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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변함없는 모순적 존재”

‘인간 관찰자’ 요시다 슈이치와의 만남… “나이가 들면서 모순에 사회성을 덧붙여 생각한다”
등록 2009-04-09 13:41 수정 2020-05-03 04:25
요시다 슈이치

요시다 슈이치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41)가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보라나비상의 첫 번역상 수상자인 이영미씨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출판사에서 책 나왔으니 한번 오시라고 손짓할 때는 뜸을 들이더니 ‘축하해주라’고 했더니 흔쾌했다. 이영미씨는 (수상작은 위 두 권), 등 최근 요시다 작품의 동반자다.

2003년 요시다 슈이치는 한국에 기억할 만한 도착을 알렸다. 1999년에 데뷔하고 2002년 로 아쿠타가와상을, 로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받았다. 이 두 작품이 2003년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출간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절실한 묘사와 연애소설 같지 않은 품격을 지닌 ‘인간 관찰 소설’. 반응은 빨랐고 이후의 요시다 작품은 일본과 거의 동시에 한국에서 출간됐다. . 2002년 이전 작품인 데뷔작 과 도 출간되며 리스트를 채워나갔다.

이영미씨는 2003년 요시다 붐을 일으킨 숨은 주인공이다. 출판사 편집자 시절, 에이전시에서 소설 복사본으로 갖다 읽고 ‘대성할 작가’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작품으로 한국에 처음 출간된 가, 번역은 아니지만 그의 손으로 직조된 것이다.

에서 미라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넌 네가 아는 사토루밖에 모른다는 말이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아는 사토루밖에 몰라. 그러니까 요스케나 고토도 그들이 아는 사토루밖에 모르는 건 당연한 거야.” 작가를 알기에는 3월 마지막 날의 1시간은 아주 짧았다. 위안이라면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그 정도일 거라는 거다.

어쨌든 처음은 호기로웠다. 소설가는 번역가를 모르고, 번역가는 독자가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른다. 둘을 ‘다 아는’ 독자라는 권력으로 소설가와 번역가에게 질문을 하는 자리니 말이다.

-디테일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누군가 담을 넘을 때 어떻게 손을 짚고 어떻게 땅에 발이 닿고 그 땅의 느낌이 어떻고 등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영화 콘티처럼 짜보는 건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은 디테일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디테일의 축적이 소설이 된다. 단순하게 디테일과 테마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하면, 나는 디테일이라고 답하겠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일부러 관찰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예를 들면 점심을 먹고 걸어오는 도중에 버스에 타거나 내리는 여자를 보았을 때, 전체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버스에 타려고 발을 올리는 장면이나 내릴 때 발을 딛는 장면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기억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많이 궁금해하는 점이 여성의 심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 하는 것이다. 남녀를 그릴 때 차이는 없나. 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도 있지 않나.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구분 방법이 조금 더 세밀하다. 알지 못하는 남자 A가 있고 알 것 같은 여자 B가 있을 때 나는 B에 대해 쓴다. 여성 전체는 못 쓰지만 B는 쓸 수 있다. 소설 중 필요한 캐릭터가 있을 때는 잘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성 심리와 여성 심리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등 장소가 제목에 들어간 경우가 많다. 도 고속도로에서 시작하고, 도 마을의 묘사에서 시작한다. 당신에겐 장소가 특별한 것 같다.

=소설을 쓸 때 제일 먼저 장소를 결정한다.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은 특별히 없다. 그런데 장소에 갔을 때 스토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장소를 하나의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써나가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작가에 비해 장소의 비중이 높다고 여겨지지 않나 싶다.

이영미씨가 번역상을 받은 은 연재작으로 이전과 달라진 작풍을 선보였다. 그전 작품이 오후 툇마루에 앉아 발을 씻는 식이라면, 은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 머리를 감는 것 같은 긴박감을 자아내는 본격 스릴러물이다. 큰 사건이 눈앞에 있으니 애써 작은 일들이 사건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고, 끔찍한 일이 저질러졌으니 선과 악이라는 선명한 대립점도 부각돼야 한다.

-초기작이 연애·남녀 관계를 다뤘다면 후기로 오면서 스릴러물이 많아졌다. 무슨 계기가 있었나.

=초기 작품에서 인간의 광기를 많이 그렸다. 다른 점이라면 전에는 등장인물이 광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마지막 상황까지 그렸다면, 그 이후에는 광기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까지 그려나가게 되었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져나갔다고 할 수 있다. 10년간 써온 것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에서 범죄를 테마로 다루게 됐다.

의 후기에는 이런 말이 인용돼 있다. “이전에는 일보 직전까지 묘사하는 일이 많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브레이크를 풀고 쓰고 싶었다.” 초기의 , 후기의 가 범죄물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이전 작품이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면, 후기 작품에서는 인간관계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닐까. 포용력이 커지고 상대방의 약점을 받아들이게 된다든지 하는.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포용력이 좀더 넓어진다거나 하는 점은 없는 것 같다. 인간 자체가 모순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예전에는 자신 있게 모순 자체를 인정했다면, 지금은 인간의 모순에 대해 사회성을 좀더 인정하게 됐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까. 덧붙이자면, 사람들은 자칫 나 자신만은 모순되지 않는다라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적어도 나는 그런 모순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의 경우, 에 연재를 해야 했기에 대중적으로 써야 했던 건 아닌가. 표현법이나 인물 묘사에서 예전보다 알아보기 쉬워진 느낌이다.

=아무래도 의식을 했다. 단어를 쓰거나 할 때 디테일을 의식했다기보다는 매일 아침 쓴 것이 다음날 피드백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문예지에 쓸 때와는 매우 다른 경험이었다. 을 펼치면 매일 일어나는 현실이 위에 실리고, 그 아래 이 실렸다. 현실에선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마련인데, 그 사건을 다루는 바로 그 기사 밑에 이 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은 일본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비슷한 주제를 일본 소설가들이 많이 다룬다. 비슷한 시기에, 히가시노 게이고도 를 냈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일본에서는 그런 경향을 좋아한다. 행복하기만 한 가정을 작품에서 다루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쓰면 덜 지겹고 재밌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는 ‘악’을 다루는 걸 좀더 좋아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일본인은 대외적인 생활이 평화롭게 지나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적어도 소설이나 픽션 세계에서는 강한 작품의 맛을 보고 싶어한다.

-흥미롭게도 ‘악’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에도 나온다. “사랑받고자 하는 것은 구제받을 길 없는 악의다.” 에서도 사랑받으려는 욕망과 ‘용서’라는 문제가 갈등한다. ‘악’에 대한 해석을 듣고 싶다.

=이건 분명 악인데도 선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행동들은 품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소설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에서 쓴 ‘악의’도 명백한 악의라는 맥락에서 쓴 거다. 자신은 사랑을 주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으려 한다면 악의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창덕궁으로 간다 했다.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공원을 둘러본다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불고 저녁에는 비가 날렸다. 공원에서 그는 어떤 작은 것을 발견했을까?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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