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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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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건너온 너른 마음자리

재능교육 해고자 오수영씨와 장기 농성장을 걷다…천막도 없는 노숙 농성자의 견고하고 소박한 희망
등록 2011-10-13 17:34 수정 2020-05-03 04:26

10월의 캠퍼스는 화사했다. 촌스러운 정치적 구호가 내걸렸던 자리에는 대기업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턴십·채용 광고가 즐비했다. 이어폰을 꽂은 트렌디한 젊은이들이 분주히 백양로를 오갔다. 그 가운데 섬처럼 청소노동자들의 천막이 있었다. 지난 10월4일 오후, 그 천막이 쳐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로 삼거리에서 ‘제4차 희망걷기’ 행사가 열렸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농성 천막부터 서울시청 앞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노천 농성장까지 오랜 싸움의 현장을 순례하며 지지와 연대를 나누는 행사였다.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이행을 뭉개고 노조 파괴 행위를 일삼는 제일휴먼·장풍 등의 용역회사를 상대로 올봄부터 농성을 벌여왔다. 환갑을 앞둔 아주머니·아저씨들의 요구는 시급 4600원으로 인상과 노조 탄압 중지였다. 천막 뒤편의 연세대 대학 본관은 “우린 책임이 없으니 당장 철거하라”고 천막에 공문을 보냈다. 부서지던 햇살이 천막 앞에서 그늘을 드리웠다.

지난 10월5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입구 처마 밑에서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오수영 사무국장이 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이 천막을 철거한 지난 8월1일 이후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5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입구 처마 밑에서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오수영 사무국장이 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이 천막을 철거한 지난 8월1일 이후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1386일 동안의 싸움

40여 명의 참가자 앞에서 행사 진행을 맡은 류한승 서부비정규센터 상임활동가가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오수영(38) 사무국장을 소개했다. “재능교육의 폭력적이고 악랄한 노조 파괴에 맞서 1380여 일 동안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는 해설이 덧붙여졌다. 오수영 사무국장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기에 왔다”며 “열심히 걸으며 희망을 만들자”고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밝았고, 목소리는 생기가 있었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길바닥에서 4년 가까이 거리를 헤매며 오랜 싸움을 한 사람이 지닐 법한 피로감이나 핍진함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활력에 비해, 재능교육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처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는 “지난 8월1일 경찰이 농성장 천막을 철거했어요. 다시 텐트를 치면 전부 연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천막 없이 지내고 있는데, 날이 추워져서 걱정”이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거리에서 천막도 없이 노숙하며 농성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기자는 알지 못했다. 희망걷기 행렬을 따라 걸으며 그녀가 말했다. “시청 옆 환구단 입구 처마 밑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이불을 덮고 자죠. 지난 9월30일에는 중구청에서 퇴거명령을 내렸어요. 국감이랑 서울시장 선거 때문인지 퇴거 집행을 안 하고 있는데 언제 끌려갈지 모르죠.” 중구청은 재능교육 농성단으로부터 환구단을 보호(!?)한다며 시청 문화재과에서 예산 3천만원을 지원받아 입구 앞에 1.5m의 벽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제 공사업자가 둘러보고 가더라고요. 문 앞에 문을 만든다는 거죠.” 그들은 문화재처럼 보호받지 못했다. 구청 공무원들에게 그들은 투명인간인지도 모를 일이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은 2007년 12월21일. 2007년 5월 노조와 회사 쪽이 맺은 단체협약이 싸움의 발단이 됐다. 조합원들은 ‘회원관리수수료’(사실상 임금) 1인당 10만~100만원 삭감, 성과급 차등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협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반발한 조합원들이 새로 노조 집행부를 꾸려 싸움에 나섰다. 회사는 “전임 노조와 체결한 단협을 다음 노조가 인정하지 않아 단협을 파기했다”며 버텼다. 싸움은 10월4일로 1386일이 됐다. 그 누구도 이 싸움이 1386일이나 계속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사이 12명의 조합원이 해고를 당했다. “우리는 무얼 더 얻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을 뿐이에요. 우리의 요구는 파기된 단체협약의 복원과 해고자 복직밖에 없어요.”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해고자들은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옆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다 지난해 11월7일 노동자대회 때 지금의 서울시청 앞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시청 앞 생활도 벌써 1년이다. “상황은 대학로에서 농성할 때보다 지금이 나아요. 집회 신고를 내려고 혜화경찰서 앞에서 96시간을 서서 기다린 남자 조합원도 있었어요. 한자리에 서서 먹고 자고 싸고 다 했죠. 자리를 비우면 회사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 뒤 집회 신고를 해버려 자리를 비울 수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회사 쪽에서 용역깡패를 동원해 폭행과 성적 폭언을 일삼았는데 이곳으로 오니까 보는 눈이 많아서인지 그렇게 대놓고 하지는 못하더라고요.”

차량과 급여, 사무실 집기까지 압류

회사 쪽의 가시적인 폭력은 줄었지만, 압박은 더 가혹해졌다. 지난 1월 재능교육은 “지난 2007년 12월21일 이후 발생한 업무방해행위와 불법행위의 책임을 물어 강종숙 학습지노조 위원장 등 7명에게 20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보복은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 쪽은 “본사 100m 반경 내 불법 집회 및 무단 천막 설치 등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회당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2008년 2월 서울북부지법의 결정을 근거로 해고자들의 개인 재산을 압류했다. “회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조합원 개인별로 2천만~3100만원 상당의 간접강제금에 대한 압류 절차를 진행했어요. 학습지노조의 방송 차량과 재능교육지부 사무실 집기, 강정숙 위원장의 차량과 급여가 압류됐고, 저희 집의 살림살이와 유득규 사무처장의 부동산도 압류 절차를 밟았어요. 최근에는 조합원을 신용불량자로 등재하려다가 노동부 국감 때 문제가 되자 바로 취소하더군요.”

그녀에게 지을 한숨이 남아 있을까. 그녀를 현실에서 구할 순 없어도, 잠시 과거로 ‘납치’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학 시절에 대해 물었다. “풍물패 활동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이 있었거든요. 두들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들어갔는데, 가서 풍물 말고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배웠죠.” 공부하기 싫어하던 여학생은 풍물패에 들어가 처음으로 행복을 맛봤다. “자기주도적 활동이 주는 즐거움이랄까. 어린애가 열심히 하니까 선배들이 잘 챙겨준 것도 좋았죠.” ‘자기주도 학습’이 떠오른다는 농담에 어깨를 치며 밝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내 농담이 너무 일찍 그녀에게 현실을 환기시킨 것은 아닐까 미안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뒤 현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장 취업을 했다. 25살이었다. 서울 구로공단에 있던 전자업체였다. 노조는 없었다. 거창한 뜻보다는 단순 작업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생각에 선뜻 뛰어든 공장이었다. “현장에서 바보 취급을 받았어요. 숙련노동자들에 비해 불량률도 높고 잘 못하니까 많이 혼났죠.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과 손이 하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그때 알게 됐죠.” 그녀는 육체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며 삶의 구체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노동자들을 보며 조직되고 훈련되고 정치적인 노동자라는 자신의 막연한 생각이 얼마나 관념적인 것인지 알게 됐다. “나이도 어리고 철도 없어서 조직 사업의 성과도 못 냈다”는 그녀는 “공장 생활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희망걷기 행렬이 서대문 농협중앙회 앞에 도착했다. 농협중앙회는 비정규직법의 적용을 피하려고 계약 만료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기적으로 해고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전국사무연대노동조합 농협중앙회지부장이 해고를 당했고, 지난 6월에는 단체협약까지 일방적으로 해지됐다. 그녀가 말했다. “농협중앙회지부처럼 우리 말고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노동자가 많아요. 얼마 전 상경 투쟁길에 저희 농성장에 지지 방문을 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저희를 보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안 좋았나 봐요. 한진중공업 상황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 말이죠. 춥고 서러운 사람들끼리 그렇게 연대하고 서로 기댈 때 힘을 받죠.”

그녀의 농성장 옆으로 사람들이 스쳐간다. 그녀는 1300일이 넘는 오랜 싸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가족, 연대하는 시민들이라고 말했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 재능교육 농성장에서는 작은 문화제가 열린다.

그녀의 농성장 옆으로 사람들이 스쳐간다. 그녀는 1300일이 넘는 오랜 싸움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가족, 연대하는 시민들이라고 말했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 재능교육 농성장에서는 작은 문화제가 열린다.

“강철도 깼는데 종이는 못 찢겠냐”

학원 강사 노릇을 잠시 하다 2001년 재능교육에 입사한 그녀는 공장과 다른 직장 생활이 즐거웠다고 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대학 시절 풍물패 때처럼 정겹고 훈훈했다. 입사 뒤 선배들의 권유로 재능교육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1999년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라는 불합리함 속에서 출범한 재능교육노조(서울·경기 지역의 경우 95%의 조직률)는 2001년 당시 교사 7500여 명 가운데 조합원 3800여 명을 거느린 힘있는 조직으로 매년 단체협약을 맺어왔다.

“1999년에 이어 두 번째 파업을 벌인 2001년 이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회사의 노조 탈퇴 강요가 시작됐어요. 옛 포철(포스코)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방중웅씨가 최고경영자(CEO)로 오고 나서부터였죠. 그 사람이 ‘강철도 깼는데 종이는 못 찢겠느냐’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 출산으로 1년여 노조 활동을 쉬었다가 2006년 8월 노조에 복귀한 오수영씨는 달라진 분위기를 절감했다. 모진 날들이었다. 결국 회사 쪽의 집요함은 주효했다. 그 많던 조합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녀에게 노조 가입을 권했던 선배들마저도 노조를 탈퇴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20명 가운데 17~18명에 달하던 조합원이 모두 떠나고 어느새 그녀 혼자 남았다.

고난은 홀로 오지 않는 걸까. 2007년 2월, 한솔교육 학습지 교사였던 남편이 부당해고를 당했다. 노조 대의원 선거에 출마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해 11월 남편의 해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두가 떠난 노조에서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듬해인 2008년 11월 그녀도 해고를 당했다. ‘부부해고자’가 됐다. 복직에 합의한 남편의 회사는 복직을 시켜주지 않았다. 남편은 2년 넘게 복직 투쟁을 벌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움을 접었다. “그때는 서로 걸핏하면 부딪쳤어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저는 저대로 힘들어서 서로 돌볼 상황이 못 됐어요. 위기였죠. 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녀는 올여름 패혈증을 앓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의사는 남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더 큰 통증이 작은 통증을 잊게 한 걸까. 남편이 먼저 아내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그러고는 극진히 보살폈다. 오수영씨도 그런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 사랑으로 패혈증은 흔적도 없이 완치됐다. “지금도 말은 안 하지만 복직 투쟁을 접고 재취업을 한 것이 남편에게는 큰 아픔으로 남았을 거예요. 마음이라도 추스르고 취업을 하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남편이 안쓰럽고 미안하죠.”

행렬이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 당도했다. 텐트가 있다. 사내하청 관리자의 성희롱을 고발했다고 부당해고를 당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는 텐트였다. 바로 옆 청계광장에선 박원순·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참여한 ‘희망나눔걷기’ 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초대 가수의 흥겨운 노랫소리에 해고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는 줄곧 묻혔다. 희망은 잘 나눠지지 않았다. 1300여 일을 견디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가족이죠. 그리고 연대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희망이죠. 그만두거나 떠난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아요. 저도 지금 힘이 남아 있으니 싸우는 것뿐인 걸요.”

소박해서 더 절실한 희망

고난을 건너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견고하고 너른 마음자리를 마주하며,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기자는 가늠할 수 없었다. 싸움이 끝나면 반드시 조합원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녀에게 복직 이후를 물었다. “복직이 된다면, 정말 홀로 여행을 가고 싶어요.” 소박해서 더 절실한 희망이었다. 서울시청 앞 천막 없는 재능교육 농성장을 떠나며, 우리가 그들의 천막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 천막에서 그녀의 희망이 비롯되기를 바랐다. 후원 계좌 우리은행 1002-237-375810 전준예

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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