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Abracadabra)의 첫 방송을 기억한다. 그때 TV에서 흐르던 음악은 누가 뭐래도 ‘팝’이었다. 그러니까 ‘국산’ 가요에 대응하는 의미로서 ‘수입’ 팝, 말이다. 시선을 고정하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집중했다. 그동안 내가 계속해서 생각한 건, 솔직히 말해서 ‘누구의 노래와 닮았을까’란 물음표였다. 비욘세, 리한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어셔, 크리스 브라운 등의 이름이, 그들의 빌보드 히트곡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언제나처럼 이때도 ‘잘 만든 댄스가요는 결국 팝의 복사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2008년 말에야 깨달았는데, 그 한 해 동안 내가 가장 즐겨 들었던 노래는 브라운아이드걸스(브아걸)의 였다. 이 아기자기한 댄스가요는 어딘지 촌스럽지만 세련된 감각으로 빚은 수공예 도자기 같았다. ‘용감한 형제’라는 작곡가의 브랜드를 확실히 기억하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때 브아걸은 나쁘지 않은 팝을 고르고 부를 줄 아는 걸그룹이었다. 이들이 ‘아이돌’이란 범주에 포섭되지 않은 건 이들의 소속사 ‘내가네트워크’의 이미지가 대량생산과 물량 공세로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이 아니라 맞춤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믿을 만한 중소기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런 짐작은 2009년 음반 (Sound G.)가 발표된 뒤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2009년의 성과라 부를 만하다. 여기에 수록된 노래 (Candy Man)을 비롯해 는 기존 브아걸의 히트곡과 달리 성인 취향의 사운드를 지향하는데, 생각해보면 이들은 애초부터 다른 걸그룹처럼 소년(혹은 또래 소녀)을 겨냥하지 않았다. 섹슈얼리티나 젠더를 음악에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대신 장르를 강조하며 가요계에서 ‘믿을 만한 음악을 하는 보컬 그룹’이란 포지셔닝을 겨냥했다. 이들이 장기적으로 ‘아티스트’를 지향한다고 생각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요컨대 브아걸은 이런 방식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로부터 지지를 얻었고,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그래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브아걸은 아이돌 걸그룹 경쟁 구도에서 경계에 위치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통해 깨달은 건, 비평하는(어떤 대상에 대해 말해야 하는) 입장에서 강력한 편견이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글쟁이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비평이란 비평가가 자기 취향과 정체성에 대해 남들보다 더 논리적으로, 주의 깊게, 성실하게 들여다보는 지적 실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때 중요한 건 대상을 편견 없이 보는 것이다. 브아걸을 비롯한 2009년 걸그룹이 제시한 건 음악적 완성도란 맥락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편견 없음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얼마 전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소녀시대의 (Gee)와 브아걸의 가 각각 2개 부문을 수상한 것 역시 긍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종진술처럼 고백하자면, 나는 요즘 1990년대의 아이돌 그룹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이건 모두 브아걸 덕분이다. 고맙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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