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는 유목민의 자손이다

쉬쉬케밥 도전
등록 2011-06-03 16:44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고나무

한겨레21 고나무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어머니 말씀은 옳은 것 같다. 어머니와 자매들은 모두 눈이 컸다. 아버지는 눈이 작았지만 안으로 움푹 파여 콧등과 이마가 각진 미남형이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에스키모인 수준으로 두툼한 눈두덩을 만지작거리며 ‘대체 난 어디서 왔을까’ 자문했다. ‘주치의’ 말고 ‘주치생물학자’가 있다면 붙잡고 묻고 싶었다. 전 분명 남쪽 섬 출신인데 북방계임이 분명한 이 눈두덩은 어디서 왔단 말입니까?

10여 년간 이런 실존적 고민이 나를 괴롭혀왔다. 고민 끝에 가설을 세웠다. 를 보면, 불교국가 고려 사람들은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도축업자도 없었고 도축 기술도 서툴렀다. 는 “고려인들이 소를 잡을 때 네 다리를 묶어 산 채로 불에 던졌고 이렇게 잡은 소는 맛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안습’이다.

유목민이 해결사로 나섰다. 고려 초기부터 북방 여진족이 귀화했다. 유목민인 이들은 고려인이 질겁하던 소·돼지 잡는 일을 떠맡았다. 바로 조선시대 ‘백정’의 시초다. 고려 말에는 역시 유목민인 몽골의 육식 풍습이 전해졌다. 나의 가설은 여기에서 갈린다. 조선 초기 지조를 지키던 고려 말의 충신이 제주도로 유배된다. 그의 곁엔 여진족 출신 노비가 있었다. 이 노비의 유전자는 수백 년 뒤 깡마른 섬 아이의 두툼한 눈두덩으로 부활한다. 둘째 가설은 ‘다루가치설’이다. 몽골은 일종의 지방관인 다루가치를 고려 곳곳에 파견했다. 제주도 다루가치는 악명이 높았다. 서민들을 착취하며 말을 사육해 진상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루가치의 유전자는 수백 년 뒤 부활한다.

질문은 남는다. ‘같은 유목민의 후손인 터키의 쉬쉬케밥(Shish Kebab)과 한국의 석쇠 불고기의 유사성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쉬쉬케밥에 쓸 양고기를 사려고 이태원의 이슬람 식재료 상점을 향하며 자문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식육업체가 파는 ‘할랄’ 양고기와 파프리카 파우더는 제법 어울렸다. 이슬람에서는 이슬람 예법에 따라 도축한 ‘할랄’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케밥은 다양한 고기 요리를 통칭한다. ‘쉬쉬’는 ‘꼬치’를 뜻하는 터키말이므로, 쉬쉬케밥은 ‘꼬치구이’다. 고대 페르시아 전사가 사막에서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허리에 찬 칼 위에 양고기를 올려 굽던 것이 케밥의 원조라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칼 대신 농경민족의 젓가락에 양고기를 끼우느라 고생 좀 했다. 터키 서점에서 산 터키 요리책의 조리법은 단순했다. ‘양고기를 2~3cm의 정방형으로 썬다 → 썬 고기에 올리브 오일, 소금, 양파즙을 넣고 10분간 절인다 → 고기에서 양파즙을 좀 닦아낸 뒤 다시 한두 시간 재어둔다 → 굽는다.’ 입맛에 따라 가지·양파 등을 사이사이 끼워도 된다.

손을 귓불에 대가며 가스레인지에서 젓가락을 돌렸다. 익힌 고기에 파프리카 가루를 뿌렸다. 맛은 충분히 괜찮았지만, 젓가락을 오래 잡느라 손목 위 근육인 전완근이 욱신거렸다. 저열한 내 요리 실력에도 양고기 맛이 나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내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기사 쓰며 쉴 새 없이 다리를 떨던 것에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난 다리 밑에서 태어난 게 맞다. 유목민의 말 다리 밑에서. 히히힝~.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