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2〉
지난 세월 이 땅에는 유난히 많은 논쟁이 있었다. 급작스런 개항과 서구 열강의 침탈, 일제 식민지, 외세에 의한 해방, 분단과 전쟁, 군사쿠데타와 철권통치, 압축성장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유난스러운 격동의 시기를 보내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논쟁의 코드로 한국사를 개관하고 소개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2000)과 (2002)의 개정판이 나왔다. (역사비평사 펴냄)다.
역사는 반복되고 변주되는 것고조선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벌어졌던 주요한 논쟁들을 쉽고 짤막하게 정리한 책의 형식과 내용은 그대로다. 고조선에서 조선시대까지를 담은 1권에는 20편의 논쟁이, 일제강점기 이후 현대까지 근현대사를 다룬 2권에는 무려 56편의 논쟁이 소개돼 있다. 두 책 합쳐 800쪽이 약간 넘는 점을 감안하면, 한 꼭지당 쪽수는 적게는 6~7쪽에서 많아야 20쪽가량이다. 분량은 짧지만 각 꼭지를 해당 분야 전공자들이 책임 집필했기에 글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도 시대순으로 정리된 목차를 보고 관심 가는 주제를 골라보기에 좋게 돼 있다.
형식과 내용 모두가 그럴듯하기에, 이 책의 장단점은 오롯이 76개 논쟁 소재들이 무엇이냐에 모아진다. 일단은 눈길을 끄는 꼭지들이 적지 않다.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조반정은 명분 없는 쿠데타인가’ ‘정비석의 파동의 핵심은 무엇인가’ ‘김일성 가짜설은 얼마나 진실인가’ ‘고교평준화 논쟁은 어떻게 진행됐나’ ‘박정희 신드롬의 실체는 무엇인가’ 등 역사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주제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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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꼭지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는 반복되고 변주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윤식 사회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구한말 노정객으로 한-일 병합 뒤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 5만원을 받았던 김윤식이 1922년 88살 나이로 숨지자 는 “우리 민족과 사회의 원로”라며 사회장을 주도한다. 하지만 사회장 반대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이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당시 를 비판하는 각계의 글은 에 집중적으로 실렸다. 보수 언론과 정권의 집중적 탄압을 받는 오늘날의 불매운동과, 가 든든한 우군이던 당시의 불매운동이 자연스레 비교된다.
지금의 현실에 직접적인 교훈을 주는 대목도 적지 않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논쟁’을 보자. 박정희 대통령이 신념을 가지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인 데 반해 야당은 지역 불균등 발전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대표적 논객은 건설위원회 소속 김대중 의원. 전남 목포가 지역구였던 그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보고서에 바탕해 “지하자원과 관광지가 많음에도 철도조차 없는 강원도에 서울~강릉 간 영동고속도로를 먼저 놓자”는 대안을 내놓는다. 한쪽에서는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고, 반대쪽에서는 그에 반대만 하는 (혹은 그런 인상을 주는) 요즘 세태를 떠올리게 된다.
아쉬움도 크다.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역사학계의 주된 이슈들이 대거 누락돼 있기 때문이다. 강단 사학자들과 재야 사학자들이 오랜 세월 가장 치열하게 대립한 주제였던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상상 속의 고조선, 역사 속의 고조선’ 장에 “초기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한군현의 위치도 남만주 지역이었음을 강조했다”고 간략하게 언급된 것이 전부다.
정조 독살설, 식민지근대화론 왜 빠졌나최근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공개되면서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정조 독살설을 둘러싼 논쟁 또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위정척사파·급진개화파·온건개화파 사이의 갈등, 최근 뉴라이트의 역사인식과 관련돼 큰 논란을 일으켰던 식민지근대화론을 둘러싼 찬반 논쟁, 6·25전쟁 발발 원인과 관련한 논의 또한 찾아볼 수 없다. 7~9년 만에 ‘개정판’을 내는 것이라면 당연히 포함됐어야 할 민감한 이슈들이 전부 빠진 것이다. 아무래도 ‘재’개정판을 기다려야 할 노릇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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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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