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에서 주인공 하단아(윤정희)는 한겨울에도 코트를 입지 않는다. 머플러도 두르지 않는다. 수년 전 신혼여행을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죽어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는 남편을 잊지 못해서다. 그래서 입김이 허옇게 토해지고 코가 빨개지도록 추운 날씨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추운 데 있어요. 그래서 나 혼자 따뜻한 게 싫어요”라고 잘라 말하는 하단아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웃기고 있네. 죽은 사람이야 물론 불쌍하고, 사랑했던 사람이니 슬프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혼자 춥게 입고 다녀봤자 누가 열녀문을 세워줄 것도 아닌데 이건 무슨 허세고 청승이란 말인가. 아무튼 드라마 속 여자들이란.
아버지가 키우시는 카나리아가 죽은 것은 설을 앞두고 몹시 추워진 어느 날의 일이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두는 걸 깜박 잊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새장 속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구석에서 몸을 둥그렇게 만 채 떨고 있었다. 부랴부랴 새장을 거실로 들여놓고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대로 검은 천으로 새장을 덮고 적외선 온열기까지 쐬어주었지만 모이를 먹고 몇 발짝 돌아다닌 것을 마지막으로 오후 즈음 카나리아는 숨이 끊어졌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 부주의로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다음날 출근길에 빙판 위를 걸으며 장갑을 끼려는데 문득 죽은 카나리아가 떠올랐다. 말도 못하는 생물을 밤새 얼어 죽도록 방치했던 주제에 내가 그깟 손 좀 시리다고 장갑 낄 자격이 있나? 심지어 나는 그전까지 카나리아가 추위에 약한 생물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무지한 인간이었다. 갑자기 몸에 걸친 코트며 머플러가 모두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냥 장갑을 가방에 쑤셔넣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코트를 입지 않는 하단아의 고집은 사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혹은 유일한 애도 방법이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용산 참사로 인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은 것도 바로 그즈음, 추운 날의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한편에서 불지옥의 문이 열렸다 닫혔지만 세상은 의외로 평온했다. 어떤 신문들은 철거민 쪽 활동 단체의 정체성을 의심했고 어떤 사람들은 철거민이 요구했던 보상금의 액수를 궁금해했다. 따뜻한 방 안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선량한 시민’들은 이유야 어찌됐든 법치국가의 기강을 흐리는 것은 ‘폭도’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몇 개의 목숨이 공권력의 수레바퀴에 치여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이며 대한민국 서민이었던 그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애도하지 않는다. 내가 죽은 카나리아와 남겨진 그 짝에게 미안해하는 것처럼 이번 죽음에도 고개 숙일 사람이 없지는 않을 텐데 도통 보이지 않는다. 글쎄, 어쩌면 진압 총책임자였던 서울경찰청장님도 옷을 벗는 대신 추운 날 코트를 벗는 걸로 혼자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시려나. 그러기나 하면.
최지은 기자·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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