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퍼니스트 홈비디오〉
누구든 지워버리고 싶은 망신의 순간이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샤프심 구멍을 파고 들어가 물을 채워 죽고 싶을 정도로. 어린 시절 형과 누나가 항상 나를 놀려대던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TV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꿀벌이 죽는 장면을 보고 “해치야! 해치야!”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는데, 식구들에겐 그만한 코미디가 없었던 거다. 어쨌든 그때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두었다면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우리 집엔 똑딱이 카메라도 없었다.
요즘 폭스 라이프 채널에서 방영하는 (America’s Funniest Home Video)를 즐겨보고 있다. 미국 〈ABC〉 방송사에서 1989년부터 방영한 프로그램이라 철 지난 옛날 비디오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게 은근히 촌스러우면서 재미있다. 때론 고화질(HD)로 찍혀 유튜브에 올라오는 최신 코미디 영상보다 더 쫄깃하다. 리얼리티라는 건 역시 좀 허술하게 찍혀야 더 살아나는 법인가 보다.
아메리카에서 제일 웃기는 비디오라는데, 등장하는 바보들도 메이저리그 수준이다. 문 위에 물 양동이를 올려놓고 선생님을 골리려다 자기가 덮어쓰고,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친구를 놀라게 하려다 빠져서 못 나오고, 세탁기에서 튀어나와 ‘서프라이즈’했더니 딴 친구가 케이크를 얼굴에 던진다.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가 결혼하면’ 시리즈는 놀라운 더블플레이를 보여준다. 일단 소파에서 넘어지는 바보와 벽 부수는 바보가 줄줄이 나온다. “자, 두 사람이 결혼하면 어떤 아이를 낳을까요?” 소파에서 넘어지면서 벽을 부수는 바보가 나온다. 이어 또 다른 바보가 잔디밭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공에 얼굴을 맞는 환상적인 타이밍을 보여준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동물들의 굴욕도 단골 메뉴다. 새끼 오리에게 공격당해 뒷걸음질치는 새끼 곰, 개헤엄을 못 쳐 풀장에서 뒷발로 선 채로 발버둥을 치는 개, 어항 속 물고기를 덮쳤다가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하게 되는 고양이…. 제일 압권은 몸을 들고 욕조에 데리고 가면 헤엄치는 시늉을 하는 강아지였는데, 변기는 그렇다 쳐도 종이컵 위에서도 안 빠져 죽으려고 결사적으로 발을 움직인다. 반대로 물가에 서 있는 사람을 점프킥으로 차서 빠뜨리는 캥거루를 보면, 동물들도 유머 감각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여기게 된다.
홈비디오에 등장하는 테마는 참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시대나 국가를 넘어 전 인류를 웃길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상투적인 테마도 색다르게 편집해놓으면 더 큰 재미를 준다. 이 프로그램은 가짜 복권에 당첨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호들갑을 우아한 아리아에 맞춰 줄줄이 보여주더니, 복권 뒷면을 읽어보라고 한다. “당첨금은 당신 엄마한테 받으세요.” 곳곳에서 넘어지는 수녀들과 감전돼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편집한 연출은 거의 초현실주의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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