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만의 템포로 무르익는 늦봄

초등 4년 이후 제도교육 접고 학교 밖에서 배우는 장해솔씨…또래와 다른 청춘이지만 자신만의 길 찾는 스무 살의 푸름
등록 2011-05-19 15:57 수정 2020-05-03 04:26

얼마간 망설였다. 평상적인 척 아무렇지 않은 듯 영화를 함께 보자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날리며 거절당해도 그만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소심하긴. 예매가 필요할 만큼 흥행을 달리는 영화도 아닌데 답문을 받자마자 굳이 예약 화면의 좋은 좌석을 찾아 클릭. 또 소심. 만약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 짐짓 평소답지 않은 유난에 재빨리 합리화까지 하며. 그렇게 장해솔(20)이라는 청춘과 세 번째 만날 약속을 했다.

최근 고입검정고시를 치른 장해솔씨는 어릴 때 맹목적으로 하던 공부와 달리 사회적인 것이나 사물의 관계와 접목되는 것도 있어 뒤늦은 공부가 쉬웠다고 했다. 지난 5월12일 장해솔씨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거리에서 밝게 웃고 있다.

최근 고입검정고시를 치른 장해솔씨는 어릴 때 맹목적으로 하던 공부와 달리 사회적인 것이나 사물의 관계와 접목되는 것도 있어 뒤늦은 공부가 쉬웠다고 했다. 지난 5월12일 장해솔씨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거리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제 독립을 고민하는 성년

지난 4월 처음 만났을 때 물었다.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기분은?
뭐,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오호, 해맑고 순한 인상과 달리 당차다. 약간의 장난기를 섞어 어기대보았다.

올 것이 너무 늦게 왔다는 말로 들린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 선택을 사람들이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본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를 알아봐주는구나 하는 ‘자뻑’도 약간 있는 것 같다. (웃음)

탁 트인 웃음이 아주 선선하다. 듣기 좋은 소리다.

올해 성년이 된다. 스무 살은 어떤 나이인가.
뭐랄까. 갑자기 고민이 구체적으로 많아지는 나이다. 그 전과 다를 게 없는데 스물이라는 숫자는 성년이라는 의미 때문인지 독립에 대한 부담이 크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많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전보다 많아졌다. 지난해하고 한 살 차이, 몇 달 차이인데 완전히 다른 게 있다. 막연히 이렇겠지 저렇겠지가 아니라 생각했던 것이나 고민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막 지겨운 입시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대학에 입성한 새내기들도 당장의 독립을 고민할까. 얼마 전까지 청소년이었을 그들에게는 성년이 어떤 의미일까. 청소년 가출이 사회 문제라고 시끄러울 때 청소년들 사이의 ‘가출무용론’을 들은 적 있다. 사춘기나 입시 스트레스가 아무리 심하고 부모와의 갈등이 고조되더라도 대학, 대학원이나 그 이상까지 어떻게든 최대한 부모 그늘에서 버텨야 한다는 말이었다. 잠시의 방황을 못 이겨 살벌한 세상으로 제 발로 뛰쳐나가는 가출은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애들이 하는 짓이라는 영악한 청소년들의 우스갯소리였다. 물론 쥐어짜는 것이나마 부모 그늘이 가능한 아이들의 얘기겠다.

경제적 독립을 고민한다고 했는데 생각한 방법은 있는지.
방법이야 필요한 만큼 무엇이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 수준이지만 대학 등록금처럼 큰돈이 드는 일은 없으니까 용돈이나 여행을 준비하는 정도의 수입을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주거, 생활 등 내 한 몸 책임지는 경제력을 갖추는 독립을 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 같은 게 스물이라는 숫자로 넘어오며 든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회사에 취직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회사라는 틀에 나를 묶어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했다. 힘이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는 내가 생각하는 성취감을 줄 만한 곳이 아닌 듯하다. 투자한 시간만큼 보수나 대우로 내 미래를 보장해주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취직하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곳의 구조가 그 안에서 보낸 시간만큼 나를 성장시켜준다는 신뢰감이 들지 않는다. 단지 월급만 바라보고 모든 일과를 바쳐 오랜 세월 일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

늦게 했지만 이해 쉬웠던 교과서 공부

초등 4학년 이후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고 했는데.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학교 진도가 빨랐고 그러다 보니 어린 생각에도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 왜 문제를 풀고 외워야 하는지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더욱 공부에 흥미를 잃어갔다. 힘들고 지겨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그때가 생각도 많고 진지했는데 학교에서는 내가 궁금해하는 문제와는 상관없는 것만 가르쳤다.

문득, 하기 싫은 것들을 감당하는 것이 성숙임을 어릴 때부터 꼭 가르치고 익히게 하며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주저했거나 점점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만나는 또래와는 어떤 차이를 느끼는지.
초등학교 때 나와 같이 학교를 관둔 친구들도 초등학교 졸업 시기, 중학교 등을 거치며 지금은 대학 진학을 했다.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도 불안하고 우울한 것은 비슷한 것 같다.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한다. 생활이 다른 점은 있지만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비슷하다. 오히려 그 친구들이 나보다 더 불안해할 때도 있다. 친구들과 일상생활이나 대화에서 차이를 느낄 때, 또래와 다르게 생활하며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일과는?
부모님을 제외하고, 친인척이나 주변 분들이 직간접적으로 내게 원하는 것이 제도권 공부다(요즘은 나이가 드시니까 그런지 살짝 아빠한테서도 그런 점이 감지된다). 나를 설득하는 이유는 많지만 요점은 몇 가지다.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거나, 전문적인 분야의 공부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놓아야 한다는 등이다. 필요를 느끼면 그때 하겠다고 버텼는데 틀린 말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들이 그토록 원한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나이 먹으며 철이 드는 것인지 타협이 가능해졌다. (웃음) 최근 고입 검정고시를 몇 달 준비했고 4월에 시험을 봤다. 발표일은 아직 남았지만 스스로 채점해서 합격임을 알고 있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교과서 공부를 하는 일과만으로 주변 분들이 그렇게까지 좋아할 줄 몰랐다. 의외였고 놀라웠다.

남들보다 늦게 하는 교과서 공부는 할 만했는지.
어릴 때만큼 어렵거나 지겹지는 않았다. 이치랄까 원리 같은 것이 쉽게 익혀졌다. 어릴 때 맹목적으로 하던 공부와 달리 사회적인 것이나 사물의 관계와 접목되는 것도 있어 이해가 쉬웠다. 고입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열화와 같은 주변의 성원이 곧바로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져서 고민이다. 당장은 수개월간 객관식 문제 풀이에 고생한 내게 휴지기를 주고 내친김에 마저 공부할 것인지를 차차 결정하려 한다.

통영오광대, 설장구 전수받은 청소년기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나 분명한 게 없이 흔들리는 내 모습이다. 예를 들면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는 부모님의 지인 분들도 내 선택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가고 싶을지 모르니까 그때 후회하지 않도록 해놓자며 대학에 관련된 준비를 설득할 때가 많다. 왜 그래야 하나, 생각은 있는데 반론의 명분이 달린다. 확실하게 정해진 게 별로 없다. 대학에 갈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무식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웃음)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고 흔들린다는 청춘에게, 흔들거리는 건 정작 네가 아니라 너를 뺀 나머지 부분들 같다는 내 느낌은 말하지 않았다. 분명하고 고정된 것은 확실하고 안정돼 보이는 만큼 발전 또한 없다는 말도 삼켰다. 흔들리므로 변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미루고 잘 웃는 청춘을 따라 내내 싱겁게 웃기만 했다.

검정고시 준비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과를 보냈나.
관심이 가거나 배우고 싶은 것만 골라서 배웠다. 매일 가는 학교 생활은 아니더라도 어릴 때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열린 학교 방식이나 행사에 참여한 적도 많았고 자라며 배우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는 찾아가서 배웠다. 아직은 전통놀이에 관심이 많다. 통영오광대를 전수받았고 설장구도 사사했다. 지금은 태평소를 배우고 있다.

동영상을 봤다. 통영오광대나 설장구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임에도 감동을 받았다. 정말 근사하더라.
아, 부끄럽다. 한국의 히피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나름의 히피를 꿈꾼다. (웃음)

히피라면….
느낌은 있는데 자세하고 긴 설명이 어렵다. 그냥 그렇다는. (웃음)

나 또한 자세한 설명은 어려운데 해솔에게서 꽤 미더운 느낌을 받는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아마 부모님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내게 가장 큰 힘은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넘치는 자존감의 원천도 부모님이고, 흔들림이 있을 때마다 힘이 돼주는 것도 부모님이다. 그렇지만 부모님보다 훨씬 많은 어른들이 걱정하시는 걸 느낀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일보다 보통의 친구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어른들과 부딪힐 때마다 설명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면역력이 어느 만큼은 생겼지만 대학 문제 등에서 부딪히면 여전한 면이 있다. 그런데 믿음직하다니 잘못 보는 것 같다. 감사하다. (웃음)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나가도록 이 청춘 일어나지 않는다. 덩달아 나도 어정쩡하게 그대로 앉아 있었다. 두 번의 만남으로 어른과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이해하는 청춘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내 취향으로 고른 영화가 주는 감동의 여운이 이 정도인가. 아니면 길게 올라가는 외국어 자막 끝에 관심 있는 스태프라도 있나. 슬쩍 눈치를 본다.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곁눈질을 알아차린 청춘이 일어서며 말한다. ‘자막을 끝까지 보지 않고 일어서는 것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라고. 잊고 있었다. 나도 조만큼은 구석구석 소소한 깐깐함의 날을 세우던 때가 있었음을. 매사 소심하고 두루뭉술해진 모양이라니, 쩝이다.

자기 음악에 맞춰 걷게 내버려두라

서울은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봄꽃의 향연과 봄바람의 나른함 속을 성년을 맞은 청춘과 걸으며 오랜만에 경험하는 이 설렘과 조심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뒤 올레를 돌아보러 제주로 떠난다는 청춘의 여행 계획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법정 스님을 통해 널리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글 신수원 제1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