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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삼킨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1Q84> 3권, 왜 한국은 하루키에 열광하나
등록 2010-08-04 16:50 수정 2020-05-03 04:26

무라카미 하루키가 돌아왔다, 3권을 가지고. 1·2권이 한국 판권 계약과 관련해 10억원 수준의 높은 선인세로 논란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면, 3권은 열띤 판매율로 이목을 끈다. 3권은 7월16일부터 온라인 서점 예약판매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중첩된 구조·단순한 문장이 매혹하나

〈1Q84〉

〈1Q84〉

한국어판을 출간한 문학동네에 따르면, 예약 판매 종료를 하루 앞둔 7월27일까지 총 3만여 부가 팔렸다. 초판 1쇄를 1천 부 단위로 찍는 한국 출판계의 보편적인 인쇄 부수에 비춰볼 때 상당한 양이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집계에 따르면, 3권 정상 판매를 시작한 7월29일 이후 2권까지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한국에 앞서 지난 4월16일부터 3권을 판매한 일본에서는 아침 9시부터 촌각을 다퉈 책을 구입하려는 독자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3권째, 두 개의 달이 뜨는 ‘1Q84’년의 공간을 담은 이 길고도 긴 이야기는 무슨 힘으로 독자를 서점 앞에 줄 서게 하는 걸까.

는 사실 2권으로 끝난 이야기다. 뛰어난 청부 살인업자 아오마메가 사주받은 암살을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이야기도 함께 끝났다. 그러나 독자들은 끝을 믿고 싶지 않았다. 비밀 종교의 리더를 암살한 뒤 도주한 아오마메의 이후가 어떻게 될지, 그가 10살에 만나 헤어진 또 다른 주인공 덴고와 다시 만나게 될지, 암살을 사주한 노부인의 이후는 어떨지, 작가 지망생 덴고와 기묘한 사건으로 엮이는 후카에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독자는 열린 결말로 보이는 소설의 끝을 3권을 향해 열어뒀다. 다시 ‘하루키 현상’을 이야기할 정도로 독자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의 구조는 단순하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마음에 품어온 아오마메와 덴고의 사랑을 큰 줄기로 하루키는 여러 개의 플롯을 겹쳐놓았다. 조지 오웰의의 ‘미래 세계’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듯한 ‘1Q84’년의 세계, 지하철 테러 사건으로 세상을 경악하게 한 일본 옴진리교를 떠올리게 하는 집단 ‘사키가케’, 9·11 테러 등을 모티브로 한 여러 겹의 구조는 소설을 복잡하게 만든다. 1·2권에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됐다면, 3권에서는 두 사람을 쫓는 우시카와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세 인물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시간은 더욱 중첩된다.

비교적 복잡한 플롯에도 독자를 흡입할 수 있는 힘은 간결한 문장에 있다. 문장은 대체로 짧고 쉽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때때로 독자의 감각 혹은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는 읽는 이에게 이완을 준다. 긴 분량에 비해 인물관계가 복잡하지도 않다. 가령 도스토옙스키의 를 읽을 때처럼 가계도를 그려가며 쩔쩔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각 권마다 600쪽이 넘는 분량을 들이켜고도 이후의 이야기에 목말라했는지 모르겠다.

그의 문장은 이렇게 친밀하지만, 때때로 그 친밀성은 숙고해서 가다듬은 듯 작위적이기도 하다. 종종 리듬을 타는 것처럼 음악성을 띠는 문장은 그래서 일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처럼 낯설다. ‘하루키적’이다. 하루키적 문장은 호불호가 강하다. 문단에서는 호평과 혹평이 번갈아 솟아오른다. 2006년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편, 그의 소설에 꼭 등장하는 상실·고독·사랑이란 소재는 ‘자기애의 표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20년 열풍에도 한국의 하루키 연구는 저조한 편

그런데 한국에서는 하루키에 대한 단편적 비평 외에 그의 작품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후 20여 년 동안 한국 독자를 대체로(아니, 아주 많이?) 열광에 빠트렸음에도, 영민하게 ‘거품’을 분별해내는 독자가 여전히 그의 책을 열독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성과 문학성의 기로에서 다양한 비평을 쏟아내게 하는 하루키 작품의 연구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확고한 듯하면서도 서서히 허물어지는 한국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도 어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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