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몇몇 장소를 좋아한다. 선유도공원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보안여관 등이다. 시간의 접점을 가진 재활용 공간이다.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므로 풍성해진 재생이다. 600년 수도 서울이라 말하지만 늘 그 듬성듬성한 흔적이 안타까웠다. 피맛골이나 황학동 벼룩시장의 퇴장이 쓸쓸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라지. 다행히 반가운 공간이 하나 더 늘었다. 꿈마루다. 기존의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꿈마루는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 골프장은 일제강점기에 순종의 비 순명황후의 능을 이전하고 건설했다. 1970년 어린이대공원 부지로 결정 나기 전까지 골프장으로 쓰였다. 클럽하우스는 그 직전에 지어졌다. 어린이대공원에서는 교양관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나상진의 설계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은 건축은 수평으로 과감히 뻗어나간다. 시원스럽고 직설적이다. 약 40년 전에 지어졌지만 자유로운 양식이다. 허물고 새롭게 지을 예정이었으나 건축가 조성룡씨의 제안으로 재활용했다. 그는 선유도공원을 설계한 바 있다. 꿈마루도 옛것의 시간과 사연을 끌어들여 새로운 토대로 삼았다.
먼저 건물을 둘러싼 유리벽을 제거하고 일부 지붕을 걷어냈다. 하지만 수평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 뼈대는 초기 형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새롭게 만들었어도 낯설지 않다. 벽에는 페인트를 벗겨낸 끌과 망치의 흔적이 있다. 덧댄 흉터거나 깨진 모서리이고 낡은 콘크리트에 남은 낙서다. 슬며시 속살을 드러낸 철근이다. 시간의 스펙트럼이 고스란하다. 그 사이로 나무 계단과 난간이다. 새 길을 연다. 안과 밖, 위와 아래의 경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방으로 열려 미로를 거닐 듯 오간다.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조우한다. ‘집 속의 집’ 개념의 사무동은 새로운 얼굴이다. 낡은 틀 안에 빨간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지었다. 터널 속을 걷듯 복도를 지나서는 피크닉가든이다. 다시 옛집이다. 로커룸이었던 장소다. 실내의 지붕과 바닥을 걷어내고 정원으로 꾸몄다. 콘크리트의 기둥 사이로는 산딸나무를 심었다. 고운 꽃망울 아래는 쉼터다. 이름처럼 소풍 나온 이들이 도시락을 풀어도 좋겠다. 중심에는 오랜 연못이다. 연꽃이 곱다. 낡고 친숙해도 콘크리트라지. 자그마한 연못이 주는 생기는 각별하다. 선유도공원의 녹색 기둥의 정원을 닮았다.
바깥으로는 야외 계단의 동선을 살렸다. 3층 북카페 바깥마루로 잇는다. 아래로 피크닉가든이 내려다보인다. 건물 안의 북카페는 모처럼의 실내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다. 삼면의 유리창과 반투명 서가는 과하지 않으므로 여유로운 시야를 안긴다. 한가로운 독서다. 신간 서적도 많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하나만 꼽으라면 옛 진입로다. 예전에는 골프 카트가 드나들었다. 그 길목에 잔디를 깔고 꽃을 심었다. 진입로는 통로라는 본래의 역할을 포기하는 대신 녹색의 화단으로 변모했다. 더불어 첫걸음을 딛는 공간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산 역사가 됐다. 앞마당의 정원과 어우러져 자생의 녹지인 양하다. 자연스레 이웃한 대공원의 명소로 이끈다.
어린이대공원은 지난 2009년 재개장했다. 야외음악당이나 음악분수도 생겨나는 등 한층 말끔해졌다. 이후에는 무료로 개방한다. 피크닉이나 데이트 장소로 삼는 이도 부쩍 늘었다. 그간 뜸했다면 한 번쯤 찾아보기를 권한다. 꿈마루라는 옛 건축의 새로운 변주도 꼭 누려보시길. 인근 맛집으로는 건대입구역 방면으로 우마이도(02-467-8788)가 있다. 일본식 돈코츠라멘 하나만 내는데 걸쭉한 국물이 일품이다. 반대로 시원한 평양냉면을 원한다면 구의사거리 방면의 서북면옥(02-457-8319)을 권한다.
박상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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