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을 본 와잎 왈. “너무 밋밋한 거 아냐? 소재가 없나 보지? 내가 사고 한번 세게 쳐줄까?” 순간 그동안 와잎이 쳐오셨던 숱한 사고가 눈앞에 펼쳐지며, 괄약근에 힘이 움찔, 등골이 서늘했다. 정말 납량한 와잎이군. 사실 거실에 똥만 안 쌌지 와잎의 사고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술 마시고 남친 귓방망이 작렬 3회, 술 마시다 헤어지자며 남의 휴대전화 갖고 가 짜증 대폭발 1회, 술 마시고 버스 잘못 내려 “여기가 여기냐”(낸들 아냐고요)고 울부짖기 2회, 술 마시다 또 헤어지자며 남의 지갑 가지고 가서 집까지 8시간 행군 유발 1회 등. 소재가 마를 일이 있나. 와잎이 사고 세게 치기 전에 부지런히 소재를 팔아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어라, 어절씨구~ 와잎보다 더 센 주사 종결자 심비홍(가명) 아닌가. 한참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주말에 놀러오겠다는 거였다. 꼭 와야겠니? 응? 심비홍과 와잎의 주말 회동이라. 주말에 지구대에 미리 신고 좀 해놔야겠군. 아니 절에라도 들어갔다 탄신일에 나와야겠어.
심비홍은 누구인가. 심형래를 닮은 외모 때문에 그가 주연한 황비홍 패러디 영화의 등장인물 이름으로 불리는 초등학교 동창 심씨는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화제의 중심인물. 사건은 2005년 여름밤에도 있었다. 심비홍과 우리는 서울 대학로에서 술을 처먹고 나와 일행의 명륜동 자취방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심비홍은 옷가게를 하던 여친이 선물한 가죽 슬리퍼와 흰색 반바지, 파스텔톤 티셔츠로 ‘미친 존재감’을 뽐내셨더랬다. 서로 말꼬리를 잡으며 시답잖은 말장난으로 길을 걷는데 심비홍이 갑자기 소리쳤다. “야, 쓰레빠가 없어졌어!” 돌아보니 정말 녀석의 슬리퍼 한쪽이 없었다. “뭐야? 미친×아~. 피곤하다. 장난치지 말고 가자~.” “진짜야~ 미친×아~!” 말을 들어보니 선물까지 해준 여친과 말다툼하고 헤어진 오후 생각이 나 갑자기 애꿎은 슬리퍼에다 화풀이한다고 발길질을 했는데 날아가버렸다는 것이다. 주변을 한참 찾았는데도 슬리퍼는 나오지 않았다. 슬리퍼 한쪽 신고 절룩거리는 모습이라니. 우리는 신나게 놀려댔고, 결국 열받은 심비홍은 나머지 한 짝도 내던져버리는 것으로 응수. 맨발의 청춘 납시오~. 이윽고 녀석은 자리에 퍼앉아 슬리퍼를 사준 여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피곤하다, 어서 가서 자자고 채근했으나, 심은 기다리라는 말뿐. 알아서 오겠지 싶어 그냥 먼저 자취방에 와서 바로 잠들어버렸다. 아침녘에 자취방에 도착한 녀석이 방문을 열고 씩씩댔다. 얘기인즉슨 홀로 남겨진 녀석이 자취방 가는 길을 헤매다 남의 집을 기웃거리며 애들 이름을 불러댔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주민이 파출소에 신고했고, 졸지에 녀석은 출동한 백차에 달렸던 것. 거칠게 항의하는 그에게 나중에 경찰이 한 말. “가슴에 오바이트 자국도 있고…, 쓰레빠만 신고 있었어도….” 그 사건은 일명 ‘대학로 쓰레빠 사건’으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피할 수 없는 회동. 난 도심을 벗어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와잎과 심비홍 식구를 인도했다. 민폐를 줄여보자는 애민의식 되겠다. 그래서 찾은 곳은 경기 의왕시 백운호수 부근에 있는 유명 오리요릿집 ‘온누리 장작구이’. 오리 진흙구이와 맥주를 시켰다. 잡곡을 넣은 영양밥으로 속을 채운 오리를 진흙에 구워 내오는 보양식이었다. 요리가 나왔고 둘은 죽마고우라도 만난 듯 찧고 까불었다. 고기는 담백했고, 영양밥은 차졌다. 단출한 밑반찬은 맛깔스러웠고, 후식으로 나오는 잔치국수는 맛과 양이 적당했다. 주변을 보니 가족 단위 손님이 주를 이뤘다. 식당 마당에선 숯불에 군고구마를 구워먹을 수도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했다. 여자 심비홍과 남자 심비홍은 아주 잘 만나셨고(아주 헤어진 오누이, 쌍비홍이구먼), 제수씨와 난 애들을 보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오늘도 주객전도구나. 그날의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오바이트도 좋다, 거실에 똥만 싸지 말아다오. 문의 031-426-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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