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블로거21] 니네 나보다 더 진상이야?

등록 2010-05-12 15:27 수정 2020-05-03 04:26

평소 전기문을 즐겨 읽지 않는다. 떡잎부터 전 생애에 걸쳐 훌륭하기만 한 그 ‘위대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집에 나온 한국의 효심 어린 위인들은 곧잘 허벅지를 베어 병든 부모님의 생을 연장하고 건강을 되찾아주었다. 모든 위대한 교훈을 상쇄할 정도로 잔인한 그 효행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만 위인전을 절독하고 말았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고, 삶이란 때론 허벅지를 베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나날도 있다는 걸 느낄 때쯤 머리를 아찔하게 하는 한 위인을 만났다.

 오노레 드 발자크.

오노레 드 발자크.

오노레 드 발자크.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서 발자크만큼이나 ‘인간’ 발자크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문학적 재능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던 발자크가 어느 날 글을 쓰겠노라고 선포했다. “나는 내 안에 표현할 생각, 지어 올려야 할 체계, 표명해야 할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느꼈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우리가 자주 하는 식의 다짐. 츠바이크는 이런 발자크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래의 작가는 자기가 무엇을 써야 할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이 되려는지 아직 분명한 생각이 없었다. 철학자인지, 시인인지, 소설가인지, 극작가인지, 아니면 학자인지.”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시민왕’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조’ 기간은 왕·귀족·시민 할 것 없이 노골적으로 돈을 추구하던 시대였다고 한다. 발자크의 창작 시기는 이 기간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발자크 역시 부지런히 돈을 좇았다. 그는 오라스 생토뱅 회사라는 ‘소설 공장’을 차려 ‘돈이 되는’ 글을 끝없이 찍어냈으며, 글을 쓰지 않을 때에는 예외 없이 실패하는 어리석은 사업을 벌였다. 예술가는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대상은 어김없이 30∼40대 유부녀였다. 그는 앞뒤로 문이 두 개 달려 있는 집에 살았다. 뒷문은 빚쟁이가 찾아오면 도망가는 용도로 혹은 애인들이 드나드는 출구로 유용하게 쓰였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발자크는 “생애나 작품에 특이할 정도로 위대성과 어리석음이 뒤섞여 나타나는데 특히 삶의 행각에서는 어리석음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하나 아둔하기 짝이 없는 이 위인은 나에게 때때로 큰 위로가 된다. 특히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혹은 쓸모없는 짓으로 생을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발자크가 문장을 뚫고 나와 “니네 나보다 더 진상이야?” 하면서 껄껄 웃어젖히는 것 같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점차로 발현하는 발자크의 천재성! 이같은 ‘반전’에 다시 우린 조금 좌절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300쪽 무렵까지만 읽기를 권한다.

신소윤 기자 blog.hani.co.kr/soyoon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