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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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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닮은 내륙의 섬

[KIN] [히든 스폿] 경북 영주 수도리 무섬마을
등록 2011-08-19 17:45 수정 2020-05-03 04:26
박상준 제공

박상준 제공

아침부터 매미는 부지런히 운다. 긴 세월을 숨죽여 짧은 세월을 살아내는 서러움이려나. 그러니 절절한 외침을 타박할 수도 없다. 짧은 세월을 숨죽여 긴 세월을 사는 사람이고 보면야. 도심을 벗어나니 조금은 너그럽다. 한적한 도로변으로 매미 소리가 우렁차다만 시골이라 소음도 고작 매미려니 한다. 분명 자연의 풍경이 주는 마음의 위안이고 여유다.

경북 영주는 조선 중기의 예언서 에 나오는 10승지 중 제1승지다. 풍기읍 금계촌이다. 세상에 난리가 났을 때 화를 피할 수 있는 명당이다. 일대는 그만큼 풍요롭다. 소백산 죽령옛길과 죽계구곡,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 푸른 자연 아래 짙은 역사다. 근래에는 선비촌이 각광받는다. 전통가옥을 복원한 민속촌이다. 하지만 수도리 무섬마을을 아는 이는 뜻밖에도 많지 않다.

무섬마을은 문수면 수도리의 내성천변에 위치한다. 영주시의 정남쪽이다. 선비촌에서 30분 남짓 거리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남원천은 영주시를 지나며 서천과 만난다. 서천은 다시 내성천을 지나 낙동강까지 가닿는다. ‘수도리’(水島里)라는 행정명은 그 생김을 말한다. ‘내륙에 자리한 마을의 섬(島)’을 뜻하는 이름이다. 물 위의 섬이라니. 그래서 무섬마을이다. 내성천 건너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간다. 물길은 마을을 빙 둘러 안아 흐른다. 풍수지리학상으로 연화부수(連花浮水) 지형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예천의 회룡포가 비슷하다. 유명세는 두 마을이 앞서지만 아름다움만은 무섬마을도 뒤지지 않는다. 마을을 이루는 고택들도 마찬가지다. 17세기 중반부터 이뤄진 반남 박씨와 신성 김씨의 집성촌인데 전통가옥이 고스란하다.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은 경상북도에서 지정한 문화재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처가인 김뢰진 가옥도 있다.

마을을 잇는 수도교를 지난다. 시선은 자연스레 물길을 좇는다. 물가로 너른 모래톱이다. 모래사장이 꼭 바다에만 있을까. 물 놀이터로도 손색없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건 위태하게 물 위를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다. 무섬마을의 명물이다. 수도교가 들어서기 전까지 내성천을 건너는 유일한 길이었다. 길이 150m로 하천에서 60cm 높이에 말뚝을 박고 그 위로 폭 30cm의 나무판자를 얹었다. ‘ㅠ’자 모양이 손을 맞잡고 이어진 형태다. 곧은 직선으로 뻗기보다 유려하게 나선을 그린다. 그러므로 물길에 순응해 안전을 도모한다. 무섬마을 모든 걸음의 낙인이요, 시간의 낙관이다. 저 다리 없이 뉘인들 물을 건넜으랴. 그 추억이 어찌 잊힐까. 2005년 무섬마을에서 자고 나란 이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복원했다. 매해 10월에는 외나무다리축제도 연다. 다리는 축제에 앞서 세워지고 다음해 장마철에 자연스레 물길에 쓸려간다. 아쉽게도 지금은 다리를 건널 수 없다.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다리의 부분으로 위로 삼는다. 장마가 완전히 지나가면 복원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란다.

마을은 아담하고 포근하다. 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다. 돌담 사이로 오밀조밀한 길을 열고 닫으며 자리한다. 인위로 조성한 민속촌이 아니라 오랜 삶이 묻어나는 생활촌이다. 새로이 보수한 자취야 없을까만 사람의 손때 묻은 흔적이 좀더 눅진하다. 그러니 땡볕이 매서워도 짧은 골목 산책의 걸음을 내봄직하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별리’)라고 노래한 조지훈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으리. 무섬마을 고택들에서는 민박도 가능하다. 옛 한옥의 처마 아래 머물며 한여름 밤을 맞아도 좋겠다. 무섬골동반(054-634-8000)도 맛볼 수 있다. ‘골동반’은 섣달 그믐달에 먹던 비빔밥이다. 무섬마을에서는 향토음식요리사 강성숙씨가 차려낸다. 영주는 한우도 소문이 자자하다. 현지인들은 중앙식육식당(054-631-3649)을 손꼽는다. 뜻밖에도 중앙분식(054-635-7637)의 쫄면 또한 영주의 별미다. 두 곳 모두 영주 시내에 있다.

박상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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