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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몸? 선배 난임 여성이 전하는 말

자연스러운 임신·출산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시간…돌입하기 전에 해야할 질문들
등록 2025-03-28 20:47 수정 2025-04-02 20:19
태아의 초음파 이미지를 들고 있는 여성. 게티이미지뱅크

태아의 초음파 이미지를 들고 있는 여성. 게티이미지뱅크


1년 넘는 난임 시술 끝에 아기를 얻은 후배는 시술 기간을 힘겹게 돌아봤다. “선배, 임신과 출산, 육아는 더 힘든 과정이더라고요. 너무 힘들면 선배, 굳이 난임 시술 계속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1년의 육아휴직 끝에 돌아온 후배는 임신, 출산, 육아 기간 동안 너무나 일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기로 인해 가정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매우 컸지만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 전까지는 24시간 독박 육아를 하면서 오히려 일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고 했다. 아기를 낳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고단했다고 생각했는데 아기를 낳아보니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 역시 예상하지 못한 시간들이었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내 몸 상해가면서까지 난임 시술을 수차례에 걸쳐 받았어야 했을까, 후회 섞인 자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물론 아기가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양가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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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임신 가능성’을 찾는 시간

후배가 그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은 해봤다. 여성인 내가 임신과 출산의 길을 걷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면 나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더욱 늘어났을 것임을. 언젠가 외국에서 살고 싶은 나는 계속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엿봤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나 자신이 더 성장하기 위해 도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출산을 결정했고, 동네 산부인과에 다니며 자연 임신이 가능한 배란일이 언제인지 상담하던 시기까지 포함해 최근 3년은 꼬박 오로지 ‘임신 가능성’을 찾는 시간이었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최소 수개월에서 1~2년은 혼자만의 임신 준비 기간을 거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특히 난임 시술이 (난소의 가임 능력과 관계되는) 시간 싸움이 돼버리다보니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치기 쉬웠다. 후배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 역시 그 진실을 깨달았다.

돌아보자면,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라지만 난임 시술을 받는 나도 결코 현재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 행복을 어디까지 희생할 것인가. 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사회에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난임 치료의 길을 선택한다면 더욱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197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험관 시술로 아기가 태어난 뒤 정착돼온 난임 시술 기술은 임신, 출산 행위에 과학(의학)이 어디까지 개입하느냐는 논란을 낳았다. 이제는 너무나 보편화된 의료 행위가 됐고 이미 2003년에 세계 누적 100만 명 이상이 시험관 시술로 태어났지만, 지향하는 가치와 시술의 안전성이 달라졌을 뿐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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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이 도구화되는 많은 순간

그 과정을 직접 겪은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여성의 몸이 도구화되는 많은 순간을 피하기 어려웠다. 자연스러운 임신·출산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시험관 시술이었다. 난자 채취를 위해 필요한 호르몬을 주입하는 모든 과정, 이식 전 자궁의 신경을 자극해주기 위한 자궁경 시술, 이식 뒤 강제로 호르몬을 투여해 임신 환경을 조성하는 모든 과정은 임신을 위해서만 내 몸의 모든 기능이 존재하는 순간들이었다. 자연 임신 과정에서도 염색체 이상으로 도태되는 배아는 있을 수 있지만, 건강한 아기 임신을 위해 배아의 염색체 검사를 해야 했다. ‘정상’ 임신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 배아가 손상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난자 채취 과정을 여러 번 겪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 몸이 겪을 이런 과정에 대해 미리 자세히 알았다면 나는 시험관 시술을 받는 것을 더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임신과 출산을 결정한 건 나였지만, 나 역시 단호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려울 듯하다.

국외의 난임 지원, 치료 과정도 한국과 비슷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난임 시술 지원 사업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원하는 가정이 있다면 정부의 의료 지원 혜택을 보장해줘야 하고 민간 의료보험으로도 이를 보장한다는 기본 틀을 갖추고 있다. 저출생, 인구문제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복지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각 국가들은 그 취지를 밝히고 있다.

출생률 세계 최저 수준의 한국은 2024년 말부터 난임 시술 지원을 여성 ‘생애’당 25회 지원에서, ‘출산’당 25회 지원으로 바꿨다. 다자녀를 원하는 난임 부부들을 위한 정책이고, 첫째를 낳은 뒤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고령 여성과 남성들도 출산을 계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물론 지원해준다고 해도 추가 시술비, 약제비 등 실제 시술에 지출되는 금액은 지원금을 훨씬 뛰어넘지만 당연하게도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정부 지원사업이 임신 성공 자체에 달려 있을 뿐 여성이 이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느끼는 소외감, 외로움, 여러 신체상 변화에 대한 대응은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또 내 주변에서 첫째를 낳은 뒤 병원에 남겨둔 동결 배아를 어떻게 할 지 고민하는 난임 가정을 볼 때 이런 지원이 과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예쁜 아기의 성장 과정만 보면, 또 그렇게 힘들게 배아를 모았던 시험관 시술 과정을 돌아보면 그 배아를 그냥 폐기하는 것이 너무나 아깝고 후회스럽지만, 현실인 육아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되면 둘째는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결국 출생 지원만이 정답이 아니다. 인간의 생애가 쭉 이어지듯, 삶의 각 단계가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출산에 도전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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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여성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여성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난임 시술은 언젠가 끝난다?

난임 치료를 시작할지 고민할 때 의사인 지인은 “계속하면 언젠가는 된다”고 조언했다. 의료 기술에 대한 신뢰도의 차이겠지만, 계속하면 답이 있다는 그의 말은 어느 정도 맞아 보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시험관 시술을 통해 한 명의 아이는 얻는 경우가 많다. 20차례 시술한 가정도 주변에 있는데, 당사자인 여성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임을 너무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당연히 출산이 의무가 아닌 시대다. 그러나 늘고 있는 시험관 시술 아기에 대해, 만혼과 늦은 출산이 늘어난 시대에 대해 한국 사회는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대에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못한 이들은 사회 진입도 그만큼 늦게 시작된다. 미래를 유예한 청춘이, 그냥 쉬었다고 말하는 청춘이 늘어나는 이상 저출생 문제는 계속 정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있다. 다음 세대를 출산하고 양육한다는 것은 매 순간 같은 답을 내놓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회를 원천 차단하고 사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있을까. 30대 중후반에야 여성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주체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사회는 저출생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결혼을 준비하는 3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요즘 난자동결 등을 사전에 준비하는 경우도 늘었는데, 이는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시험관 시술이라는 만능 기술이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 아닐까. 무책임한 국가인 것은 아닐까.

난임 치료를 고민하는 또 다른 여성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국가의 저출생 고민은 솔직히 한 세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나 역시 (기자 아닌 개인으로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살아남느라 여러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버텨온 많은 청춘 남녀가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하고 출산을 결심했다면, 그리고 그 나이가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외롭고, 몸이 힘들고, 때로는 강한 배신감이 드는 일일 수 있다는 것도 꼭 알려주겠다.

이 지면을 통해 난임 시술 과정의 어려움, 난임 휴가 사용의 어려움, 의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난임 커뮤니티의 기능, 시술 지원금 정책의 허점, 의료 산업의 수도권 집중 문제와 상업화 등을 짚어보았다. 의료 시스템의 다양한 모순 속에 난임 여성이 실험쥐처럼 던져진 것은 아닌지 분노하는 순간도 많았고, 모성 보호를 말하면서 임신을 원하는 난임 여성들을 배제해온 사회 시스템을 확인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또 난임 가정의 증가로 우리 사회가 빠르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도기에 있음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미래를 위해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은, 일회성 시술이나 출생 지원 정책 자체에 답이 있지 않다는 것임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고단한 삶의 궤적 무방비로 반복않기를

내 경우 삶의 많은 부분이 난임 시술을 하기 전과 후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한다. 난임 시술을 하면서 내 신체에 대해 자각했을 뿐 아니라, 여성의 성과 임신·출산할 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나의 자율성을 어떻게 침해해왔는지를 생애주기별로 따져볼 수 있었다. 고민의 시간을 가지면서 난임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작은 위로를 받았다. 나의 이런 고단한 삶의 궤적을 다른 여성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기획 기사를 쓰고자 했다. 귀한 지면을 나눠준 한겨레21 동료들과 독자들께 감사하다.

 

난임여성 A

 

※‘우리들의 난임일기’는 이번 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난임여성 A와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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