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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타임] 마틴 파, 그의 컬러

등록 2007-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남북한 인간 풍경과 소비사회 단면을 찍어온 마틴 파의 아시아 최초 회고전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국제 다큐사진가 모임 ‘매그넘’ 회원인 영국인 마틴 파(55)는 여러모로 ‘별종’ 작가다. 우선 다른 작가들과 반대로 요란한 컬러사진만 고집한다. 거기에 소시지·햄버거 등의 먹을거리들을 배설물처럼 확대 촬영하기를 즐겨한다. 여행지 곳곳 사진관에서 각기 다르게 찍은 자기 초상사진들도 작품처럼 모은다.

게다가 그는 1990년대 이후부터 한반도 남북한 사람들도 번갈아 찍고 있다. 자기 시선으로 건진 주관적 다큐사진들이다. 평양 시민들을 잡은 앵글은 아이러니한 감동을 자아낸다. 김일성 주석의 동상 앞에서 충성의 꽃다발을 바치는 인민복 차림의 참배객들 사이에 곰인형을 업은 아이의 뒷모습이 잡혔다. 황금빛 동상은 동심을 부각시키는 소품(?)이 된다. 아기를 안고 가는 군인 사진을 본다. 카키색 군복을 입은 군인의 굳은 어깨 위로 울상 섞인 아기의 얼굴이 솟아오른다. 동심의 표정은 체제를 가뿐히 넘어 북한도 ‘사람 사는 곳’임을 일깨운다.

마틴 파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후원으로 아시아 최초 회고전(5월30일까지)을 열면서 이들 남북한 사진을 전시장 뒷공간에 내걸었다. 서구 소비사회에 대한 직설적 풍자로 유명해진 이 거장은 다큐 세계를 갈무리하는 소재로 남북한의 인간 풍경을 택했다. 앞서 전시장 머리와 중간에 소개된 다큐사진들은 영국 시골이나 소도시, 휴양지, 세계 곳곳의 유명 관광지, 도시 등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소비문화의 모순적 단면들을 담고 있다.

50년대 미국인들의 감춰진 속물성을 까발렸던 로버트 프랭크를 추종하는 작가는 소비문화에 대한 지극한 냉소와 위트로 사회적 욕망의 이면, 도시적 변화의 생채기 등을 포착한다. 쓰레기 널린 채 퇴락한 영국의 옛 휴양지 뉴브라이튼 해변을 찍은 80년대의 ‘마지막 휴양지’ 시리즈, 프랑스로 술 사재기 원정을 떠나는 영국인들을 담은 ‘하루여행’ 시리즈는 시선의 순간 포착력이 압권이다. 포클레인 옆에서 일광욕하고 쓰레기 널린 언덕에 짜증 어린 표정으로 널브러진 하류층 사람들, 맥주 상자를 서로 먼저 사려고 탐욕의 몸싸움을 벌이는 연극 같은 행태들이 적나라한 앵글 속에 담겼다. 음식을 역겹게 확대 촬영한 설치사진 ‘상식’, 관광객 구경이 주가 되어버린 관광명소의 현실을 부각시킨 ‘작은 세계’ 등도 보인다. 80년대 이후 컬러로만 작업해온 작가는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잘 대변하면서도 가장 노골적으로 비판 가능한 매체가 컬러”라고 했다. 02-514-39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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