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을 사는 대한민국의 40대 남자들은 모이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사회의 중추로서 복잡하게 돌아가는 정치·사회·경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려나 싶지만 의외로 그건 아니다. 함께 자리한 이들과 의견이 달라 분위기 경색을 조장하는 주범이 되기 십상이고, 특히 상사의 의중을 거스르거나 부하 직원들과 의견이 갈리기라도 하면 모임의 판을 깨며, 목소리만 큰 사회생활 못하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위험부담의 정도에 비해 실익도 재미도 없으므로 그런 주제는 아예 금기의 목록에 속한다. 모두에게 안전한 주제는 보통 누구는 승진을 했다, 자가용이 바뀌었다, 아파트를 넓혔다, 아무개의 아이가 굉장한 성적으로 진학했다, 누구의 연매출이 얼마라더라 등이다. 가끔 남의 얘기를 빌려 지극히 소심하게 거론되는 연애담이 더해질 수도 있겠다. 앞에 말한 ‘누구’라거나 ‘아무개’ 또는 ‘남’에 끼이지 못한 대부분의 40대가 오늘도 공허한 뼈대의 이야기로 술자리를 채우고 밤을 넘고 새벽을 달린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40대 남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단하고 헛헛한 느낌의 휘청거리는 뒷모습이 쉽게 연상되는 거 말이다.
주 4일 근무제 시행하는 회사
그는 특별시에 사는 40대 남성이다. 모두들 그를 ‘늘보’라고 부른다. 울보, 먹보, 술보의 ‘보’에 ‘늘’이 붙었으니 느리기까지? 별명으로 통용되고 있는 그와 인터뷰 약속을 정하며 굳이 이름 석 자를 묻지 않았다. 나이와 성별이 주는 일반적 선입견을 벗어난 이런저런 연상을 자연스레 하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재미있고 설레었다. 동네 아줌마와 밤늦도록 단둘이 얘기 나누기를 즐기는 40대 남자라 들었다. 늦은 밤 한적한 서울의 주택가 어느 공터나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는 중년의 외간 남녀를 떠올렸다. 이문열의 서울 버전을 상상하며 혼자 쿡쿡거리며 웃었다(혹 속되고 불손했더라도, 무엇을 하건 탓할 수 없는 타인의 머릿속 생각이니 인터뷰이에게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그의 첫인상은 꽤 잰 느낌이었다. 비주얼이 평소만 못하다고 슬쩍 걱정을 하며 그 이유가 주문받은 일이 바빠 어제 밤샘을 했기 때문이란다. 행동거지가 너무 느려 움직이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나무늘보’는 그의 희망사항쯤 되는 건가 싶어 일에 대해 먼저 물었다.
늘보 황연주(42)씨는 ‘가장 좋은 디자인은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이든디자인’의 대표다. 자연을 동경하고 사랑하므로 그것을 닮아가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 기업의 노트와 수첩은 문구 마니아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재생지를 사용하며 제품 구매가의 2%를 나무 심기에 쓴다. 깔끔한 디자인이라거나 빈티지하다는 평이 많다. 수년씩 이든디자인의 제품만 쓴다는 단골도 꽤 있다.
그는 대학 졸업 전부터 디자인 전공을 살려 노점을 차렸다. 탐욕과 이기적인 전횡을 일삼는 대기업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기업 풍토를 보며 그렇지 않은 기업의 성공 사례를 만들 꿈과 자신감이 있었다. 꾸준히 기업을 이끌어오고 있지만, ‘일’이 행복하다거나 좋다는 말은 허상이라고 했다. “일하는 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성취감이 있는 순간이나 일하는 어느 과정이 잠깐 좋을 수야 있지만, 일하는 것보다 사람은 놀 때가 좋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울 때 제일 좋다. 누구나 그럴 텐데 사회도 개인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다.” 대표의 이런 철학대로 이든디자인은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출퇴근도 여느 직장의 시간을 비켜 정했다. “그렇게 해도 아무 지장 없이 잘 굴러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신의 현재를 ‘좋다’고 말할 수 있는 40대 남자가 몇이나 될까. 그는 지금의 일상이 참 ‘좋다’고 했다. 흔히 쓰는 ‘만족’한다는 표현과 달리 잔잔하면서도 진정이 느껴졌다. 그가 8년여를 살고 있는 곳은 성미산마을로 알려진 서울 마포다.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잠깐 머뭇하더니 이내 웃으며 ‘동네 아저씨’라고 했다. 처음부터 마음먹고 성미산마을에 터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일터가 자리한 곳이 성미산 일대였고, 촛불집회 이후 이곳이 좋아 집까지 옮겨왔다. 저 좋자고 이사까지 한다며 전적인 찬성을 하지 않던 아내도 점점 동네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MB”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내 삶은 광우병 촛불집회 전과 후로 확연히 나뉘기 때문이다. 집회 초기에 엄청난 전경 부대의 진압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 뒤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과거에 말로만 들었던 광주항쟁 등이 새삼 상기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집회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 심하다고 걱정할 정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어, 나도 거기 사는데’ 하면서 지금 내가 인연을 맺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동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솔선해서 했다. 주민들의 자치 공간 ‘민중의 집’이 이사했을 때는 실내 디자인 등 공사 전반에 대해 꼬박 한 달간 재능기부를 했다. 힘들지만 큰 보람을 얻은 일이었다. 자꾸만 일이 늘었고 만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역 라디오 방송 에서 탈학교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는 꼭지를 제안받아 진행하기도 한 그는 나름대로 동네의 유명 인사다.
동네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만나자 그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곧 무언가 될 것 같은 촛불집회의 날들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했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게 그대로 끝이었다. 무기력하고 허탈했다. 그동안의 삶과 미루었던 일들을 채잡아 하나하나 다시 돌아보았다. 막연히 미뤄뒀던 하고자 했던 것,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목수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나무를 좋아하는 그는 어릴 적부터 목수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더 나이 들면, 지금은 어려우니까, 그렇게 나중이라고만 생각했다. 의문이 일었다. 왜 나중이어야 하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저 없이 공방을 차렸다. 작지 않은 규모의 공방을 어떻게 유지할지 걱정하는 이도 있지만 필요한 것을 장만해나가며 주문을 받고 기꺼이 만들고 있다. 이든디자인 대표 직함과 더불어 도시의 즐거운 초보 목수가 된 것이다. 지금보다 안정되면 좋은 일을 하겠다는, 누구나 함직한 계획을 그도 가지고 있었다. 그 일 또한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부부터 빠지지 않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동기나 후배들은 늘보의 삶을 부러워한다. 자신이 뜻한 대로 기업을 이끌어나가고, 하고 싶은 일을 그때그때 도모하고 실천하며 살기 때문이다. 동종업의 탄탄한 직장에 있던 친구들도 그의 나이가 되면 하청을 내주는 명분으로 회사에서 퇴출되고 다니던 직장을 상대로 영업과 로비를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부러워는 하지만 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후배들 몇몇은 얘기를 나누고 나서 좀더 나은 쪽으로 공부를 하거나 진로를 수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가치 기준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성공을 말할 때도, 아이의 교육도, 노후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가치와 사회적으로 규정된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포르쉐를 사든 작은 차를 끌든 그게 자신에게 맞아 선택했으면 가장 좋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닌데도 매사를 자신의 기준이나 판단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것에 이끌려 살아간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버리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하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부릴 것인지, 시간과 임금을 깎고 더해야 하는 계산의 연속이 필수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만 하고 그 방면의 전문가를 영입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돈은 좀더 벌릴지 모르지만 계산을 거듭하는 고단함과 비인간적인 이기심을 돈이 보상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규모와 상관없이 기업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 대형마트가 동네에 비집고 들어오는 게 나쁜 게 아니라 동네에서 얻은 것을 고스란히 사업주의 주머니에만 넣는 것이 문제다. 작게는 자신이 속한 기업의 구성원에게 그리고 점점 넓혀서 기업의 이윤을 공동체와 사회에 환원하는, 그래서 기업이 다시 성장하는 선순환의 구심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말을 하면 요즘 진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상식이다.”
언젠가부터 ‘동네 아저씨’는 힐끔 쳐다보며 경계를 하게 되는 대상이다. 생활 속의 즐거움을 나누고 위험에 처했을 때 위로와 안전을 주는 이웃과 공동체의 경험이 없는 개인은 불안하고 외롭다. ‘이든’은 순우리말로 ‘어질다’는 뜻이다. 늘보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착한 기업가와 ‘동네 아저씨’와 ‘목수’가 되었다. 야밤까지 동네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는 일이 재미있고, 그게 흉이 되지 않는 동네에 그가 살고 있다(한 두어 사람은 흉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글 신수원 제1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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