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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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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하늘 연꽃

[KIN] 히든 스폿
서강대 남문 목련(가로수)길
등록 2011-04-15 14:17 수정 2020-05-03 04:26
» 박상준 제공

» 박상준 제공

버스를 타고 지나다 혼잣말처럼 “봄인데…”를 연발한다. 은행나무 가로수에 새순이 힘겹게 싹을 틔우고 있다. 괜스레 맘이 급하다. 저 녀석이 눈을 떠야 맘껏 봄노래를 부를 텐데. 고작 한다는 응원이 계절의 고지다. 무슨 입영통지서도 아니고. 제 몫만 앞세우는 사람의 욕심이려나. 나무는 저마다의 시간을 산다. 봄맞이도 다르지 않다. 누구는 새순을 내려 힘쓸 때 누구는 이미 꽃망울을 연다. 4월6일 응봉산에서 개나리축제가 열렸다. 개나리가 보란 듯 산을 노랗게 물들였다. 서울의 첫 번째 봄꽃 축제다. 신호탄이다. 막 만개를 앞둔 시점이었으니 한 주 정도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봄꽃은 대체로 4월의 둘쨋주를 전후해 절정을 이룬다.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완연한 봄의 색은 눈에 겹다.

그 가운데 서강대 남문(후문)의 목련길을 아껴 권한다. 가로수 꽃나무는 대부분이 벚나무다. 근래 들어 이팝나무가 종종 눈에 띈다만 목련은 낯설다. 서울이나 지방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서강대 남문에서 후문에 이르는 목련길은 숨은 명소다. 조금씩 알려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동네 사람이나 서강대생이 많다. 처음 마주한 이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다. 400여m에 이르는 길의 좌우로 60그루가 넘는 목련이다. 화사한 꽃 대궐을 이룬다. 안 그래도 화려한 꽃이다. 떨어져 흩어질 때야 밉지만 가지 끝에 필 때는 어느 꽃 부럽지 않다. 그 큰 꽃망울이 나무마다 잔뜩이다. 하물며 가로수다.

수령은 나무마다 조금씩 다르다. 새로 식재한 것도 있고 오랜 시간 뿌리 내린 것도 있다. 토박이 동네 주민 말을 빌리면 목련길이 생긴 지 20년 남짓하다. 수령의 차이가 꽃의 모양을 결정할까. 어느 곁을 지나든 그 우아한 자태에 넋을 잃는다. ‘나무 위의 연꽃’(木蓮)이 무색하지 않다. 봄날의 하늘을 물들인다. 그 가운데 서강대 리치과학관 앞에서 자주 발길이 멎는다. 목련보다 목련을 담는 그림자 때문이다. 리치과학관 외관은 옅은 파란색의 창이다. 몇 그루의 벚나무도 같이 자란다. 꽃들은 경쟁하듯 창에 제 모습을 비춘다. 그것이 꽤나 상큼한 봄날의 음영을 만든다. “봄이네!” 하는 감탄이 절로 인다. 목련 아래는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노란 민들레도 곱기만 하다.

서강대 남문 목련길은 올해 벌써 꽃을 피웠다. 만개는 10일을 지나며 이뤄지지 싶다. 앞선 빗방울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이다. 봄날의 밤 산책도 슬며시 권해본다. 다만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도로의 한쪽 가로에 공사가 한창이다. 막을 쳤지만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않다. 그나마 주차가 이뤄지는 쪽이라 다행이다. 목련은 순식간에 꽃을 떨어뜨린다. 그 끝을 장담할 수 없다.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서강대 목련길이 늦었다면 서강대 캠퍼스의 봄꽃으로 위로 삼을 일이다. 벚나무와 산수유가 아름답다. 혹 벚꽃을 기다리는 이에게는 종로 정독도서관도 권한다. 여느 벚꽃길과 달리 옛 경기고등학교 교정이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벚꽃 사이를 다정하게 걷는다. 봄볕의 등나무 파고라 아래 한가로이 책장을 만지막거려도 좋겠다. 서쪽 인왕산으로는 겸재 정선의 의 풍경도 들고난다. 서강대 목련길 인근 맛집으로는 신촌로터리 방향으로 팔색삼겹살(02-719-4848)이 있다. 솔잎, 와인, 허브, 커리, 인삼 등 8가지 색과 맛의 삼겹살을 즐긴다. 단품은 8천원, 세트는 3만원이다. 가볍게 커피 한잔을 즐기고 싶다면 갤러리가 있는 빈스서울(02-706-7022)도 좋다. 커피 볶는 집이지만 커피 한잔 하고 갈 수도 있다. 후문에서 대흥역 방향으로 내려오다 길 왼쪽이다.

박상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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