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봄 같은 날의 오후, 나는 단골 카페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트북을 열어 유튜브 사이트를 뒤적거리는데, 꼬맹이 하나가 다가와 말한다. "저건 뭐야?" 앗 그것은 이 사이트에서 내가 평소 즐겨보는 동영상들을 추적해서 제안하는 '추천 동영상' 코너. 나는 꼬마에게 나의 은밀한 취미를 들켜버렸다. 하는 수 없이 클릭. 그로부터 온갖 고양이들의 몸 개그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항 위에서 까불거리다 방안을 물바다로 만들고, 전등 위에 뛰어올랐다 공포의 그네를 타고, 친구를 덮치려다 되려 놀라 1미터나 점프하고... 꼬마와 나는 1시간 동안이나 그 바다를 헤어나지 못했다.
고양이와 인터넷만 있으면 세대와 인종을 넘어 뒤집어질 수 있다. 몸 개그만으로 세계적인 동영상 스타로 등극한 동물로는 현관 매트 훔쳐가는 너구리, 재채기하는 팬더도 있지만 역시 양과 질로 고양이가 압도적이다. 물론 인간의 카메라 근처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동물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개의 부진이 눈에 뜨인다. 고양이라는 게 원래 도도하게 잘난 척하고 운동 신경을 뽐내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호기심을 참지 못해 달려들었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깜짝 놀라 털을 세울 때, 우아하게 차려입은 여배우가 레드 카펫에서 넘어지는 것 같은 반전의 희열을 주는 거다.
나는 요즘 고양이 동영상 탐닉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있다. 단순한 몸 개그가 아니라, 진짜 마음을 흔드는 코미디로 나를 사로잡아버린 고양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만화 과 는 이 엄혹한 불황의 시대, 고양이들의 생존법을 보여준다. 인간보다 바쁘고, 인간보다 열심히 열하지만, 그래도 고양이의 본성은 숨길 수 없는 녀석들이다.
유키뽕은 무책임한 주인이 '네 밥벌이는 네가 해'라는 말에, 이 시대의 고양이는 단지 방구석에서 귀여움만 떨면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나서는데, 학력도 경력도 일천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혹독한 비정규직뿐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초고층 빌딩에 에어컨 설치하기, 폭풍우 속에서 심해 환경 조사하기, 전쟁터에 택배물품 전달하기... 우리는 유키뽕이 그 짧은 팔다리로 용을 쓰는 모습에 키득거리다가, 갑자기 한숨을 내쉰다. "남의 일이 아니잖아."
네코무라는 좀더 원숙한 고양이로 파견회사를 통해 부잣집의 가정부 생활을 한다.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콩가루인 이 집안에서 고양이 특유의 순진무구함으로 그들을 돌봐주는데, 인간과 고양이의 처지가 뒤바뀐 주객전도의 아이러니는 유키뽕과도 통한다. 네코무라는 웬만한 인간보다 가정생활의 노하우가 뛰어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박스에 손톱을 마구 가는 등 고양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신파조의 드라마에 눈물을 쏟아내는 등 뼛속까지 '아줌마'이기도 하다.
우리가 개나 고양이에게 위안을 얻는 것은 그들이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단순함 속의 평화를 즐기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녀석들은 주인의 펀드가 깡통이 되든, 집이 경매에 넘어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사실 주인이 직장을 잃으면 더 좋아하겠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테니. 우리는 녀석들이 얄미워 만화 속에서나마 신나게 부려먹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 천진난만함은 잃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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