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한때는 금요일 밤마다 홍대 앞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클럽데이를 즐겼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홍대 앞 합주실에서 ‘직장인 밴드’ 아저씨들과 함께했다. 밴드에는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싸장님’도 계셨다. 그 기묘한 밴드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난 중학생 때부터 기자를 꿈꿨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뒤 언론사 문을 두드리며 얻은 것은 낙방통지서뿐이었다. 위경련에 시달리며 백수생활 1주년을 맞았다. 결국 한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싸장님’을 만난 건 그 면접에서였다. ‘싸장님’은 당시 ‘부사장님’이셨다. 그는 내게 “취미·특기를 모두 ‘노래 부르기’라고 적었는데 노래 잘하나?”라고 물었다. “네, 어릴 때부터 좋아합니다” 하고 답했더니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질문은 계속됐다. “음악을 좋아하면 좀 감상적인 텐데, 감상적인 사람이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아니죠. 사람은 감상적일 때 감상적이고 논리적일 때 논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선 최종합격했다.
몇 개월 뒤 즐거운 팀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까지 갔다가 다음날 출근하니 복도에서 마주친 ‘싸장님’(고새 ‘싸장님’으로 승진하셨다)께서 이러신다. “지선씨, 노래방에서 아주 날아다닌다며?” 팀장이 보고했단다. 급기야 팀장은 회사에서 곧 있을 행사에 ‘싸장님’의 밴드와 내가 합동 공연을 펼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렇다, ‘싸장님’은 밴드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게 엉겹결에 ‘싸장님’ 밴드에 합류했다.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 중후한 직장인 밴드였다. ‘싸장님’은 기타리스트였다. 그때부터 두 달간 매주 금요일 밤 홍대 앞 합주실 생활이 시작됐다.
정말이지, 첫 번째 연습을 잊을 수가 없다. 5평이 될까 싶은 방에서 악기에 둘러싸여 자가장장~ 시작하는 순간. 온몸의 털이 다 서는 듯, 심장이 터질 듯 했다. 음악이 혈관을 따라 흐르며 쿵쿵거렸다. 아, 지상 낙원은 노래방이 아니라 합주실이었다. 금요일 퇴근 뒤 새벽까지 이어지는 연습은 고됐지만 매번 즐거웠다. 연습을 마치면 주로 방향이 같은 ‘싸장님’ 차를 얻어 타고선 그날 연습한 음악을 들으며 연주실력을 비교하곤 했다.
하지만 ‘싸장님 밴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여선배가 “젊은 여직원이 사장님과 붙어다니면 소문이 안 좋게 난다”고 했을 때까진 참았는데, 사장님 비서에게 “자기는 사장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야”란 말을 들었을 땐 별 수 없었다. 세상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구나 생각하며 밴드에서 하차했다.
그때 그 ‘싸장님’은 얼마 뒤 갑작스럽게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싸장님’은 암 투병을 하면서도 몰래 합주실에 들르시곤 했다. 나 역시 몰래 들렀다가 서로 마주쳤을 땐 멋쩍어 웃음이 났다. 추억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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