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찌불은 혼불처럼 붕어를 거두다

낚시의 대가 송귀섭씨와 동석한 저수지의 가을밤… 시간도 호흡도 멎은 몰아지경
등록 2008-11-07 14:48 수정 2020-05-03 04:25
숯골지의 황혼

바람이 분다. 휑하니 몸을 훑고 지나간다. 스산하다. 남녘에 부는 이 바람도 이제 가을임을 아는 게다. 새로운 탄생에 대한 갈망을 일깨우는 봄바람과 달리 가을바람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거친 욕망 뒤의 배출, 혹은 무엇인가 생산을 마친 뒤의 허탈함이랄까. 바람, 제 탓이랴. 그저 가을걷이를 마친 이 들녘의 살결을 비벼 스치고, 부르르 몸을 떪으로써 잎들을 떨구고 있는 참나무 가지에게서 들은 속삭임을 전하고 있는 것일 뿐. 그래서 바람은 소문쟁이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한다. 솜털 구름 사이로 그 잔영이 언뜻 비친다. 하루 종일 대지를 덥힌 그도 이제는 쉬어야 할 때임을 안다. 왼편 하늘 위로 달에 이은 밤의 2인자 북극성이 고개를 슬며시 내민다. 그러곤 한마디 말을 건다.

해가 서산을 막 넘어간 때 송귀섭씨가 자리에 앉아 찌불을 바라보고 있다. 붕어낚시 명인인 그도 1년에 두어 번은 붕어를 집에 가져가 찜을 해먹는다고 한다.

해가 서산을 막 넘어간 때 송귀섭씨가 자리에 앉아 찌불을 바라보고 있다. 붕어낚시 명인인 그도 1년에 두어 번은 붕어를 집에 가져가 찜을 해먹는다고 한다.

“너 이놈, 오늘도 욕심에 찬 얼굴로 또 왔구나. 내 두고 보마.”

지난 10월29일 밤 전남 무안군 일로읍의 한 조그마한 소류지. 3500평가량인 이 저수지의 호적상 이름은 산천지, 지역에서는 숯골지라 부른다. 주변은 이미 어둑하다. 찌불을 꺾을 시간. 성냥보다 굵으면서 짧은 모양새의 플라스틱 찌불 내부 화학물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가지런히 편 5대의 낚싯대 끝에 가녀린 줄로 연결된 찌 끝의 찌불은 한밤 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낚시꾼에게는 낚싯대를 잡아챌지 말지를 알려주는 암흑 속 유일한 판단의 근거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사위가 먹먹하다. 조용한 가운데 소류지 건너편에 이따금 잉어인지 붕어인지 모를 큰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다시 잠수하는 ‘텀벙’ 소리만 귓전을 때린다. 눈앞에 보이는 건 찌불뿐, 물아일체(物我一體). 온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잡념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가을바람에 잔뜩 웅크린 듯 차렷 자세로 선 5개의 작은 불빛만이 내 시신경에 포착된다. 순간 그 분의 말씀이 적막을 가른다.

변칙 복서

“네, 이제 해가 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이곳 무안의 숯골지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밤낚시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내 오른편에 자리를 잡은 송귀섭(56)씨가 조명 밝힌 방송 카메라를 앞에 놓고 프로그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평산(平山) 송귀섭. 전통 붕어낚시의 대가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낚시꾼. 수많은 케이블·위성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낚시의 이론과 기술, 철학을 펼쳐온 그가 지금 내 옆에 있다. 여기는 케이블·위성채널 FTV에서 방송 중인 〈송귀섭의 붕어낚시 Q&A〉 37회분 촬영 현장이다. 매번 일반인 출연자와 함께 1박2일 출조를 하는 그의 옆에 내가 낚싯대를 펴고 앉아 있다. 나는 출연자다. 살이 통통 오른 가을 붕어를 곧 만난다는 사실과 함께 그의 존재는 이미 내 가슴을, 무지개를 본 워즈워스의 가슴만큼이나 콩닥거리게 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뻔한 적이 있다. 2005년 1월 스포츠 담당 기자를 하던 때, 국내 스리쿠션 랭킹 1위 최재동씨를 서울 강서구 어느 당구장에서 인터뷰했다. 당구 동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은 경험, 그건 바로 절정의 고수와의 대적. 취재가 끝날 무렵 “근데 혹시 만나는 사람들이 한 게임 붙어보자고 하지 않아요?”라고 묻자, 눈치를 챈 최씨가 정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가하게 나 같은 아마추어와 공놀이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취지였다. 그 낭패감이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 붕어낚시의 달인이 내 옆에서 미끼를 바늘에 꿰고 있다. 누가 더 큰 붕어를 낚을지, 내가 그와 맞붙을 일은 아니다. 배우겠다는 일념뿐이다.

송귀섭씨가 기자에게 물이 30% 정도만 남은 갈수기 저수지 낚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귀섭씨가 기자에게 물이 30% 정도만 남은 갈수기 저수지 낚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도 찌불을 5개 던져놓았다. 3대의 낚싯대에는 대어낚시용 새우를 달아놓았고, 2개에는 그냥 떡밥이 달려 있다. 이런 채비 방법은, 권투에 비유하자면 ‘변칙 복싱’이다. 상대를 계속 몰아세우며 다가서는 ‘인파이팅’과 상대 주변을 끊임없이 돌며 주먹을 날리는 ‘아웃파이팅’을 함께 구사하는 변칙 복서 말이다. 고수는 보통 이런 채비를 하지 않는다. 큰 붕어를 낚기 위한 대어낚시를 하든, 잔재미를 위한 떡밥낚시를 하든, 현장 상황에 맞춰 통상 한 가지만 한다. 오늘은 두 재미를 모두 놓치기 싫어하는 어리석은 출연자의 평소 낚시 스타일에 송씨도 맞춰주려는 것뿐이다.

가장 존경하는 낚시인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 뒤 날아온 대답에 그의 낚시 철학 한 부분이 담겨 있다. “전 국회의원인 예춘호 선생을 존경합니다. 함께 낚시를 해보니, 붕어낚시를 하다 피라미가 달려들면 피라미대를 꺼내 낚시를 즐기고 바다에서는 돔 낚시를 하다 학꽁치가 달려들면 학꽁치대를 꺼내 낚시를 하시더군요.” 한 가지에 집착하기보다, 현장 상황에 맞춰 즐길 줄 아는 낚시인의 자세가 배울 만하다는 설명이다. 끊임없는 미련은 고통을 낳기 마련이고, 그때부터 낚시꾼은 어부가 되고, 취미생활이라는 본래의 뜻은 사라진다.

가을 붕어의 손맛

잔잔한 수면 위로 찌불 하나가 살짝 꿈틀한다. 물 아래 바닥에 고기가 왔음을 뜻한다. 이제 곧 가을 붕어를 만나게 될까? 붕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수확의 계절인 이때 먹이를 많이 먹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낚싯대에 걸린 가을 붕어는 저를 잡아가려는 꾼의 욕망에 저항하기 위해 평소보다 힘을 더 쓴다. 꾼은 그만큼 더 손맛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가을 붕어는 낚시꾼의 로망이기도 하다.

예신을 마친 찌불이 서서히 솟아오른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혹시나 빼앗길까 싶은 마음에 붕어가 먹이를 물고 저수지 바닥에서 조금씩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신호가 왔다. 이게 바로 붕어낚시의 매력 아니던가. 시간이 멎는 듯하다. 혹시나 고동 소리를 듣고 붕어가 도망갈까, 낚시꾼의 심장도 함께 멈춘다. ‘꿀꺽’ 하고 군침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들숨을 한 낚시꾼의 코에선 날숨이 나오지 않는다. 숨소리조차 방해가 될까 두렵다. “그래 그래, 조금만 더 올려라.” 찌불이 허공을 향해 충분히 올라올 즈음, 저도 모르게 손잡이를 살짝 쥐고 있던 꾼이 ‘휙’ 하고 챔질을 한다. 생과 사를 건 싸움이 시작된다. 붕어는 살기 위해 도망하고자 한다. 꾼은 그 붕어의 얼굴을 보고자 낚싯대를 치켜든다. 낚싯대 끝이 수면을 향해 휜다.

물을 차고 나가던 붕어는 이내 항복을 선언했다. 얼굴을 수면 위에 내놓고 뭍으로 나왔다. 영장 없는 구속이 달가울 리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씨알은 굵지 않다. 잘해야 대여섯 치 정도다. 한 치가 3cm이니, 붕어 몸 길이가 15∼18cm가량 되는 셈이다. 기대한 씨알은 아니다. 요 며칠 계속 월척(30.3cm 이상)급 붕어가 밤낚시에 나왔다는 광주 IC낚시점 허형 사장의 말을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허 사장은 송귀섭씨 개인 팬클럽의 회원이기도 하다.

옆자리에서도 입질이 왔다. 송씨도 붕어를 걸어냈다. “에이, 나쁜 놈.” 잔씨알에 실망한 송씨의 입에서 탄식이 흐른다. 낚시 방송에서 큰 붕어를 보여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뒤따르는 말이 고수의 내공을 보여준다. “아니다. 내가 나쁜 놈이다.” 멀쩡히 잘 살던 곳에서 끌려나온 붕어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나마 잡혀준 붕어에게 고마움을 표하지는 못할망정 씨알 탓이라니…, 하는 반성이 배어 있다.

나오라는 월척은 안 나오고
송귀섭씨가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낚시는 하늘과 구름과 별과 물을 껴안는 행복한 취미생활이다.

송귀섭씨가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낚시는 하늘과 구름과 별과 물을 껴안는 행복한 취미생활이다.

밤 11시가 되자 인근 가로등이 자동으로 꺼졌다. 어둠은 더 깊어졌다. 깊숙이 다가온 가을 탓에 밤바람이 차다. 솜바지에 겨울 점퍼를 입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진다. 잔챙이 붕어만 간간이 입질을 할 뿐 기다리던 월척급 붕어는 소식이 없다. 하기야 대어를 잡기에는 환경이 좋지 않다. 챔질을 할 때마다 ENG 카메라 조명이 수면을 비추고, 방송을 위해 송씨와 기자가 큰 소리로 말을 주고받는 마당에 그렇게 조심성 많다는 월척급 붕어가 뭍 가까이 다가올 리 없다.

김진권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묻는다. 조명에 눈이 부시다. “방송을 보는 낚시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제 주제에 말씀은 무슨 말씀이오. 그런데 한마디 꼭 하자면….” 낚시터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가는 문화를 고치지 않고는 낚시라는 취미를 계속 즐기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캠페인성 코멘트를 했다. 지금 이 자리 근처에도 깡통과 플라스틱병, 다 쓴 지렁이통 등이 널려 있어 방송 전에 미리 치워야 했다. 다음날 모아보니 대형 쓰레기 비닐 세 봉지가 가득 찼다. 모두 낚시인들이 버리고 간 양심이다.

낚시계에도 많은 이론들이 난립해 백가쟁명식의 싸움이 벌어지는 세태에 대해 송귀섭씨의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중학생의 눈높이에서 상식적인 판단을 해봐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들이 많지요. 이를테면 봉돌을 큰 것 하나보다 작은 것 여러 개를 쓰면 붕어가 찌를 올릴 때 이물감을 덜 느낀다고 하는데요. 같은 질량이라도 표면적이 넓어지면 저항이 그만큼 커지지 않습니까. 그럼 찌의 부력과 봉돌에 작용하는 중력이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붕어가 봉돌을 들어올릴 때 그만큼 봉돌의 저항이 증가할 수밖에 없지요. 어떤 게 더 이물감이 느껴질까요? 그리고 대개의 상황에서 붕어는 그 작은 차이를 느끼지 않습니다. 다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산물이에요.”

과학적 근거도 없고 쓸데없는 이론에 매몰돼 낚시의 참맛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실제로 이러저러한 낭설의 진위를 가리고 스스로의 낚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동네 수영장을 밤에 빌려 낚시 채비를 실험한 적도 있을 만큼 철두철미하다.

“야식 드세요.” 간밤에 차를 몰고 온 송귀섭씨의 팬클럽 회원이 외쳤다. 올라가보니 삶은 돼지고기에 족발, 김치, 새우젓, 상추 등이 돗자리 위에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야외에서 먹는 야식의 기쁨도 낚시를 즐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강행군의 뒤안길

이튿날 새벽 3시. 잔씨알 붕어만 계속 얼굴을 내민다. 춥다. 지친다. 송귀섭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찌불을 응시하고 있다. 낚시가 끝나기 전 카메라도 멈출 수 없다. 촬영감독의 눈에도 피곤이 내려앉았다. “잠시 쉬고 아침 낚시를 진행하겠다”는 코멘트와 함께 송씨는 차량에 쉬러 들어갔다. 이른바 ‘전투 낚시꾼’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별칭을 듣는 나도 30분을 더 버텼지만 도리가 없다. 차에 쭈그리고 누울 수밖에….

3시간30분 뒤 눈을 떠보니 송씨가 벌써부터 자리에 앉아 찌를 노려보고 있다. 이미 동은 텄다. 그가 제법 힘을 쓰는 붕어를 걸어냈다. 일곱 치를 조금 넘겨 보이는 체급이다. 아쉽더라도 이게 어딘가.

“자, 여러분, 오늘은 무안 숯골지에서 낚시를 해봤습니다. 전 조사님, 오늘 낚시 어땠습니까?” 클로징 멘트 촬영이다. 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시대 낚시 명인으로 불리는 송귀섭씨와의 1박2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11월19일 밤 11시에는 FTV 채널을 통해 그와 함께한 시간들이 방송된다. 그 사이 당찬 가을 붕어의 손맛을 다시 보러 어디로 갈까?



6500여 회원 이끄는 송귀섭씨
‘직공낚시’ 원조… “한판 붙자” 유명세 톡톡


송귀섭씨는 전통 붕어낚시에 천착하고 있는 전문 낚시인이다. 잡지 기고와 방송 출연 등으로 낚시계에서는 나름의 반열에 오른 인물로 통한다. 그동안 등 본인의 이름을 걸고 만든 방송 프로그램만 200여 회에 이른다. 저술과 방송 말고도 행사 출연에, 조구업체인 ㅊ사의 선임 필드스태프(낚시 용품 개발부터 시제품에 대한 조언, 실제 써본 뒤 오류를 바로잡는 구실까지 하는 이들)로도 뛰는 등 낚시활동만으로 연간 수천만원의 수입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송귀섭씨

송귀섭씨


회원이 무려 6500여 명에 이르는 팬클럽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교주’급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평산가인’ 회원들과 1년에 두 차례 정기 출조를 한다. 지난 10월22일에는 110명이 모였다. 연예인과 일부 정치인들을 빼고서 이런 규모의 팬클럽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에 가깝다.
워낙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유명세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새벽 재방송을 보고는 “당신하고 한판 붙어보고 싶다”며 휴대전화를 걸어오는 이부터 꼭 한번 같이 낚시하러 가자고 졸라대는 스토커가 너무 많아 지난해에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본래 직업군인이었다. 1994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전문 낚시인으로 변신했다. 아마 군에 계속 있었다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는 한 지금보다 유명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올바른 낚시 문화, 특히 용어 순화에 관심이 많다. 낚시 미끼를 물에 멀리 던져넣는 게 아니라 낚싯대 끝 아래로 드리우는 ‘직공낚시’도 그가 만든 말이고, 큰 붕어를 노리는 ‘대물낚시’가 일본에서 온 표현임을 밝히고 ‘대어낚시’로 부르자는 글도 최근 내놨다.
붕어낚시꾼의 72%가 대어낚시를 한다고 할 만큼 현재 낚시계가 지나치게 크기에만 집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내년부터는 낚시 풍토를 바꾸기 위한 작업에 나설 참이다. 이름값에 비해서는 늦게 지난해 첫 단행본 을 내놨는데, “책은 딱 5권만 쓰고 그만둘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평산(平山)이라는 그의 호는 “평평한 산이 위험하지도 않고 안정적인데, 자네 성격이 그렇네”라며 서예 스승이 1970년대에 지어주었다고 한다.


무안=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