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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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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밥, 그들의 사치

[노 땡큐!]
등록 2011-01-28 15:15 수정 2020-05-03 04:26

한때 ‘양파총리’로 명성을 떨치다 잊혀진 남자, 정운찬이 무상급식 논쟁에 끼어들었다. 하긴 그 양파총리 이후 몇 번의 악몽 같던 청문회를 거쳐 간신히 총리의 감투를 쓴 이가 누군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양파로서 그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또 하나의 ‘개드립’으로 기록될 그의 “무상급식은 사치” 발언을 들으며, 기울어버린 민심의 난세에 허우적대는 한나라당을 향해 기꺼이 한마디의 립서비스를 날려보는 소인배의 간절한 생존본능이 읽혔달까.

별을 따는 혁명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고아가 된 아이들의 땅까지 빼앗아가며 전력을 다해 투기에 몰두하고, 지능적인 탈세를 저지르며, 경이적인 재테크의 경지를 보여준 사람이 지식경제부 장관을 하겠다고 나서고, 청와대는 대체 뭐가 문제냐고 응수하는 이 마당에, 무상급식은 번지수가 한참 다른 동네의 얘기임이 분명하다.

200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는,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한 참극으로 온 산하가 슬픔에 허물어져가는데, 정권은 어떤 감흥도 반성도 없이, 살처분에 드는 예산이 얼만지 계산기만 튕기고 앉아 있을 뿐. 무지막지한 인재(人災)와 천재(天災)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간신히 비틀거리면서 굴러가는 나라에서 무상급식·무상의료는 자다가 두드리는 봉창인 것이 사실이다. 20에 의한 80에 대한 착취가 점점 더 악랄해지는 와중에도 지지율 50%는 거뜬히 나와준다는데, 쓸데없이 이렇게 착한 정책을 구사하는 건, 지배계급 입장에선 당연히 ‘사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별을 달라!

모든 혁명은 턱도 없이 사치스러운 요구에서 비롯됐다. 감히 시민들이 왕의 목을, 그리고 모두에게 자유와 평등를 요구하는 것이 혁명이다. 23년간 굴욕과 비참, 한 줌의 희망도 없이 버석거리는 날들을 삼켜온 자들에게, 권력자를 몰아내고 그들 자신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사치였다. 그러나 민초들의 삶을 금궤 몇t으로 맞바꿔왔던 한 줌의 무리들로부터 다시 빼앗긴 삶을 찾으려는 열정이 일순간 모였을 때,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아프리카 최초의 시민봉기, ‘재스민 혁명’은 실현됐다.

재벌가 아들 입에 공짜밥이 들어갈지라도 학교에서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아이들이 없게 하겠다는 것, 돈이 없어 병원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무상급식·무상의료가 감히 담고 있는 하늘의 별이다.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캄캄한 자본의 독재하에서 신음하지만, 무상급식 실현을 코앞에 둔 지금, 이것을 시발로 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혁명의 신호탄은 쏘아 올려진 것이다. 소리소문 없는 위대한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분노의 힘으로 모든 시대적 모순에 저항하라는 주문으로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94살의 노인, 의 저자 스테판 에셀도 정치 독재에 저항하기보다 자본 독재와 그것과 결탁한 계급 전체에 저항해야 하는 지금의 세대에게 더 큰 분노와 투지가 요구된다고 적은 바 있다. 잊혀진 ‘양파’까지 끼어들어 한몫 거들려고 애쓰는 광경은, 이 나라 지배계급이 품고 있는 조바심과 두려움이 어느 수위에 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대한 혁명이 우리 눈앞에 있는지 알려준다.

95%의 계급 독재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자들이 전면에 내세우는 논리는 가증스럽게도 ‘재벌총수 아들이 먹게 될 공짜밥’의 모순이다. 그들의 가상한 우려는, 소득 상위 5%에게 무상급식에 드는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하면 된다. ‘하위 95%의 계급 독재’라는 카드를 내미는 것이다.

상위 5% 안에 들어 억울하게 남들의 밥값까지 내는 봉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버는 바보짓을 덜 할 것이고, 돈이 인간 위에 서서 인간의 목을 조이는 참사는 사라질 것이며,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돈 이외에 우리 삶에 어떤 가치가 존재하는지 더듬거릴 것이다. 하늘의 별을 딴 자들의 가슴속엔 두고두고 별이 빛날 터이니….

목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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