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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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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님의 안경은 오늘도 진화 중


박사의 케로로 안경
등록 2011-04-15 13:02 수정 2020-05-03 04:26

친구가 묻는다. “너는 케로로 닮았다는 소리 듣는 게 좋아, 뽀로로 닮았다는 소리 듣는 게 좋아?” 둘을 비교하자면 케로로의 성격이 더 마음에 들고, 요즘 ‘뽀느님’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뽀로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쪽도 뭐,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헤아리다 문득 발끈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내 주변에는 나를 ‘중사님’이라 부르는 무리까지 있는걸. 그렇잖아도 동그란 얼굴에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동그란 안경 탓이다. 한동안 “뽀로로, 라식수술 하지 마라”며 뽀로로 얼굴에서 안경만 지운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녔을 때 친구들은 내게 안경을 벗어보라며 성화였다. 정말 닮았나 보자며.

어쩌다 보니, 안경 때문에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늘었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독특할 것도 없는 안경이다.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5천원 주고 사서 안경점에서 렌즈만 바꿨다. 대학생 시절 안경을 쓰기 시작한 이래 바꾼 안경만 열두 개다. 처음엔 이물감 때문에 무테의 작은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테가 크고 렌즈에 색이 들어간 안경이 아니면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 얼굴 위에서 안경이 자라난 셈이다.

흰 테에 분홍색 알의 안경. 두꺼운 검은 테에 노란색 알이 든 안경, 날렵하게 빠진 모양새에 녹색 알이 든 안경 등등등. 한 시절 쓴 안경들임에도 이제 다시 써보면 왠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얼굴이 안경에 맞춰지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예전부터 날 알아왔던 사람들은 내 안경의 진화 과정을 눈치채지 못한다. 신묘한 물건이다, 이 안경이란 놈은.

사실 안경은 패션 아이템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실용성만 따지기에는 지나치게 눈에 띄는 묘한 물건이다. 아침마다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헤매야 하고, 추운 데 있다가 따뜻한 데 들어갈 때 김이 서려 일시적으로 눈이 안 보이는 걸 감수해야 하며, 운동할 때도 귀찮고 뜨거운 국물 먹을 때도 귀찮다. 바지런히 닦아줘야 하고 어쩌다 어디 부딪히기라도 하면 충격이 크다.

새로 안경을 바꿀 때가 되어도, 마음에 드는 안경 만나기가 진짜 힘들다. 친구와 함께 들어간 안경점에서 녹색 하이그로시 무늬 테에 금색 장식이 된 안경을 찾아낸 적이 있다. 무척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 뽀얗게 먼지를 쓰고 있는 독특한 안경이었다. 사야겠다, 싶어 챙겨놨다가 친구에게 빼앗겼다. 그날은 선선히 양보했는데, 그 뒤로 같이 다닐 때마다 다들 그 안경을 칭찬하니 마음이 몹시 쓰렸다. 안경과의 인연도 사람과의 인연만큼이나 운명적이다. 매일 코 위에 얹고 다녀야 함에랴! 적어도 사람은 안 만날 때도 있지 않은가.

하루, 안경을 벗고 다녀본 적이 있다. 근 15년 만이었다. 일회용 렌즈를 끼고, 그 김에 기다란 가짜 속눈썹까지 달아보았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친한 사람들이 나를 어색하게 대한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안경을 벗은 나는 더 이상 ‘중사님’이 아니었으니, 그들의 낯설고 생경한 태도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때는 내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내 몸의 일부도 아닌 안경이라는 사실이 좀 섭섭하기도 하다. 안경 뒤의 빛나는 내 눈을 봐줘, 하면 기껏해야 돌아오는 반응이란 이런 거다. 네 안경은 네 눈이나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판다곰 눈 주변의 까만 얼룩도 눈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박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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