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부자 아파트에선 달그락거리는 철가방 대신 얌전해 보이는 목조 가방 안에 중국집 자장면이 배달된다는 사실을. 동네에 따라 사물은 표정을 바꾼다. 표정만? 아니. 디자이너의 사무실과 공장을 나오는 순간 사물은 예상했던 틀을 넘어선다. 쓰임새도 위치도 모두 바뀐다.
가난한 동네에서도 부자 마을에서도 일관성 있는 사물도 물론 있다. 그중 하나가 빨간 삼각형 뿔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 앞 주차장이나 공터, 광활한 고속도로에서 이 빨간 고깔은 제자리를 지킨다. 서 있는 삼각 포즈만은 누구의 발등에 차여도 넘어지지 않을 듯 견고하다. 마치 부동산(不動産) 같다.
삼각뿔은 금지의 이미지다. 왜 여기에 놓였을까 물으면 맹꽁이다. 관습적으로 이 사물을 바라보면 궁금할 게 없다. 거리에 널린 삼각 고깔은 ‘하지 마’ ‘오지 마’라고 딱 잘라 말한다. 교통사고 발생시 구역을 정하고 건물 앞 주차 금지를 명령한다. 그것뿐인가. 언제나 ‘공사 중’이던 이 땅에서 삼각뿔은 손가락에 끼워 먹는 ‘꼬깔콘’처럼 낯익은 이미지였다. 그러니까 ‘새빨간’ 색으로 ‘금지’를 말하는데도 친숙한 이미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런데 거리의 반항아도 붉은 삼각뿔을 무시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넘어뜨리기 몹시 쉬운 적이며 싸움을 걸기에는 그것이 가진 힘이 애당초 초라하기 때문이다. 돌진하려면 부서지기 힘든 건물에 하고, 겁을 주려면 상대가 될 깜냥을 찾으니까 말이다.
빨간 뿔이 가진 권력은 뭐랄까, 초라해서 좋다. 명령하는 사물이지만 사실 전혀 안 무섭다.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과 사 사이에 있기도 하다. ‘러버콘’(Rubber Corn)이라는 명칭의 요 고깔은 삼각형을 활용한 형태 중 아마 가장 낮은 데 위치한 디자인일 것이다. 책 을 쓴 캐서린 셀드릭 로스는 삼각형이 “압력에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유일하고 튼튼한 구조”라며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파리 에펠탑을 예로 들었다. 러버콘은 유일하지도 않고 튼튼하지도 않다. 손가락 3개로도 들썩거리는 가벼운 고무 재질에 속은 텅 비어 있다. 키는 75cm. 도로 안전용품이지만 막상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에는 무능력하다. 더럽혀지고 찢겨나가고 멍든 뿔들이 거리에 널렸다.
무능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 거리 공용어인 러버콘 디자인은 주인에 따라 다르게 대접받는다. 어떤 러버콘은 까만 차바퀴 안에 쏙 들어가 있고 어떤 건 꼭 2개의 뿔이 모여 같이 서 있다. 마치 오랜 시간 파도에 깎이는 바위의 운명을 몇십만 분의 1로 단축해놓은 것처럼 러버콘은 사람들에 의해 형태가 바뀐다. 그렇게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재밌다. 지난 1월 제주도 우도에서 본 삼각형 뿔의 모습이 그랬다. 눈이 내린 들판 사이에 도도하게 식물처럼 서 있다.
수많은 삼각뿔들은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을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오늘(2월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군복을 입은 보수국민연합 할아버지들이 막 초상화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을 1m 앞에서 보고 들어왔다. 차가 가끔 러버콘을 무시하고 돌진하는 장면처럼 성난 할아버지들이 꽤나 무서웠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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