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조직 속에서 갈등이 사라지길 염원하는 이들은 흔히 삶에 저항할 줄 모른다. 이른바 ‘현대적’이라는 정치권의 아첨꾼들은 심지어 ‘평온한 민주주의’란 명분으로 현실 문제를 이론화했다. …우리는 시위 때마다 권력자들이 ‘정치는 거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되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진지한 반론들을 제도의 틀 안에서 혹은 거리에서 표현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에 필요한 표현의 공간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분명, ‘투쟁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는 말은 옳다. (이하 르디플로) 한국판 제9호(6월호)에서 정치학자 앙드레 벨롱은 이 정언명제를 새삼 되새긴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합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제도”일 뿐이다. 벨롱은 말한다. 1877년 8월15일 급진 공화파인 레옹 강베타가 파트리스 마크마옹 전 프랑스 대통령에게 일러준 ‘훈수’를 기억하자고. 그것은 “국민이 의사 표명을 했을 때는 따르거나 사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인민의 호민관’으로 통하는 장 조레스가 민주주의를 “계층들이 움직이는 복판이며, 거대한 사회 충돌 속에서 중재하는 힘”이라고 규정한 것도 기억해두기로 하자. 바야흐로, 민주주의가 위기라잖은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말하는 것6월3일 서울대 교수 124명이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대학교수 시국선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반가운 한편 기가 차고, 기쁘면서 동시에 서글프다. ‘시국선언’은 그래서 ‘기이한 현상’이다. 표지 기사로 지식인 문제를 고른 6월호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옳다. “지식인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특권 계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계층 내에서는 중앙권력과 늘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주변적 존재”가 바로 지식인이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에 관여하는 사람”이라고 설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변했다. 언어철학자 자크 부브레스는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에서 “언론과 유착한 채 사회문제를 회피하며 특권층으로 군림하는 진정성 없는 미디어 지식인”을 질타했다.
특집으로 올린 ‘경제위기로 신음하는 노동현장을 가다’는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 ‘만국의 노동자’가 같은 처지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크라니아에선 눈먼 민영화로 금융자본에 넘어간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이 무능한 국가에 반기를 들었다. 아프리카 잠비아의 구리광산에선 형편없는 노동조건과 환경오염으로 광부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이, 그들을 들러리 삼은 다국적 광산업체가 배를 불리고 있다. 중국의 장난감 주요 생산지 중 한 곳인 광둥지방 청하이에선 위기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노동조건이 더욱 악화돼 장난감 생산 노동자들이 살엄음판 위로 내몰려 있다.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경제위기로 신음하는 세계 노동현장 르포‘프랑스식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 화장품 업체 로레알의 추한 진실을 파헤친 ‘아름다움의 상징, 로레알의 베일 속 두 얼굴’도 눈길을 줄 만하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고속 성장을 이뤄낸 로레알이 환경 친화를 내세우면서도 유해물질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거나, 이익을 위해선 허위·과장 광고도 서슴지 않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경영진이 인종차별과 극우 성향을 숨기지 않고 있음에도 이 업체가 성공 가도를 달리는 ‘신화’의 비결은 언론과의 유착이다. 이 업체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광고주이며,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통한단다. 역시,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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