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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나의 방을 찾아서

등록 2009-09-16 17:00 수정 2020-05-03 04:25
애타게 나의 방을 찾아서. 사진 오정연

애타게 나의 방을 찾아서. 사진 오정연

“쾌적하고 아늑한, 너만의 장소를 갖고 싶지 않니?” - 뮤지컬 (Street Scene) 중에서(애덤 레인저의 에서 재인용)

영어와 뉴욕 그리고 집 구하기, 세 가지 모두와 동시에 친해져야 한다! 절박한 미션을 앞에 두고 택한 방법은 “개발 모드 속 할렘의 스튜디오(우리가 ‘원룸’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주거공간을 여기선 이렇게 부르더라)를 둘러싼 다양한 뉴요커들의 삶을 그린다”고 어딘가에 소개된 소설 >(Ellington Boulevard)를 읽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뉴욕의 부동산업계는 불황을 모른다.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숱한 부동산 브로커들도 한때는 다른 꿈을 품고 뉴욕에 입성한 얼뜨기였다. 수요와 공급 모두 무지막지하기에 모두에게 대박의 찬스는 존재한다. 소설이 말하는 걸 편견으로 새긴다. ‘대박의 찬스는 존재한다.’

뉴욕에 발 디딘 지 여드레. 수많은 학생들이 짐을 싸서 고국행·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거나 더 나은 집을 찾아 옮겨다니는 이맘때가 최고의 성수기다. 브로커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일한다. 길고 얄팍한 섬 맨해튼에 재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가격대별로 선택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소설대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루에 평균 5개, 닷새간 대략 20여 개의 스튜디오를 돌아보았다. 방은 많으나 가격은 이유 있다. 럭셔리한 동네에 내 수준에 맞는(아주 싸다는 말) 스튜디오가 등장했다. 찾아가보면 방바닥이 기울어 있다(술 취했을 때와 맨정신일 때의 차이가 없다). 아니면 화장실에 세면대와 샤워실은 있는데 변기는 없다. 그럴 확률 “100프롭니다”. 센트럴파크에서 조깅할 만한 지역에 어처구니없이 저렴한 스튜디오가 있다. 방바닥도 멀쩡하고 화장실에 변기도 있다? 코딱지만 한 반지하방일 확률 “100프롭니다”.

발품을 팔면서 하나 깨닫는다. 부동산과 연애 시장은 같은 룰로 움직인다. 완벽한 매물이 어쩌다 나의 주력 시장에 등장했나 속으로 환호하지만, 만난 지 5분 만에 이유를 알 수 있다. 멀쩡한 남자는 “오뎅의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혼자서 자지러지게 웃는다. ‘타이밍 제일주의’는 여기서도 통한다. 어제 저녁에 본 집을 오늘 아침 계약하려고 가보면 이미 누군가 입주해 있다. 30살 넘어서까지 결혼 안 했으면 결혼하자던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어제 맞선 본 여자 이야기만 한다. 브로커와 집주인은 지금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방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 강조하며 계약서를 들이민다. 서로 정신 차리기 전에 결론을 내려야 결혼의 관문을 통과하는 연애와 다를 바 없다.

연애 시장에서도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를 포기할 순 없는 법이다. 속으로 계속 되뇐다. 돈 없는 뉴욕 초심자인 나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이 조건 안에서도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나를 위한 장소가 있으리라고. 그리고 나는 신데렐라가 되었다. 오, 예스! 드디어 맨해튼 한 귀퉁이에 방 한 칸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마냥 행복에 겨워서 외친다. 신혼이 원래 그런 거다. 그래,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오정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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