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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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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어루만지는 쇼퍼홀릭이 돼라

주류 경제학의 한계에 한숨짓는 이들에게 희생 아닌 풍요의 소비 원칙 알려주는

줄리엣 쇼어의 <제3의 경제학>
등록 2011-02-11 11:41 수정 2020-05-03 04:26

2008년은 ‘종말의 해’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던 글로벌 자본주의의 금융 시스템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전세계는 순식간에 위기 상황으로 내몰렸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한 다음에야 다시 숨 쉴 수 있게 됐지만 이른바 ‘주류 경제학’은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 지난 25년 동안 열심히도 올랐던 ‘이 산’이 우리가 찾던 ‘그 산’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2008년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대체’라는 하소연 섞인 단어가 덧붙여졌고, 3년이 지난 지금 잡히지 않는 물가에 구제역, 지구의 이상기온까지 겹치면서 그 질문에는 깊은 한숨마저 깃들었다.

직장에 오래 머물지 말 것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풍요롭게’라고 답하는 책이 있다. 등의 저서를 통해 미국 사회의 소비문화를 짚어온 줄리엣 B. 쇼어 보스턴대학 사회학 교수가 쓴 (위즈덤하우스 펴냄)이다. 책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안 경제학을 얘기한다. 이쯤 되면 ‘뻔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그래도 책날개에 나온 쇼어 교수에 관한 설명은 ‘풍요’라는 그의 대답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게 한다. 쇼어 교수는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 주류 경제학의 무한 성장 패러다임에 반대해 사임한 뒤 보스턴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사회·경제·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뉴아메리칸드림센터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양적 소비와 상징적 소비가 아닌 슬로 소비와 효율적 소비는 ‘풍요’를 열쇳말로 한 대안적 시장경제의 중요한 축이다.연합

양적 소비와 상징적 소비가 아닌 슬로 소비와 효율적 소비는 ‘풍요’를 열쇳말로 한 대안적 시장경제의 중요한 축이다.연합

쇼어 교수가 말하는 ‘풍요로운 삶’은 넉넉하게 누리면서 잘사는 삶이다. 생태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책임감을 핵심 요소로 보지만, 그렇다고 ‘소박하게 살자’든지 ‘적게 소유하자’는 식의 희생을 요구하는 패러다임은 아니다. 노동·소비·일상생활에 완전히 다른 원칙을 도입하는 현명한 경제제도와, 혁신과 거시경제학적 균형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부의 원천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풍요’의 핵심이다. 또 정부나 기업 등 거대한 조직이 아닌 개인이 새로운 경제 구축에 참여하는 것이 풍요의 원동력이다.

풍요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시간의 재분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근로시간의 조정이다. 두 번째는 필요한 물건의 자체 조달이고, 세 번째는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착한 소비, 네 번째는 사람과 지역사회에 대한 투자다. 네 가지 원칙을 연결해 설명하자면, ‘적게 일하고 적게 쓰며 더 많이 만들어내고 더 많이 교류하는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인 근로시간 조정은 쇼어 교수가 말하는 풍요로운 삶의 출발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인은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써왔다. “일은 너무 많이 하고, 허겁지겁 식사를 하며, 사회적 교류는 너무나 부족하고, 오랫동안 운전석에 앉아 막히는 도로만 바라보고 있으며, 수면도 충분히 취하지 못한 채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보낸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져 음식은 주로 밖에서 사먹고, 집안일은 또 다른 근로자를 고용해 해결한다. 결국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삶의 기본 요건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다. 의료비·교육비·육아비는 오르는데 소비재 가격은 떨어진다. 쇼어 교수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정책을 단단히 해 근로시간을 줄여도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고, 유급근로·소득·시장소비 세 요소를 모두 줄여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생태학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자원 사용도 줄고, 탄소 배출과 생태 발자국을 함께 줄일 수 있다. 여유 시간 동안 소비하기보다 스스로 생산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원칙과 연결된다.

필요한 물건을 자체 조달하는 것은 현명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지탱시키는 든든한 기둥이다. 도시에 사는 가정에는 적용하기 힘든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실제 여러 예를 통해 지속 가능성과 자급자족이 결합한 생산활동이 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에서 채소를 기르거나 대체에너지를 사용한 가전제품을 쓰고 스스로 천연 재료를 이용해 집 짓는 이들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높아졌고 이 기술을 조금씩 적용한다면 누구나 스스로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비용 절약뿐 아니라 지식 집약적 기술 습득, 또 소규모 사업체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쇼어 교수는 자급자족적 생산방식이야말로 근대 이전 시대와 탈근대 시대의 장점만을 취사선택한 미래형 생산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줄리엣 쇼어의 <제3의 경제학>

줄리엣 쇼어의 <제3의 경제학>

적극적으로 ‘슬로 소비’하라

세 번째 원칙은 우리가 열광해 마지않는 소비다. 책은 ‘소비하지 말라’는 비현실적 주문 대신 ‘풍요로운 삶으로 인해 자유 시간이 늘어나면 소비 욕구를 억제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충족시키라’고 말한다. 소비 욕구를 적극적으로 충족시키는 방법은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슬로 소비’다. 수선 등을 통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제품, 한 가지 제품으로 여러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제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소비한다. 함께 쓸 수 있는 자전거나 자동차 등을 공유하는 방식 역시 소비의 한 가지 방법이다.

네 번째 원칙인 사람과 지역사회 네트워크는 앞서 말한 세 원칙을 지켜가다 보면 반드시 따라온다. 일을 줄이면 주변인을 돌아보게 되고, 자체 조달을 하고 착한 소비를 하다 보면 네트워크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제3의 경제학이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그 중심에 지구가 있다는 점이다. 쇼어 교수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풍요로운 삶은 만신창이가 된 삶을 복구하고 영혼을 치유하며 진정한 부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 과정에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와 그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너그러움과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방법을 제시해줌은 물론이다. 자, 무엇을 망설이는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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