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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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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머스트 고 온

등록 2010-03-19 11:33 수정 2020-05-03 04:26
아카데미상 트로피

아카데미상 트로피

1. 오스카를 손에 쥐어보았다. 2kg은 거뜬히 넘을 듯 묵직했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네요!”라는 전형적인 수상 소감은 비단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던 거다. 그 트로피는 1979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영화가 예술로 인식되는 데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받은 ‘공로상’으로, MoMA의 필름 보존센터 견학의 하이라이트로 한 명씩 오스카를 들어보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오 마이 갓,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동기들을 구경하는 게 실은 더 즐거웠다. 그뿐인가. 1930~40년대 영화 스틸로 가득한 방에 들어섰을 때, 1905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필름을 눈앞에서 펼쳐보았을 때, 말하자면 하루 종일 감격의 연속이었다. 평생 자신이 열광했고 감동했던 대중문화와 그 역사에 대한 이 친구들의 진지하고 순수한 경의와 팬심은 미국 대중문화가 지닌 힘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준다.

2. 그리고 주말. 오스카의 무게를 생생하게 상상하며 아카데미 시상식 생중계를 관람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 관전평 업데이트에 참여하며 감개무량했는데, 감동의 상당 부분은 ‘TV’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그간 중요한 드라마는 스트리밍 사이트로 감상했고, 중요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은 생중계를 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미친 듯이 찾아헤매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언제나 뉴스 채널을 틀어놓을 수 없으니 영어 실력도 늘지 않았(다고 늘 자위했)다. 눈물겨운 날들을 끝장낸 것은 아담한 사이즈의 멀쩡한 TV를 아파트 입구에 버려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었다. 광고만 봐도 흐뭇해 리모컨이 없다는 것은 전혀 흠이 아니었다. 존재조차도 몰랐던 물건을 결국 원하게 만드는 광고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아메리칸 라이프’가 비로소 완성됐음을 실감했다.

3. 비단 TV뿐인가. 미국식 긍정성을 실감하는 매 순간 아메리칸 라이프를 경험한다. 하루 종일 학교 도서관에서 일한 뒤 4시간짜리 저녁 수업을 들어야 했던 며칠 전의 생일. 미역국까지 곁들여 ‘생일 아침’을 나 홀로 차려먹으니 왠지 서글펐다. 그 서러움을 사라지게 한 것은 하루 종일 이어지던 지인들의 생일 축하 인사, 평소 즐겨 먹던 컵케이크로 이뤄진 조촐한 깜짝 파티였다. 부담도 사심도 고민도 없이 해맑게, 그러나 그 순간의 진심을 담아 주고받는 여기 식 축하와 감사 인사는 특유의 낙천성에서 비롯된다. 대단한 금전이 오가는 것도 아니니 부담도 없다. 격려와 위로의 말을 일상어로 사용하는 이들은, 선의와 배려 역시 일상적으로 주고받는다.

이상, 지난 일주일간 나를 기쁘게 했던 일들의 리스트. 모두 모종의 배움과 연결된다. 사소한 일도 더디고 피곤했던 뉴욕살이 내내 관찰자로 살았다. 익숙하다고 여겼던 말과 매너가 모두 낯설고 그저 스트레스였는데, 소외된 이방인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택한 자의식였다. 그런 객지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깨달음의 일상화’가 아니었을까. 잊을 만하면 마감이 돌아와, 모국어 마감의 쾌감마저 안겨주었던 이 칼럼 역시, 돌이켜보면 사적인 아메리카 관찰기에 많은 기여를 했다. 마지막 인사로, 뉴욕과 서울에서 너와 나의 그침 없는 배움을 기원하는 것이 적절하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레슨 머스트 고 온.

오정연 자유기고가

*이번호로 ‘오정연의 뉴욕 타임스’ 연재를 끝냅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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