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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들의 생활백서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등록 2009-09-23 15:52 수정 2020-05-03 04:25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사진 tvN 제공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사진 tvN 제공

사는 게 그대로 영화, ‘생얼’을 셀카로 찍어도 화보, 블로그를 인쇄하면 베스트셀러… 그런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 잘 아시겠지만, 이른바 ‘셀레브리티’들의 세계다. 그래도 상심 말자. 우리도 도전해볼 장르가 있다. 우당탕탕 좌충우돌 굴러가는 우리의 생활. 거울에 비춰보면 낯 뜨겁기 그지없지만, 진액만 뽑아서 케이블에 옮겨놓으니 제법 사람들을 웃긴다.

tvN의 코미디 시리즈 가 제대로 속도를 내며 곡예를 벌이고 있다. 솔직히 아직도 정체는 모르겠다. 이건 재연 드라마인가, 콩트 코미디인가, 새로운 시트콤인가? 다소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도 출연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겹치기로 등장하는 재연 배우들 같은 느낌이고, 케이블 특유의 살짝 물 빠진 느낌이 4∼5년 전 코너를 재방하는 듯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불명이 사람을 잡아당긴다. 쟤가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불안감 뒤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아무튼 한번 들여다보면 쉽게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제목 그래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덜컹거리는 긴박감이 이 익숙한 된장찌개를 새로운 맛으로 만든다.

‘여자친구가 화난 이유’를 들여다볼까? 주인공 남자는 연상의 여자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그녀가 화를 내고 기차에 타지 않아 곤경에 처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요즘 퀴즈 프로그램들은 드라마 우려먹기의 일환으로, 극중 대사나 상황을 알아맞히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는 이런 형식을 뒤집은 뒤 가속페달을 밟는다. 남자는 춘천행 기차에서 동승한 남자 승객들과 함께 여자들이 화내는 그 이해 못할 이유를 찾아나선다.

사실 그 이유란 별 기발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남자 떼들의 터무니없는 군중신이 매우 재미있다. 여자친구로부터 화가 난 이유를 전해듣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짜증 나!”를 동시에 외치는데, 시골 할아버지가 들고 가던 장닭을 하늘로 날리는 장면이 제대로다.

정형돈과 정가은이 남녀의 대표자 역할을 맡은 ‘남녀탐구생활’ 코너는 식의 구도를 현대의 생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인터넷 사용법에서도 전혀 다르다. 남자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야동’이라는 단어로 검색이 되지 않자 ‘인터넷 강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한다. 여자는 연예인 스캔들 기사를 뒤지다 여자 연예인의 팔뚝을 보고 갑자기 팔뚝 운동에 들어간다.

에피소드의 디테일을 풀어가는 작가진의 감각도 칭찬하고 싶지만, 그 표현법이 흥미를 더한다. 극중 상황을 전하는 해설자는 ‘제23차 자매 전쟁’의 서막을 알리며, 무미건조하고 진지한 내레이션으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말도 더럽게 잘해요”라며 과격한 언사를 날린다. 유사 다큐멘터리의 유사 리얼리티다. 몇억원짜리 다운계약서도 못 쓰고 위장전입 시켜줄 강남 친척도 없는 우리 미물들의 방구석도 제법 볼 만하지 않나?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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