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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클럽에 가다

등록 2009-07-23 15:00 수정 2020-05-03 04:25
살사클럽에 가다

살사클럽에 가다

“같이 추실래요?”

남자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매끈한 손이 조명 아래 빛난다. 달콤하다. 저 손을 잡는 순간, 난 동화 속 공주님이 되어 미끄러지듯 춤을 추게 될 것만 같다.

그렇다. 난 순전히 ‘심야생태보고서’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금은 토요일 밤 11시, 여기는 서울 강남의 물 좋은 살사댄스 클럽이다.

‘춤바람’이 난 친구(768호 참조)와 살사댄스 클럽에 가기로 한 날, 하루 종일 내 화두는 ‘의상’이었다. 취재차 가는 거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맞춰야 될 거 아냐? 그렇다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너무 튀지 않겠어? 낮부터 고민을 하다가 저녁 때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말했다. 그냥 편하게 입고 와.

생각해보니 웃음이 났다. 춤도 출 줄 모르면서 의상만 신경쓰다니, 허허. 웃다가도 다시 댄싱퀸이 될 상상을 하며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마스카라도 발라 눈에 힘도 주고 입술도 붉게 칠하고 귀고리도 했다. 좋았어, 가보자고!

강남의 술집 골목. 한 건물 지하에 살사댄스 클럽이 있었다. 입장료 7천원을 내면 작은 쿠폰을 하나 준다. 그 쿠폰을 바에 내면 음료수 하나와 교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수나 차를 선택한다. 나 역시 생수 한 병을 바꿔 들었다. 놀랍게도 이들은 새벽까지 물만 마시며 춤에 몰두한다!

강당처럼 생긴 지하 공간의 한쪽 벽면은 전면이 거울이다. 연습하면 거울 앞에 선다. 모서리에는 의자가 배치돼 있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무대다. 조명 아래에선 수십 명의 남녀가 춤을 추고 있다. 물을 마시며 춤에 취한다.

음악이 바뀔 때마다 파트너를 바꾼다. 치열한 탐색전 끝에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가끔은 반대로도 춤을 권한다.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스텝을 잘 밟는 사람이다. 살사댄스를 잘 추면 자연히 눈이 가고, 다음번엔 저 사람과 춰야지 싶어 서로 가슴이 두근댄다.

갑자기 음악이 느려지고 몇몇 여성들이 자리에 와서 앉는다. 살사댄스 중 가장 신체 접촉이 많으면서도 매혹적이라는 ‘바차타’다. 바차타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시작된 춤으로 남자의 다리 사이에 여자의 다리를 넣은 채 끌어안고 추는 것이 특징이다. 죽은 연인을 안고 추는 춤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성들은 이때 눈치껏 춤 신청을 잘 해야 한다. 살사댄스 클럽에서도 낯선 남자와 바차타를 추는 건 꺼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한 쌍의 남녀가 바차타를 추기 시작했다. 남자는 배가 나온 30대 남성, 여자는 민소매를 입은 20대 여성이다. 남자는 스텝이 좋고 여자는 느낌이 좋다. 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었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며 음악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것이 아름다웠다.

그날 밤, 나는 남자의 손을 잡지 못했다. “저는 춤을 못 춰서요.” 말하고 나니 아쉬웠다. 새벽에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하나둘셋, 하나둘셋. 스텝을 밟아보다가 음악을 틀었다. 용암같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깊은 밤, 춤 때문에 몸이 달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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