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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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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징하게 발전시킬 방법은?

등록 2008-08-08 00:00 수정 2020-05-03 04:25

TV 프로그램 와 의 스토리 제조자들의 비법을 엿보다

▣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건 저주가 아니지 않나요?”

문화방송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 일 오전 10시50분)의 임태수 프로듀서가 대본을 보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주처럼 보이는 거죠. 동물 보호를 명분으로 법까지 만들었는데, 그 법이 너무 가혹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거예요.”

대본을 쓴 이수현 작가가 말했다.

“그렇다면 관군이 등장한다거나 해서 사람들이 죽는 사례들이 앞부분에 있어야겠는데….”

임 프로듀서가 대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하자, 이번에는 전현진 작가가 나섰다.

“사람들이 뭔가에 당하는 느낌이 들어갔으면 하는 거죠? 그런데 관군이 등장하는 것만큼은 숨겨야 할 것 같은데요. 관군이 처음부터 바로 나오면 저주라는 느낌이 안 살잖아요. ‘왜 사람들이 죽어나갈까?’를 묻되, 시청자에게는 알리지 않고 가는 게 더 긴장감이 있지 않을까요.”

진실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가짜 같게

지난 7월30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경영센터 14층의 제작1부 사무실. 제작진의 대본회의가 한창이다. 테이블 위 대본에는 ‘동물들의 저주’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대화가 이어졌다.

“동물을 가리고 가느냐, 까고 가느냐의 문젠데. 그럼 차라리 장면1과 장면3을 바꾸는 게 어떨까요? 느낌이 살 것 같은데.”(임 프로듀서)

“그게 나을 거 같네요. 주인공이 시체를 발견하고 바로 장면4로 연결되면 훨씬 의아스러운 느낌을 주겠는데요.”(전 작가)

“그럼 앞부분에서 장면1과 2가 없어지는 거죠? 장면1이 뒤로 가는 거고.”(이 작가)

펜을 든 이수현 작가의 손이 빨라졌다. 그는 오고 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대본 빈 공간에 꼼꼼히 적어넣었다.

이날 회의에선 ‘동물의 저주’ 외에도 ‘살인편지’와 ‘충견 따황이’가 입도마에 올랐다. 이들 대본은 8월10일 방송될 ‘진실 혹은 거짓’ 코너의 에피소드들이다. ‘진실 혹은 거짓’은 우리 주변의 기이하고 황당한 사건들, 세계를 놀라게 한 희대의 사건들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연하는 의 대표 코너. 세 이야기 중 두 개는 실화고 나머지 하나는 작가들이 꾸며낸 이야기다. 진행자와 출연자들이 이들 이야기 중 실화가 아닌 것을 가려내는 게임 얼개로 진행된다.

는 2002년 5월 처음 방송돼 어느덧 6년을 넘어섰다. ‘진실 혹은 거짓’을 통해 소개된 이야기만 980여 가지나 된다. 인기 스타들을 앞세운 예능 프로그램도 3년을 넘기기 힘든 현실에서 스토리텔링으로 승부를 거는 의 선전은 놀랍다. 제작진은 각종 책과 신문, 인터넷, 해외토픽 등에서 소재를 찾는다.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가 주요 대상이다. 전 작가는 “‘진실’과 ‘거짓’이 확연하게 차이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거짓 같은 진짜 이야기, 진짜 같은 거짓 이야기가 필요하다. 거짓 이야기를 만들 때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만 따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다.

‘진실 혹은 거짓’에서 이야기당 제한 시간은 12분. 이 짧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갖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정말 쉽지않다. 제작진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로 꾸밀 때는 진실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용을 더하거나 빼거나 한다. 대본 쓸 때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부분이 구성이다. 구성의 꾸밈새에 따라 재미가 배가될 수도,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 프로듀서는 “란 제목처럼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야기를 구성할 때 반전을 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물론, 시청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트릭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줄거리만 잘 적어내면 됩니다”

실제 일을 재구성하는 에 비해 아예 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한국방송의 (이하 , 목 밤 12시35분)는 한층 더 스토리텔링의 원형에 가깝다. 는 일반인들이 참여해 스토리 배틀을 벌이는 프로그램. 공모를 통해 뽑힌 스토리텔러 8명이 매주 2명씩 7주 동안 승자 진출전을 벌여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공모에 응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 작가를 비롯해 의사, 학원강사, 학습지 교사, 회사원, 대학생 등 다양하다. 소설이나 시나리오 형식이 아니라 줄거리를 담은 시놉시스만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중고생들도 많다. 공모에 뽑혀 본선에 오른 사람들은 심사인단 앞에서 15분 정도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심사인단은 그 이야기만 듣고 평가를 내린다. 이야기를 드라마로 재현한 화면은 제작진의 몫. 작가들이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써서 만들어낸다. 연출자 최인성 프로듀서는 “특별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줄거리만 잘 적어내면 된다”고 말했다.

이야기 공모에는 한 주제어당 150여 편씩 글이 몰린다. 이 중 본선에 오를 8편의 이야기가 선정되고 다시 대결을 통해 승패가 가려진다. 최 프로듀서는 본선 작품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창의성’을 꼽았다. “구성도 중요하지만 고쳐서 맞춰갈 수 있잖아요. 구성이 조금 떨어져도 창의성 뛰어난 이야기에 눈이 많이 갑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보내오는데, 대부분 영화 나 비슷한 모티브를 가진 글들이 많아요. 틀을 깨는 새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죠.”

그는 매체적 합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방송에서 다룰 수 없는 이야기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공모에는 장르 제약이 없다. 그러나 방송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미스터리나 판타지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보면 대체로 내용이 복잡하지 않고, 캐릭터와 장르가 명확해요. 그리고 하나의 갈등 구조가 진행되면서 마지막에 반전을 포함한 메시지가 있죠.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장르가 미스터리나 판타지예요. 대사가 많고 복잡미묘한 심리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는 적합하지 않죠.”

는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3만여 개의 ‘스토리텔링 클럽’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가 연간 5조7천억원을 벌어들이고 등의 소설을 탄생시킨 영국은 이야기의 본고장. 18세기가 산업혁명, 20세기가 정보혁명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이야기가 자원이 되는 ‘이야기 혁명’의 시대다. 최 프로듀서는 말한다.

이야기를 들을 줄, 봐줄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지길…

“국내에서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보게 되는 것들이 적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쓸 수 있는 원천적인 ‘소스’가 부족하죠. 일본 소설·만화의 판권이 부리나케 팔리는 이유가 그것이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아마 달라지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고, 봐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일. 그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목표입니다.”



박현찬씨가 말하는 스토리의 구조

반전은 인간의 본성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1980년대 에듀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며 교육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기법을 연구하던 박현찬씨는 ‘메가히트’ 작가가 되었다. (2006)를 코디네이트하고 (2007)을 공동 집필한 뒤 이라는 저서를 최근 펴냈다. 이 책들은 제목에도 나와 있는 ‘원 메시지’(one message)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우화형 자기계발서’의 한국형이다.
그는 메시지를 향한 이야기 구조를 ‘로직’(logic)으로 풀어낸다. 박씨는 스토리에는 ‘트렌드’가 없기 때문에 ‘로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언어보다 더 오래된 것이 스토리”라고 말한다. 알타미라 벽화에도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작업을 하기 전에 전하려는 메시지를 ‘로직트리’로 해체해서 분석·가공한다. 에서는 ‘원칙’을 강조하기 위해 나, 너와 나, 그리고 모두, 세 가지 분야에서 각각 세 가지 메시지를 정했다. “한국형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현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잡아나가야 하는데, 집필하는 1년 동안 현실을 계속 살폈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가치를 살피다가 메시지를 ‘원칙’으로 잡았다.”
박씨는 스토리 구성에서 재미의 근원은 ‘반전’이라고 말한다. 반전은 기-승-전을 통해 쌓여온 긴장을 결론에서 해소해주는 힘을 강화한다. 그는 이 반전이 ‘인류 본성’의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역사에서 인간은 카오스를 통해 패턴을 찾아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패턴을 찾으면, 즉 해결책을 쌓으면 행복감과 만족감이 생물학적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서의 ‘유레카’도 마찬가지 이치에 따라 ‘재미’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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