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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파인, 앤드 유?

등록 2010-03-04 11:56 수정 2020-05-03 04:26
아임 파인, 앤드 유?  사진 오정연

아임 파인, 앤드 유? 사진 오정연

Q. 다음 중 “How are you?”에 대한 대답으로 적절한 것은? (정답은 마지막에)

① I’m fine. Thank you. And you? ② Very good ③ I don’t know ④ How are you? ⑤ Very bad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 첫 페이지만 들춰보면 대답을 알 수 있다고? 그러게나 말이다. 실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 영어 교과서도 첫 페이지 첫 문장까지는 실제 언어생활을 반영하고 있는데, 문제는 두 번째 문장부터는 실전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인지 필자는 미국 생활 6개월이 넘어서도록 여전히 이 질문 앞에서 정답을 고민한다.

미국행 이전부터 이 질문은 곤혹스러웠다. 네이티브 잉글리시 스피커 친구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위의 질문으로 시작하곤 했는데, 그놈의 주입식 교육 탓에 대답은 예외 없이 ①번이었다. 물론 ‘앤드 유’는 의문형답게 확실히 끝을 올려주는 100점 만점의 ‘인토네이션’으로.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그 대답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색함을 유발한다는 걸 깨달은 뒤, 질문 본연의 의도에 충실한 답(‘내가 어떤지’를 설명한다는 뜻)을 하기 시작했지만 진중한(?) 영어 실력으로 근황을 설명하다 본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상대는 지치고 나는 피곤해졌다.

네이티브들에 둘러싸여 살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농담 아니고 하루에 10번 이 질문을 듣게 되는데 주된 출처는 숍·마켓·편의점·식당의 출납원과 종업원. 동네 마트에서 처음으로 나 홀로 계산대를 통과했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하우 아 유’라고 말하는 출납원을 바라보면서 대략 5초 동안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있었다. 첫째, 내가 맞게 들은 건가. 둘째, 진짜 이 사람은 내가 어떤지 궁금한가. 셋째, 나는 지금 과연 어떤가, 다시 말하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무엇인가. 그러는 사이 모든 계산은 끝나 있었고 예의 토종 한국인이라면 택할 법한 대답, ①번 대답을 우물쭈물 던진 뒤 마트를 나서야 했다.

하루에도 10번씩 내가 지금 어떤지,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자문자답을 반복하며 깨달은바, ‘하우 아 유’는 ‘안녕하세요’다. 의문문이지만, 아무도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처럼 동일한 의문문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네이티브들은 단답형 그리고 (재빨리) 이어지는 반문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pretty, very, quite’ 등의 부사와 ‘great, nice, good’ 등의 형용사를 적절히 조합하면 무난하다. 저질 컨디션, 최악의 일진에 시달릴 때라도 부정형 대답은 삼가자. ‘안녕’이라는 인사에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한 뒤 경위를 설명할 만큼의 친밀함이 보장된 친구 사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지나치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①번 대답이 입에 붙어버린 당신이라면, 상대가 묻기 전에 ‘하우 아 유’라고 선수를 쳐보자. 계산대 앞에 서자마자 능숙하게 인사를 건네다 보면 ‘(면전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양 있는 미국인’이 된 듯 으쓱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A. ②와 ④는 정답. ①도 정답 처리 가능. 그러나 ③과 ⑤는 다소 곤란.

오정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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