까지 너른 전경이다. 발 아래 청운빌라의 갈색 지붕도 이채롭다. 밤에는 야경도 일품이다.
산책로는 청운공원의 청운유치원에도 가닿는다. 길목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활짝 폈다. 철쭉은 막 꽃망울을 여는 중이다. 청운유치원 옆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기에 으뜸이다. 동네 사람들만 알고 찾아가는 또 하나의 조망 명소다. 시인은 아니다만 시어(詩語)들이 절로 입안을 맴돈다. 뱉지 않으면 어떠리. 말로 담지 못한 감성은 봄날의 가장 짙은 여운이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나. 부암동에는 파스타를 내는 레스토랑이 비교적 많다. 그중 부암동주민센터 옆 ‘오월’(02-391-4418)이 오랫동안 꾸준하다. 환기미술관 앞 ‘710 anotherman’(02-395-5092)은 치킨라이스와 햄버그스테이크 등의 런치세트가 인기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아래 4.5평 우동집(전화번호 없음)도 추천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다. 창이 넓어 봄 햇살이 살포시 몸을 기댄다.
박상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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