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2일. H.O.T 4집 컴백 스페셜 방송을 보기 위해 대기했다. 공개방송 못 간 것도 억울한데 본방송까지 놓칠 수는 없다. 녹화 버튼에 손가락 세팅하고 ‘오빠들’이 나오는 부분을 직감적으로 포착해서 버튼을 누른다. 리니어(선형) 편집의 대가나 다름없다. 깔끔하게 H.O.T가 나온 부분만 녹화된 테이프는 벌써 상자에 가득이다. 엄마는 저것들 좀 내다버리라고 야단이시다. “안 돼. 학교 가져가서 애들이랑 점심시간에 봐야 돼!” 투쟁의 역사였다.
2010년 5월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오늘 보고 싶던 콘서트에 못 간 것이 조금 억울한 주말이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자주 가는 게시판을 둘러봤다. 오늘 방송한 프로그램들이 벌써 ‘플짤’(짧은 플래시 동영상)로 만들어져 올라와 있다. 이 중 전체 내용이 궁금한 프로그램을 몇 개 다운받는다. 왼쪽·오른쪽 화살표 버튼으로 후루룩 훑어보고 두 개는 휴지통에, 하나는 외장하드에 넣는다. 요샌 ‘팬질’하기 참 쉬워졌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전자통신 기술 발달은 팬질의 양상도 바꿔놓았다. 오프라인 공식 팬클럽에 가입하고, 음성사서함으로 스케줄 확인하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녹화·녹음하고, CD와 테이프를 사고, 매달 새로 나오는 잡지며 사진을 모으고, 유료 가입 서비스인 PC통신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던 것은 1990년대 팬질의 방식. 웬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는 팬이 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스스로 팬이라는 정체성은 확고했고 팬덤의 경계도 단단하고 높았다.
1990년대 후반 전국적으로 초고속 통신망이 깔리면서 인터넷이 일반화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가입과 활동에서 진입장벽이 높고 마니아 성향을 가진 동호회에 비해 인터넷 커뮤니티와 팬사이트들은 상대적으로 열린 공간이었다. 열성적 팬들 외에 가벼운 호감을 가진 이들도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팬덤의 크기가 커지는 한편 깊이는 얕아지고, 팬의 스펙트럼은 넓어졌다.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고 음원을 듣는 ‘라이트팬’부터 영상과 사진을 직접 촬영·편집해 유포하는 ‘능력자’까지.
이와 함께 요새는 아이돌에 대한 태도도 편해졌다. 아이돌의 이미지가 친근하게 바뀐 탓도 있지만, 번거로운 활동에 대한 부담없이 가벼운 애정을 가지고 팬이 되고 여차하면 훌쩍 떠날 수도 있게 된 데에는 기술 발전이라는 이유가 크다. 나 역시 쉽고 편한, 그래서 쿨한 팬질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가끔은 불편함과 수고로움의 기억이 그립다. 모자란 기술 대신 열정과 상상을 더해 뜨겁게 타올랐던 그때, 다가가기에는 멀지만 그래서 더욱 아이돌을 꿈처럼 생각했던 그때가 말이다.
CD에서 음원으로, 비디오에서 디지털 영상으로,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낭만으로 가질 게 없어서 고작 매체 기술이 조금 나아진 것을 가지고 별로 멀지도 않은 과거를 추억으로 삼는다는 데 실소가 난다. 하지만 그 추억은 기술 자체가 아닌, 그때 그 기술에 달라붙어 있던 나와 우리의 삶에 대한 것이란 점에서 위안을 삼아도 될까.
강혜경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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