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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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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싼 맛’

등록 2009-09-29 17:45 수정 2020-05-03 04:25
뉴욕의 ‘싼 맛’. 사진 오정연

뉴욕의 ‘싼 맛’. 사진 오정연

“뉴욕 시티에서는 모두가 내 친구. 네가 젊고 예쁘다면 모든 게 멋져 보이지. 거리는 다이아몬드로 포장돼 있고 볼 것은 넘쳐.” -데이 마이트 비 자이언츠(They Might Be Giants)의 (New York City) 중에서

늙은 나이에 (유)학생이 되고 나니 애틋하게 소중해진 황금 같은 주말 늦은 아침. 냉장고를 열었다. 지난주 내내 시리얼과 프렌치토스트로 번갈아가며 아침을 해결한 뒤라 우유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식빵은 두 쪽이 남았다. 그게 다다. 집만 구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었군.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언제나 먹을 것으로 채워져 있던 지구 반대편 냉장고를 잠시 그리워한다.

문득 내 나이가, 정확히 말하면 이 나이에 냉장고를 그리워하는 스스로가 부끄럽다. 부끄러움, 그리고 허기를 떨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단 뉴요커가 된 기념으로, 우아하게(라고 쓰고 촌스럽게, 로 읽는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향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거리 한복판에 내가 서 있었다. 맨해튼 어퍼이스트, 3번 애비뉴의 스트리트들이 사람들, 노점, 그리고 이국적인 온갖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목적지는 잊고 좌판을 꼼꼼하게 살핀다. 두 개에 5달러짜리 액세서리를 샀다. 각국 이민자들이 파는 이름도 모르는 음식들 사이에서 고민한다. 생산자 직거래 유기농 야채 혹은 베이커리 앞에선 고민이 극에 달했다. 난장의 정체는 ‘3번 애비뉴 길거리 장터’란다. 미국의 중요한 휴일인 노동절은 9월 첫째 월요일인데, 그 주말 일요일에 열리는 장터다. 나름 1년에 한 번 있는 연례행사다.

여전히 배고픈 일주일 뒤의 일요일. 이번에는 뉴요커가 된 기념으로 상큼하게(라고 쓰고 진부하게, 라고 읽는다)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공원을 면한 5번 애비뉴가 가까워질수록 빨강·노랑·검정색 기를 든 사람들이 늘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리엔 독일인 천지. ‘독-미 슈토이벤 퍼레이드’란다. 독일 경찰과 뉴욕 경찰(NYPD)이 함께 행진하고, 군악대와 독일 민속의상을 입은 아이들과 미스 저먼 아메리칸들도 지나간다. 독일인들답게 질서 정연하고 지루한 맛이 나름 색달랐다. 주변의 친절한 독일인(혹은 독일계 미국인)들은, “동성애 혐의로 독일에서 추방된 뒤 워싱턴을 도와 독립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끈, 독-미 친선의 상징 슈토이벤 장군”이라는, 딱히 쓸모는 없지만 생생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한 지인은 뉴욕을 비싸게 구는 애인에 비유했더랬다. 돈을 쓸수록 다정한, 그러나 빈 호주머니에는 새침하기 그지없는 그. 그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과연 그럴까. 튼튼한 두 다리로 거리에 설 자신이 있는 당신이라면, 지레 겁먹지 말 일이다. 뉴욕, 스트리트, 퍼레이드, 페어 혹은 마켓 등으로 구글링해보라. 이 도시는 1년 내내 축제 중이다. 다양하고 알찬 데이트 상대가 차고 넘친다. (물론 이 룰이 실제 뉴욕의 연애 마켓에도 적용된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슬프게도.)

오정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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