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봄날 바다로 산책을 나갔다. 봄빛이 아련한 그 바닷속에는 새 바다풀이 돋아나고 있었다. 할머니는 바닷빛을 한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문득 나를 바라보았다. “니 그, 바다 때깔, 보나, 니가 글을 쓸 줄 알게 되몬 그 때깔 이바구 먼저 써다고.”(허수경, 중)
시인 허수경은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쓴 수필에서, 고대로부터 문자를 아는 것이 권력이었음을 이야기하며 글을 쓸 줄 모르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낸다. 숫자조차 쓸 수 없어 작대기로 표시하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글을 아는 사람에게 장부를 써달라 부탁하며 조개 한 바구니 같은 대가를 줘야 했던 할머니의 인생. 그 할머니가 절절히 느끼고 또 표현하고 싶어 했던 바다 때깔이 손녀에게만 간신히, 부탁의 형태로 전해지는 장면은 마음이 아리다.
그 할머니가 직접 자신의 감수성으로 마주한 세상을 글로 옮길 수 있었다면 이런 글이 아니었을까.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서울어머니학교’ 샛별반 최미자씨는 2010년 2학기 글솜씨 자랑대회에서 이런 글을 썼다. 꼭꼭 눌러쓴 서툰 글씨가 눈부시다.
“밤새 내리던 눈/ 살며시 그친 아침/ 세상은 온통 하얀 도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립문을 열면/ 누가 먼저 지나갔나/ 이 고운 눈길/ 한발 두발 걸어가는/ 눈 위의 그림”(‘눈도장’)
야학에 빚진 마음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서울어머니학교는 올해로 20돌을 맞았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대표 최창우(56)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난방이 되지 않아 구식 난로를 켠 교실에서 책상을 붙여놓고 최창우 대표와 마주 앉았다. 마른 체구에 단정한 옷차림, 가장 인상적인 건, 아이처럼 새까맣고 맑은 눈동자다. 웃음 띤 눈이 한순간도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저한테도 배움의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거겠죠.” 1956년생인 최창우 대표는 지리산 청학동 출신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다 함께 농사를 짓고 한학을 배우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배움의 길은 계속 차단됐다. 중학교에도 사정상 진학할 수 없어 야학을 다녔지만 그마저도 곧 없어졌다. 도시로 나와 일을 하며 떠돌다가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독학하겠다고 마음먹고 귀향했으나, 농사가 흉작이라 그도 어렵게 되어 또다시 도시로 나가야 했다. 고달픈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군 입대 전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보고, 제대 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그 자신이 힘들게 배운 만큼, 교육의 가치가 마음속 깊이 크게 자리잡았다. 아마도 입 하나라도 덜려고 어린 시절부터 식모살이를 하거나 하나뿐인 남동생을 위해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 세대 역시 주어지지 않는 기회에 한이 생기고, 배우고 싶어 목이 말랐으리라.
1989년 최 대표는 시국사건에 연루돼 수배자 신세로 숨어다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 그러나 그에게는 야학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다.
“저는 정규교육의 혜택은 못 받았지만 다른 분들의 헌신으로 야학에서 혜택을 받았죠. 그런데 정작 대학에 다닐 때는 진로를 위해 공부하는 데만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과 부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느라 그 혜택을 다시 돌려드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뒤늦게나마 야학에 찾아갔지만, 대개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교사진 사이에 30대의 최 대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서울 상계동의 전봇대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만큼 조그만 쪽지를 발견하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빛바래서 글씨를 겨우 알아볼 수 있던 그 쪽지는 어머니 야학을 모집하는 광고였다. 그곳에서 교사로 시작해 2~3년 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서울 다른 지역의 어머니들까지 보듬을 공간을 만들었다.
“어머니들이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많이 좋아하셨지요. 어떤 분은 경남 마산에서 올라오셔서 자취를 하시기까지 했어요.”
‘문맹’이라는 이름의 고통
“나의 동생은 세무서에서 근무를 합니다. 세무서에 일보러 오는 사람 중에 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글을 모르는 누나를 생각하며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합니다. 고마운 동생입니다.”(글솜씨 자랑대회 버금상, 샛별반 채필숙 학생의 글)
글을 모르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려움을 겪는다. 은행 업무를 보기 힘들고, 간판을 읽을 수 없으며, 개념을 익히기 어려워 TV 뉴스조차 알아듣기 쉽지 않다. 축구를 즐기기도, 쇼 프로그램을 즐기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정보 격차가 더 극심하게 벌어져 가족 간에도 소통이 단절되는 문제가 생긴다.
마침 드라마 를 감명 깊게 보았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최 대표에게 물었다. 백성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기에 총명한 사람은 반나절, 아무리 모자란 사람도 열흘이면 다 깨우칠 수 있다고 하던데, 왜 어머니들은 살아오는 동안 독학을 해서 배우시지 못했는지, 실제 배우는 데는 얼마나 걸리는지. 나는 자연스레 글을 익히고 읽고 써온 사람으로서의 오만을 숨기지 못했다.
“2년 이상 배워도 쉽지 않아요. ‘가갸거겨’ 안다고 글을 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아마 지금 정부에서 문맹률이 영 점 몇 프로, 거의 문맹이 없다고 발표하는 걸 보면 그것만 가지고 글을 안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영어도 알파벳만 외우면 글을 안다고 할 수 있게요.”
어머니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소리와 글자 형태를 동시에 익히지 못한 탓에, 습관으로 굳어진 소리에만 의지해 글자를 써야 하기 때문에 익히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어느 정도 글을 번듯하게 쓰려면 3~4년은 필요하다. 어머니들이 쓴 글을 실제로 보면 ‘즐겁게’를 사투리 발음 그대로 ‘절겁게’라고 쓰거나, ‘대학로’를 ‘대학노’라고 쓴 표현들이 많이 발견된다.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와 체력의 한계, 공부만 할 수는 없는 환경도 장애로 작용한다.
문맹이란 글자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자신의 의사를 글로 써서 표현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2003년 10월8일 기사는 한국의 비문해율이 25%, 즉 어른 4명 중 1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문맹률이 낮은 나라’라는 일반적 인식과 크게 차이 나는 결과다. 2004년 한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의 50살 이상 주민 386명을 대상으로 표본조사한 결과 43.8%인 169명이 읽기와 쓰기를 모두 못하거나 어느 한 가지를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부에서 구에 하나씩이라도 설립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비정부기구(NGO)에 알아서 하라고 맡겨두고 있어 안타까워요. 실상은 나라에서 방치를 하고 있는 거죠. 심지어 우리 학교가 사설강습소법 위반이라고 해서 폐쇄하라고 계고장을 붙여놓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들이 글을 잘 모르시니 (웃음) 어떻게 보면 다행이죠. 나중에 그곳 직원분들이 나와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에 마음이 좀 풀어졌지만…, 속상한 일이죠.”
사설강습소법 위반, 폐쇄 명령에 헌법 소원까지 냈지만 패소했다. 그래도 최 대표와 교사들은 이 일을 계속해나갔다. 벌금을 물어야 했고, 선생님 한 분은 전과자가 됐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비로소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비영리단체로 등록해서 학교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운영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 달 임대료 100만원에 전기요금 등 각종 요금 20만원을 내기도 빠듯하다. 어머니들에게 받는 한 달 3만3천원의 수강료로는 어림도 없다. 올해부터는 교사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절반 정도의 돈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후원을 받아 충당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조차 줄어들었다.
구식 난로 때문에 공기가 탁하고 온기는 부족해 교사들조차 쓰러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버스비조차 아끼려고 걸어온 50~60대 여성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하게 하고 또 가르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 기대하는 것과 같은 것을 기대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인 어려운 분들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최창우 대표와 교사들의 생각과 편지 한 장 쓰는 것으로도 인생이 바뀌는 느낌을 경험한 학생들의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예전에 어느 70대 할머니께서 3개월 과정을 마치시던 날, 시골에서 자식·며느리·손자까지 열 몇 명이 모두 올라왔어요. 그 자리에서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집에 가려면 동막골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마을 버스 3개 중 어느 것을 타야 하는지 항상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동·막·골 세 글자를 확실히 읽어 스스로 타게 되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요. 환하게 웃으시면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박수를 쳤죠.” 이야기를 하는 최 대표의 눈이 촉촉하게 젖는다.
어머니들의 공동체 이뤄
오후 5시, 저녁 수업이 시작됐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이면 학교에 오기가 힘들어 출석률이 반으로 확 준다”고 수업에 들어갔다 잠깐 나온 교장 선생님이 안타까운 듯 웃으며 말했다. 저녁반에서 공부하는 어머니들은 대부분 아침 일찍 청소일을 하시거나 아르바이트를 두세 군데에서 한 뒤 오시는 것이다.
새해 인사를 하러 교실로 들어가는 최 대표를 따라 들어갔다. “공부하기 힘드시지요?” 하고 물으니 웃음기 섞인 하소연이 쏟아진다. “읽다가 틀릴까봐 조마조마해요.” 하소연의 앞에 항상 진심이 담긴 “선생님들이 그나마 이만큼 가르쳐주셨으니 어디 가서 읽기는 하지마는”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최창우 대표는 어머니들의 말을 귀기울여 듣더니 칠판에 ‘팔팔 끓는 물’이라고 적고는 농담을 던졌다. “저를 교육부 장관으로 뽑아주시면 제가 이 ‘끓’의 받침도 ‘ㄹ’로 바꿔드릴게요.” 그 말에 반색하며 “그럼, 꼭 뽑아야겠다”던 어머니들의 웃음소리로 스산한 교실이 환하게 바뀌는 듯했다. 어머니들끼리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던 최 대표의 말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글 김지현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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