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가 엄청나게 당황했다. 너무 심심한 거였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해야 할 일은 하기 싫었다. 때마침 연락이 닿는 지인들은 모두 바쁘다고 했다. 평소 혼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도 잘 다녔건만, 계획도 별일도 없이 이어지는 3일간의 휴일은 당해낼 수 없었다. 심지어 회사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남은 반생의 가장 큰 문제는 돈보다도 외로움보다도 심심함과의 싸움이겠거니 하는 깨달음이 왔다.
심심함과 사투를 벌이다 이변이 없는 한 주말에 항상 집에 있는 동네 주민 G씨를 찾아갔다. 최근 붙인 취미인 블라우스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코끝에 안경을 걸치고 무심한 표정으로 미싱을 돌리던 G씨는 심심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IPTV에서 최신 드라마를 찾아 틀어주었다. 결국 TV 보면서 맥주나 마시고 앉아 있는 내가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배 S군은 자신은 인터넷만 있으면 무인도에서도 몇 달을 버틸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다운로드 받은 각종 동영상을 보고 롯데 자이언츠 팬카페를 들락거리다가 아이돌 걸그룹 뮤직비디오를 섭렵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간다고 했다. 자취 생활 7년차인 선배 J는 그냥 누워만 있어도 주말이 훌쩍 지나간다며, 어서 심심함에 적응하길 권했다. 뭐랄까, 신통하게 노는 사람이 참 없구나 싶었다.
왜 이렇게 심심한지 이유를 찾으려 지난 반생을 돌이켜봤다. 놀랍게도 제대로 놀아본 기억이 없었다. 코 흘리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을 빼면 입시다 취업이다 눌려 지냈고, 부끄럽게도 ‘먹구’ 대학생 시절엔 정신없이 술만 퍼마셨던 것이다. 도대체 풍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유일한 취미였던 독서(믿으셔야 합니다)는 책 만드는 게 업이 되고부터는 그 즐거움이 반으로 줄었다. ‘어부의 취미가 낚시’일 수도 있겠으나, 어부라고 뭐 만날 고기만 낚고 싶을까.
남들은 어떻게 노는지, 무슨 재미로 심심한 세상을 살아내는지 궁금해졌다. 하여 잘 ‘노는 인간’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공원에 나와 과히 훌륭하지 않은 실력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아저씨, 뒤늦게 춤바람 난 아줌마·아저씨, 소녀 아이돌의 ‘삼촌팬’, 당구 고수, 각종 수집가, 특이한 여행자, 아마추어 예술가….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이, 목적도 생산도 없이 순수하게 재미를 찾아 뻔뻔하게 즐기는 ‘노는 데 도통한’ 사람들, 남들은 이해 못할 열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노는 사람들에게서 한 수 배워보려고 한다. 결국 자잘한 재미만이 일상을 구원할 수 있을 테니.
김송은 월간만화잡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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