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맹하고 민첩한 그가 왔다. 12년 만에 이뤄진 호랑이의 귀환. 2010년 경인년은 좀더 특별하다. 60년 만에 돌아온 백호랑이해다. 푸른 눈에 흰털과 초콜릿색 줄무늬를 가진 동물, 백호. 중국 설화에서는 청룡·주작·현무와 함께 하늘의 사신을 이룬 동물이다.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백호의 등장에 해맞이하는 이들의 마음도 두근거린다. 그리하여 준비한 호랑이에 관한 잡다한 뉴스들. 에도, 동물대백과 사전에도 없다. 호랑이와 사자의 해묵은 싸움 결과부터 호랑이 영문명으로 살펴본 새해 트렌드 전망까지. 무엇을 상상하든 호랑이만 보게 될 것이다. 범범범범~, 개봉 박두!
2010년 가족계획을 가진 산모들을 위한 다짜고짜 진실 확인, 스텝 1. 경인년은 백호랑이해가 맞을까? 국립민속박물관 구문회 학예연구원은 “경인년의 경(庚)은 흰색과 서쪽을 뜻하기 때문에 내년이 백호랑이해가 맞다”고 전했다. 스텝 2. 백호랑이해는 그냥 호랑이해보다 좋은가?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맹수이면서 복을 가져오는 영물이기도 하다. 특히 사신도에 등장하는 백호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져왔다. 과학적으로 흰색 털을 가진 호랑이는 ‘돌연변이’지만, 민속학에서는 상서로워 좋은 기운을 가진 동물로 해석했다. 역술에서도 백호랑이띠는 황금돼지띠 못지않게 좋은 띠로 평가한다.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 회장은 “경인년은 천간이 강한 금의 기운으로, 이 해에 태어난 남성은 공직·무관 등의 분야에, 여성은 의사·검사 등의 분야에 진출할 운”이라고 했다. 역술인들의 통계에 따르면, 같은 호랑이띠라도 병인생(1926년생), 무인생(1938년생), 임인생(1962년생)보다 경인생의 기운이 더 좋다고 한다. 스텝 3. 황금돼지해처럼 베이비 붐이 일까? 2007년 정해년이 근거 없이 황금돼지해로 둔갑해 출산 붐이 일었던 것처럼 경인년에도 출산 붐이 일지는 알 수 없다. 호랑이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 탓이다. 구문회 학예연구원과 백운산 역술가는 이를 “근거 없는 속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font color="#006699">2. 족보당당, 한국 호랑이 </font>“다람쥐 안 먹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신을 괴롭히던 루머를 해명하고 나섰다. “호랑이 먹었다.” 이건 진짜다. 얼마 전 중국 윈난성 멍라현에서는 야생 벵골 호랑이를 잡아먹은 농민들이 징벌을 받았다. 호랑이를 잡아 마을 주민들과 나눠먹은 한 주민은 법정에서 징역 12년과 1억원 상당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멸종 위기의 동물을 잘못 먹으면 먹은 것보다 더 토해내야 한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서울공원(옛 서울대공원)은 ‘2009년 화제의 동물나라 10대 뉴스’를 선정해 2009년 12월15일 발표했다. 최장수 코끼리 자이언트의 죽음, 2만여 마리의 개구리 집단 실종 사건 등 사건·사고 속에 호랑이만이 국위 선양했다. 2009년 6월,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에서 통합 관리하는 국제 호랑이 혈통 족보에 한국 호랑이 52마리가 ‘시베리안 호랑이’로 등재된 것. 혈통 족보의 등재는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근친교배 등을 막을 수 있다.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는 한국 호랑이는 1924년을 끝으로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6년 미국 미네소타 동물원에서 ‘호돌이’ ‘호순이’를 포함한 호랑이 4마리가 수입되면서 다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한국 호랑이 8마리도 혈통 족보에 올라 있다.
<font color="#006699">3.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font>
예로부터 백호는 영물로 신성시돼온 동물이다. 하지만 백호는 황호보다 유전적으로 약하다. 호랑이의 털색 중 황색은 우성, 흰색은 열성이다. 백호는 엄마·아빠가 모두 열성 유전자를 가져야만 태어날 수 있다. 태어날 확률이 낮고 면연력이 약하기 때문에 90% 이상이 인공 포육으로 길러진다. 태어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역으로 더 신성시돼온 동물이다. 현재 백호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협약’으로 보호받는 희귀종으로, 야생에서는 멸종돼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에버랜드에서 13마리를 키우고 있다.
동물원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맹수의 지존을 가리는 오래된 질문이다. 에버랜드 동물원 기획팀 허광석 대리는 “사파리에서 지켜본 결과, 홀로 다니는 호랑이와 무리로 다니는 사자가 싸우면 사자가 이긴다는 게 현재 스코어”라고 전했다. 단, 호랑이 종류에 따라 승패는 달라질 수 있다.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종류는 모두 세 가지. 덩치가 작은 황호인 벵골 호랑이, ‘시베리아 사자’로 불리는 한국 호랑이, 희귀종 백호다. 이 중 사자를 위협할 만큼 덩치가 크고 용맹한 한국 호랑이는 사자와 일대일로 맞장 뜨면 이길 확률이 높다. 몸무게가 보통 200~300kg 정도 되는 호랑이는 몸무게의 1.5~2배의 힘을 앞발에 실어 공격한다. 앞발의 크기도 사자보다 커 위협적이다. 신중하고 용맹한 백호도 사자와 겨뤄볼 만하다. 성격이 급하고 장난이 심한 벵골 호랑이는 꼬리 내리는 일이 많다.
호랑이는 사자보다 호랑이와 사이가 더 나쁘다. 인공 야생으로 조성된 동물원 사파리에는 지금껏 사자와 호랑이가 함께 지냈다. 으르렁대는 경우는 많아도 어느 정도 영역이 구분돼 평화롭게 지낸 편이다. 최근 에버랜드는 경인년을 맞아 사파리에서 사자를 방출하고 백호를 투입했다. 황호와 백호가 한 울타리에 사는 건 세계 최초다. 그런데 벵골 호랑이와 백호가 서로 엉키면서 신경전이 치열하다. 사육사들은 “백호가 벵골 호랑이에 비해 평균 체장이 크고 몸무게도 무겁기 때문에 다툼이 벌어질 경우 백호가 우세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30여 년을 사파리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온 벵골 호랑이의 노련미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font color="#006699">4. 호랑이 찍으러 간다</font>호랑이 전설을 살려낸 마을이 있다. 경기 안성시 금광면 신양복리 복거마을이다. 뒷산 모양이 엎드린 호랑이 같아서 ‘호동’ ‘복호리’로 불렸던 마을은 옛날에 호랑이가 자주 내려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농사를 주로 짓는 마을 주민은 120가구 300여 명. 젊음의 생기는 찾아볼 수 없던 마을에 2009년 봄부터 외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 중 하나인 ‘아름다운 미술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덕분이다. 마을 주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호랑이 전설을 세상으로 끌어냈다. 전봇대·담벼락·지붕 할 것 없이 마을 곳곳에 호랑이 벽화와 조형물을 세웠다. 마을회관 앞에 고철을 이용해 세운 조형물 ‘동구 밖 쇠호랑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주민들의 집에는 호랑이 벽화를 그리고, 지붕이나 담벼락에 호랑이 조각품을 올렸다.
민화 속 호랑이들은 용맹하게, 때론 익살스럽게 그려졌다. 구문회 학예연구원은 “호랑이를 그린 그림은 나쁜 것을 쫓는 벽사 부적으로 쓰기도 한다”고 했다. 벽사의 의미를 담은 벽화에서 호랑이는 눈매가 매섭다. 토끼를 앞세우고 담배를 피우는 호랑이는 눈이 반달이다. 어느 집 지붕에선 닭 쫓는 호랑이 조형물이 손을 흔든다. 개천을 복개하고 주변에 만든 난간에는 호랑이 머리와 꼬리가 달려 있어 줄지어 선 호랑이 무리를 떠올리게 한다. 박기남(72) 할머니는 “호랑이 그림으로 마을을 꾸미고 나서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간다”며 “그림 그릴 때는 뭘 저런 것을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고 말했다. 19살 때 시집와 이 마을에서 쭉 살았다는 윤옥준(72) 할머니는 “호랑이가 지켜줘서 별 탈 없이 살았던 것 같다”며 “호랑이해인 새해에도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복거마을이 호랑이 전설을 이용해 동화 속 나라를 만들었다면 지형적 위치상 호랑이의 이름을 빌려온 마을도 있다.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볼 때 호랑이 배꼽에 해당하는 지점에 위치한 경기 연천군 왕징면 동중리. 이곳에 마을 이름이 ‘호랑이배꼽마을’인 곳이 있다. 호랑이가 살던 동네는 아니어도 호랑이의 좋은 기운을 받고 싶어 지어진 이름이다.
<font color="#006699">5. 으흥, 포효하는 호랑이 트렌드</font>서울대 김난도 교수(소비자학)는 책 에서 한국의 소비자 트렌드 10가지를 ‘타이거로믹스’(Tigeromics·호랑이 경제)라는 용어로 압축해 설명한다. 2010년은 ① 한국이 멋있게 부상하는 시대(Times for Korean chic), ② 내가 사는 거주지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이 강화되는 해(Into our neighborhood)가 될 것으로 봤다. 또 본업 외에 ③ 딴짓의 즐거움(Good to be geeks)에 빠지는 이들이 늘고, 문화 교류의 벽이 낮아져 ④ 금기시되는 모든 것이 없어질(End of taboos)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자들이 단순 구매자를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제품 생산과 마케팅 과정에 반영시키는 트렌드도 가속화되면서 ⑤ 기성품 시대에서 맞춤형 생산으로의 전이(Ready-made to order-made)가 이뤄지고, 기업들은 소비자 요구를 종합적으로 충족시키는 ⑥ 전지전능 솔루션(Omni-U solution)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똑똑한 ‘전문가형’에서 도덕성을 갖춘 ‘휴먼형’으로 바뀔 것이라며 ⑦ 매너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Manner matters)도 트렌드로 뽑았다. 그 밖에도 ⑧ 환경문제로 물이 중요해지고(It‘s aqua),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⑨ 나이를 뛰어넘으려는(Challenge your age) 중장년 소비자가 문화 전반의 중요한 소비층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건물이나 도시 등은 더 멋진 디자인을 갈구하며 ⑩ 스타일 공화국(Style republic)을 만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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