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이다. 이즈음이면 카운트다운을 해가며 수능과 수험생에 관한 내용을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보도한다. 남은 며칠 동안 시험을 좀더 잘 보기 위한 방법은 물론 수험생의 건강관리, 먹어야 할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 좋은 간식과 음료, 감기 예방법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수험생뿐 아니라 수험생 가족의 주의할 점과 스트레스 조절 방법까지, 세상이 수능에 보이는 관심과 애정은 세세하고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온통 쏟아지는 그 관심과 애정의 변방(?)을 선택한 청년을 만났다.
주체적이지 않으면 불행할 것 같아
충남 예산의 내포생태교육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조은겨레(20)씨다. 시골 분교 앞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와 있던 청년은 버스에 오르시는 어른들께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방문객을 맞았다. 인터뷰를 청하며 이야기 나누기 편한 시간을 물었을 때 퇴근 뒤가 좋다고 했다. 일하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당저수지와 주변의 경관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었으나 스무 살 청년의 일터로는 너무 조용하고 외진 느낌이었다. 도시에서는 오후 시간을 얼마 지나지 않은 초저녁이었지만 어둠이 짙고 사위가 너무 고요했기 때문이다. 예산의 내포생태교육연구소는 어린이 생태교육과 생태지도자 육성, 생태교육자료 제작 등을 하는 곳이다. 대흥면 대야리의 옛 대송분교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초면의 어색함을 덜어내려 이미 청년이 많이 들었을 이름에 대한 유치한 너스레를 떨었다. 조은겨레, 은겨레, 겨레 어느 것도 괜찮다며 부르는 사람 마음이라고 했다. 현재의 자신을 굳이 소개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스무 살 청년”이라는 답을 듣는 순간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와 과정에 대해 ‘설명’을 종용해야 하는 게 좀 미안해졌다. 대학을 진학한 이들에게 왜 대학을 갔느냐고 묻는 어른은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저를 빼고는 친구들이 거의 진학을 했어요. 대학이 본래 해야 하는 공부, 정말 필요한 공부를 가르치지는 못하고 있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에 확실하게 맞는 전공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과를 선택하거나 학교를 가려고 하고 있었죠. 저도 친구들하고 비슷하게 입시를 생각하고 지내다가 고3 때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부모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부모진로지도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강좌에서 하자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어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지원이 가능했고 제 적성에도 많이 벗어나지 않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취직을 결정한 거였어요.”
여느 고등학생처럼 입시를 준비하는 생활을 하다가 취직을 결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해진 대입 공부만 하는 것이 더 쉬운지도 모르죠. 그것만 하면 다른 고민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고1 때인가 정말 오래 고민했어요.” 대학을 가고 직장에 취직을 해서 연봉을 받고 단계별로 승진을 하는 게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 아님은 분명했다. 돈이 없거나 가난해서 불행하기보다는 즐겁지 않게 사는 것,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후회되는 삶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용기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난관 있지만 불안하지는 않아
입시를 접고 취직을 결정하고 난 뒤 난관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제가 취업을 하려고 했던 곳이 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 ‘노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이었어요. 작년 12월에 채용 계획이 있었거든요. 그걸 준비하며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던 건데 갑자기 정부지원금이 대폭 삭감돼 인력 충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채용 계획도 사라지게 되어 버렸어요.”
막막했다. 다음 채용 계획이 공지 될 때까지 그와 연관된 일을 찾고 경험을 쌓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2011 하이 서울페스티벌과 홍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자원 활동을 했다. 부단히 몸을 움직이며 얻은 것도 많지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 때마침 지금의 내포생태교육연구소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아르바이트로 교구를 만드는 일이다. “특별히 따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들라고 여기 계신 분들은 얘기하지만 그럴 틈이 없어요. 그야말로 노동이죠.(웃음) 그렇지만 자원봉사를 하며 소란해진 마음과 한해 동안 복잡하게 시달렸던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번 12월에 하자센터 노리단 채용 공지가 나면 다시 지원하려고요.”
졸업 뒤 한해가 지났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불안하거나 사회의 시선이 두려운 적은 없을까. “사람들이 좋지 않게 보는 것을 느낄 때가 있긴 해요. 고졸자잖아요.(웃음)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데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대학진학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 저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낮은 것이지 제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별로 그런 불안이나 두려움은 없어요. 내가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 뭐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뭐고 이런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불안이나 두려움이 크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대학 입시에 성공하는 것을 제외하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얼마나 될까. 스펙을 쌓고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 말고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청년은 또 얼마나 있을까. 부모들도 다르지 않다. 자녀가 뭘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대부분 오로지 서열이 좀더 높은 대학을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고 목표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제 결정을 존중해주시지만 친척 분들만 해도 2년제 대학이라도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세요. 저도 부모님도 그런 얘기에는 그냥 초연해서 그때그때 무슨 설명을 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냥 듣고 마는 편이죠.”
도서관 있는 마을 만들고파
남다른 선택을 하고 생활하는 스스로의 가장 큰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평범하다는 것과 제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표가 분명하다는 게 힘인 것 같아요.” 청년의 목표는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마을에는 꼭 도서관도 짓고 싶다. 책만 읽고 빌리는 도서관이 아니라 공연과 놀이, 교육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도서관이 있는 마을을 만들 계획이다. 지금의 생활과 고민은 그 목표를 위해 하나하나 밟아가는 과정이다. 함께 열심히 일하고 나누며 놀이하는 공동체를 꿈꾼다. “그런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을 하거나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긍정적인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졸업한 풀무농업기술학교가 있는 홍동에 그런 마을이 있어요. 체험해 봤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갖게 된 거죠.”
한국 교육개발원과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세계 중학생 14만600여 명의 설문을 토대로 한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1점 만점에 0.31점이었다. 이웃과 더불어 갈등을 조정하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이 지표에서 우리나라 청소년은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35위였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협력과, 관계 지향성 항목은 최저점인 0점이었다. 심각한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큰 원인으로 경쟁위주의 입시교육을 꼽았다.
공동체 마을을 꿈꾼다면 인간관계가 대단히 좋아야겠다고 하자 청년은 ‘친구는 많다’고 선선하게 대꾸했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지금 가장 힘든 건,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는 거겠죠. 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처럼 한 가지로 정해진 게 없잖아요. 한 가지가 끝나면 또 다음을 생각하고, 찾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아요.”
수능을 앞둔 시기의 한쪽에서는 ‘대학 거부선언’을 하는 20대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10대의 ‘대학입시 거부선언’도 있을 예정이다. 은겨레씨의 생각을 물었다. “저는 내가 원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니까 대학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 그런 게 찾아지지 않았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제가 원하는 공부와 꼭 맞지는 않더라도 그 중 조금 더 내게 맞는 전공과 대학을 살피고 차선의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만약 앞으로 지내며 어떤 전공이나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그때 진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홍안의 미소년수능 D-day의 하루가 또 저문다. 방송 3사의 저녁 뉴스는 ‘공부 잘하는 약’에 대해 일제히 보도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가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며 팔린다는 내용이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약이란다.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정신질환치료제가 잠을 쫒고 집중력을 높여 성적을 올려주는 약으로 둔갑해 쓰인다는 것이다. 항정신성 의약품이므로 뇌를 자극해 후유증이 크고 대단히 위험한 이 약을 구입하는 성인 네 사람 중 한 명이 오십대 이상이라고 한다. 자녀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것처럼 처방을 받아가는 학부모가 있는 것으로 본다는 식약청 관계자의 말은 끔찍하다. 너무도 잔인하고 부끄러운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인터뷰 원고를 마감하고 있는데 조은겨레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라며 원고 말미에 덧붙일 수 있는지 물었다. 풀무농업기술학교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앞서 청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지만 수능을 치를 후배들을 생각하며 아주 조심스러워하는 말투의 느낌이 아직은 홍안의 미소년 같았다. 그의 따뜻한 말을 그대로 전한다. “47회 동생들아, 모두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힘내!”
예산=글 신수원 제1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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