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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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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맘이로소이다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삶을 꿈꾸다
길고양이 겁순이가 말하는 ‘우리 엄마’, 캣맘 김미진씨
등록 2011-09-29 18:05 수정 2020-05-03 04:26

9월21일 오후 4시, 익숙한 발소리가 들린다.
엄마다. 엄마가 왔다.
내가 먼저 달려가야지. 쏜살같이 달려가야지.
“겁순이, 왔니? 아유, 예쁜 우리 겁순이.”
1등으로 엄마 곁에 도착하니, 엄마는 익숙한 손짓으로 내가 기분 좋아하는 부분을 따뜻하게 쓰다듬어준다. 엄마는 언제나 반음쯤 높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우리 이름을 불러준다. 노래 같은 엄마의 인사에 나도 야옹야옹 화음을 넣으며 엄마 다리에 머리를 콩콩 찧고 볼을 비볐다. 그러자니 풀숲이며 판자 뒤에서 나를 낳아준 엄마 고양이 백호도, 두 달 전 태어난 백호의 아기 두 마리도, 부끄럼이 많은 얼룩이 아가 한 마리도 낮잠을 자다 깬 눈을 비비며 하나둘 나타난다.
엄마는 깨끗한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부어주고, 다른 한쪽엔 맛있는 통조림을 싹싹 비빈 사료를 그득그득 채워준다.

고양이 밥주는 여인. 김경호기자

고양이 밥주는 여인. 김경호기자

2007년부터 길고양이의 대모가 되어

아, 오늘도 맛있게 한 그릇 해치웠으니 이제 내 소개를 해볼까나. 내 이름은 겁순이. 노란 줄무늬의 고양이, 집은 서울 여의도 낡은 아파트의 상가 뒤다. 길 생활도 괜찮고, 백호처럼 아름다운 은회색 털은 아니지만 갈색과 노란색이 적절히 섞인 털옷도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데, 이름, 겁순이란 이 이름은 좀 맘에 안 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세상 대부분 사람이며 풀이며 꽃이며 동물들의 이름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붙었겠는가. 내가 겁순이인 이유는 유독 동그란 얼굴에 눈이 억울하게 처져 있는데다, 아아, 이건 고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의 천성, 항상 겁을 잔뜩 집어먹고 다니기 때문이다.

내게 겁순이란 이름을 붙여준 우리 엄마는 ‘여의도 캣맘’으로 통한다. 인터넷에서는 ‘모눈종이’(blog.naver.com/2eternity)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진짜 이름은 김미진(49)이다. 평소엔 영문 번역일을 한다. 예전에는 외국 TV 다큐멘터리를 유려한 우리말로 번역하곤 했는데, 요즘은 회사에서 쓰는 계약서 등 문서 위주로 일을 맡아 한다. 최근엔 미술서적을 번역하고 있단다. 인간의 말도 두 가지나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아서일까. 엄마는 우리 고양이 세계와도 말이 참 잘 통한다. 그래서 엄마는 자칭 타칭 ‘캣닢인간’으로 불린다. 캣닢이 뭐냐고? 보통 반려인들에게 캣닢으로 통하는 이 풀은 ‘개박하’ 또는 고양이가 워낙 좋아해서 ‘캣민트’라고도 불리는 다년생 야생화다. 이 개박하 잎에서 나는 향을 맡으면 고양이들은 무척 흥분하고 좋아한다. 심한 애들은 교양머리 없이 말린 개박하 잎을 넣은 공 같은 걸 껴안고 마구 뒹굴기도 하는데…. 그러니 캣닢인간, 엄마가 오면 우리 모두 즐거워서 야옹야옹 노래하며 날뛸 수밖에.

엄마는 2007년부터 우리 밥을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의 두 아들 중 특히 둘째아들이 동물을 좋아하는데, 학교 다녀오는 길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단다. 귀여워서 들여다보자니 그 뒤에 출산에 지치고 제대로 못 먹어 피골이 상접한 엄마 고양이가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러 있더라고. 그길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고양이에게 밥을 주자고 했단다. 마침 엄마네 집에는 2006년 반려묘로 입양된 ‘은비’라는 하얀색 페르시안 친칠라종의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친구의 밥을 조금 퍼다가 ‘아기 고양이 젖 먹일 동안이라도 밥을 챙겨주자’ 했던 것이 그길로 길고양이 밥때를 챙기게 된 거지.

엄마는 거의 매일 우리 밥을 챙긴다. 처음에는 이것도 집착이 생겨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기도 했단다. 어디 멀리 갈 일이 있어도 망설이게 되고, 여행도 못 가고. 행여나 며칠 우리 밥을 안 챙겨준 사이에 큰일이라도 날까봐 끙끙 고민하고. 그런데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 집착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끝까지 해나갈 수 있겠어. 이제 엄마는 자기 생활도 영리하게 챙겨가며 우리와 지낸다. 처음에는 하루만 사료 주는 걸 걸러도 노심초사하던 엄마는 길에서 사는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씩씩하다는 걸 깨닫고, 며칠 못 챙겨도 우리가 힘들어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지금은 또 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조금 바뀌고 주변에 캣맘도 몇몇 생겨 돌아가며 우리를 돌봐주기도 한다.

약속 시간 지키는 고양이를 아시나요

엄마가 우리에게 밥을 주러 오는 시간은 보통 밤 10시30분 정도. 엄마는 근처 아파트에 사는데, 밥을 주는 곳은 두 군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상가 뒤편과 바로 옆 아파트 화단에 사는 아이들. 그 아파트 화단에는 엄마가 처음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한 2007년부터 밥을 먹던 터줏대감 삼색이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엄마가 만난 별의별 성격의 고양이 중 꽤나 특별한 아이다. 이 친구는 낮에는 잘 안 보이다가도 항상 엄마가 밥 주는 시간에 딱 맞춰 엄마보다 먼저 화단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단다. 시간 지키기가 어찌나 칼 같은지, 칸트의 산책 시간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인데, 종종 엄마가 평소보다 늦게 온다 싶을 때는 자기 구역보다 먼저 밥을 주는 우리 상가 뒤에 쫓아와서 왜 안 오느냐고 야옹야옹 따지며 우리랑 머리 맞대고 밥을 나눠먹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낮에 들렀다. 엄마가 낮에 올 때는 보통 지나가다 머리만 쓰다듬어주고 가거나 눈 맞추고 인사나 나누는 정도인데 오늘은 잡지 인터뷰 때문에 밥을 갖고 나왔다. 상가 뒤편이라지만 아무래도 밤보다는 오가는 사람이 많으니 낮에 밥을 주면 싫은 소리 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백호가 밥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는 할머니는 “이렇게 고양이 밥 먹고 흘리고 그러면 길이 지저분해지잖아”라며 툴툴거리신다. 엄마는 “네, 그래서 저는 애들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우고 가요. 이것도 꼭 치우고 갈게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우리 밥을 주느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게 속상하다. 하지만 아직 인간 세계에는 고양이 혐오를 가진 사람도 많고, 사람들이 버리고 남은 음식물을 배가 고파 뒤지는 우리를 보고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엄마는 종종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료를 주면 애들이 오히려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찢어놓지 않아요”라며 설명해준다. 상가 아줌마·아저씨들 중에도 우리를 싫어하는 분이 있었다. 쥐덫을 놓아 백호의 엄마가 죽는 등 한때 비극이 불어닥치기도 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휴…. 그런데 이제 우리를 미워하던 그 아줌마는 이사 나가고 대부분의 상가 주민들은 우리를 예뻐해주신다. 특히 빵집 아저씨는 요즘 인간 세계에서 ‘딸 바보’ ‘아들 바보’ 하듯 ‘고양이 바보’인데 우리가 예뻐 못 견디겠다는 눈치다. 치킨을 먹다가도 맛있으면 남겨놨다가 우리를 주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자고 갖고 오신다. 엄마는 사람 먹는 음식은 짜서 안 된다, 치킨은 뼛조각 때문에 고양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저씨는 “뭐, 사람도 밥만 먹고 사나. 얘들이라고 맨날 어떻게 사료만 먹어”라고 말하며 뭐든 꿀떡꿀떡 잘 받아먹는 우리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고양이 밥주는 여인. 김경호기자

고양이 밥주는 여인. 김경호기자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운이 좋게도 우리는 상가 주민들이 우호적이어서 밥 먹는 자리를 옮기지는 않는데, 옆 아파트 화단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은 몇 번 식사 장소를 옮겼다. 주민들이 싫어하는 기색을 비치면 엄마는 그들을 억지로 설득하려 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엄마는 자신이 고양이를 사랑하듯,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꼭 주지한다. 엄마가 고양이들을 데리고 밥 먹는 장소를 옮기는 모습은 마치 만화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별이 총총 뜬 까만 밤, 엄마가 노래하듯 아이들을 부르며 밥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면 한 무리의 고양이들이 줄지어 오종종, 사뿐사뿐 엄마 뒤를 따른다.

밥 주는 엄마를 보며 그렇게 잘 챙겨먹이면 고양이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질색하는 분도 계신다. 엄마는 우리 밥을 챙겨먹이면서도 되도록 개체 수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다치거나 병든 아이들은 입양을 보내고, 출산을 자주 해 몸이 상한 아이들은 중성화 수술을 시켜준다. 수컷은 중성화 수술을 하면 영역 싸움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아 이때에도 좋은 집이 있으면 입양을 보내기도 한다. 중성화 수술을 처음 시킬 때, 엄마는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고민이 많았단다. 그런데 고양이는 워낙 한 번에 새끼를 많이 낳는데다, 무작정 개체 수가 늘어나는 걸 방관하다가는 사람도, 고양이도 어우러져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엄마는 5년째 우리 밥을 챙기면서도 여전히 고민이 많다. “내가 이 아이들의 삶에 간섭하는 게 올바른 길일까, 이 아이들을 그냥 자연에 맡기는 게 올바른 길일까”가 항상 딜레마란다. 그러나 자연에 우리를 맡기기에는 지금의 지구는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바뀌었다. 목을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건물들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깊은 갈대밭보다도 무섭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는 매서운 독수리보다도 빠르게 우리를 치고 달아난다. 그러니 엄마는 마음이 놓이지 않을 수밖에. 엄마는 인간 위주로 편재된 삶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길고양이들이 살아갈 환경이 어려워진 것은 사람의 탓도 있으니 우리가 끼니를 굶거나 아프지 않도록 보살피면서도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다. 일단 간섭하기 시작한 생명에 최선의 책임을 다하되, 타인에게는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더불어 산다’는 게 엄마가 고양이 반려인이 되면서 줄곧 지켜온 태도다. 그래서 엄마는 사람의 세계, 동물의 세계 양쪽을 다 배려하느라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단다. 언제까지 캣맘으로 살 거냐는 물음에 엄마는 “여력이 닿는 한, 내가 사는 동네에서 배 곯는 길고양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할 거란다.

힘이 닿는 한 끝까지 캣맘 노릇 할 것

저녁 7시, 인터뷰를 마치고 엄마가 다시 상가 뒤를 찾았다. 낮 시간에 놀러 갔다온 진국이가 엄마를 가장 먼저 맞았다. 진국이는 백호와 더불어 우리 동네 최고 미묘로 꼽히는데, 애교까지 철철 넘쳐 엄마와 동네 주민, 길거리 상인들에게서 한없는 사랑을 받는다. 엄마가 판자 위에 앉자마자 무릎에 척 하고 앉아서는 골골골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엄마는 “사람을 잘 따르는 길고양이들은 해코지 당하기 쉽다고 하는데, 오히려 여기저기서 잘 얻어먹어서 그런지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남더라”고 말한다. 아, 나도 겁 좀 그만 집어먹고 진국이의 저 애교를 배워야 하는데….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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