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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편성’ 너무하데이~

등록 2009-05-05 11:06 수정 2020-05-03 04:25
〈CSI〉

〈CSI〉

국내 최초로 시도돼 나라 밖에서도 화제가 된 편성 전략이 있다. ‘데이 편성’이다. ‘CSI 데이’ ‘꽃남 데이’ 등 TV 시리즈 한 편을 골라 온종일 방송하는 몹시 ‘화끈한’ 편성인데, 특히 각종 기념할 만한 ‘데이’들이 충만한 가정의 달 5월은 그야말로 ‘데이 편성의 달’이라 하겠다.

‘데이 편성’은 영화채널 OCN이 2006년 6월25일을 ‘CSI 데이’로 선포하면서 탄생했다. OCN은 당시 시즌6 론칭을 앞두고 시즌1~5의 인기 에피소드 22편을 모아 24시간 방송했다. OCN 관계자는 “자칫 부정적인 반응도 있을 수 있어, 시청자를 만나 설문을 하거나 미공개 영상을 편집해 특집물을 만드는 등 두 달 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애쓴 보람이 있었던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온종일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했고 이날 시청률 2위 채널의 두 배, 드라마·영화 분야 경쟁 채널들과는 서너 배 차이가 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에 제작사인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는, 확인할 길 없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CSI 데이’의 후광은 국내에서 더 도드라졌다. 만화·외화 등 애초 시리즈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은 물론이고, 각기 다른 영화를 장르·배우 등으로 엮어 ‘○○ 데이’로 방송하는 일이 흔해졌다. 방송가에선 ‘데이’로 가장 재미를 본 것이 ‘연속(극)성이 강한’ 국내 드라마를 방송하는 채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인기 드라마 한 편을 8부 연속 방송하면 서로 다른 드라마 8편을 방송하는 것보다 시청률이 꾸준히, 그리고 두세 배 더 나온다. ‘반짝 효과’로 그만한 게 없다”고 귀띔했다.

방송사나 시청자가 ‘연속 방송’에 한결 둔감해진 것도 ‘데이 편성’이 가져온 변화다. 4부 연속 방송은 축에도 못 끼고, 8부·12부·24부를 잇따라 내보내 ‘데이’가 아니라 ‘투 데이즈’가 돼도 어색할 게 없는 요즘이다. 상업방송사의 편성 전략이 ‘더 많은 시청자를 더 오랫동안 TV 앞에 앉혀놓는 묘안’을 짜내는 데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어린이 채널의 과도한 연속 방송과 ‘데이 편성’에 대해서는 관계자 여러분과 뜻있는 시청자의 관심을 촉구하고 싶다. 특별한 ‘데이’가 아닌데도 30분짜리 만화 4부 연속 방송이 예사라는 거, 이런 편성이 이른바 ‘서구 선진국’에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 아이와 가족의 일상을 시나브로 파고든 ‘영상폭력’에 가깝다는 거, 엄마들은 알고 있다. 자신은 ‘꽃남 데이’를 보면서 아이에게만 잔소리하는 게 양심에 찔려서, 혹은 ‘TV 친화적인 아이’로 키운 책임을 편성 담당자들에게 돌리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에 큰소리를 못 낼 뿐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의 임상실험을 거쳐 단박에 시청자를 사로잡고 효과가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것으로 검증된 이 마법의 기술이, 꼭 모든 채널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십분 활용돼야 하는지 묻고 싶다. ‘데이 편성의 달’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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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블로거·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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