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명의 예인 명인 다룬 진옥섭의 1, 2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노름마치’란 ‘놀다’에 ‘마치다’를 합친 말로, 다음 놀음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결국 판을 마치게 하는 ‘놀이의 고수’를 말한다. 장안의 놀 만하다 하는 공연에는 항상 이름을 박곤 하는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이 (생각의나무 펴냄)를 써냈다. 예기, 남무, 득음, 유랑, 강신, 풍류 6개로 나눠진 장 이름에서부터 그가 다룬 예술가의 순탄치 못한 삶이 느껴진다. “남다른 처지를 궁금히 여겨 찾은 것이 아니다. 극치의 것을 찾다 보니 그분들의 남다른 예술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책은 무대에 세우려 예인 앞에 무릎 꿇는 서설로 각 장을 열고 여기에 3명씩의 삶을 이어붙였다. 모두 18명의 예인 기인이 다뤄졌다.
무당 김금희, 병신춤 공옥진 등 잘 알려진 이름도 보이나 저자가 물어물어 찾아가 누운 호랑이를 일으키고 숨은 용을 찾아낸 예가 많다. 장금도에게 연락을 했을 때를 보라. “‘폴새’ 돌아가신 언닌데, 멀리서 오셨으니까 대신 나가 인사나 드린다”는 전화 너머 말에 듣는 사람 또한 긴가민가다. 그러나 땡땡이 블라우스와 팔에 꿴 자그만 핸드백에 심증이 굳는데 갑자기 확실한 물증이 드러난다. 물컵을 밀 때 손목이 살짝 굽혀지는 순간, 그 몸짓은 감출 수 없다. 권번에서 기생으로 지낸 일은 가족에게 또한 숨긴다. 공연을 갈 때는 “계군들과 온천 간다”고 둘러대고는 미리 세탁소에 맡겨둔 옷을 들고 상경한다.
와호장룡을 찾았으나 공연 무대에 모시기 위해서는 ‘기교는 없어도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설득의 묘수’ 삼고초려 또한 불사다. 춤추는 동래 한량 문장원을 모시던 때가 그랬다. 몇 마디 듣고는 “손님이 기다린다”며 사랑방 다실로 내려가곤 하던 문장원은 결국 휴대전화를 걸어온다. “내일은 오지 마라. 올라갈 꼬마.” 무엇보다 숨은 그들을 일으킨 것은 저자 말로 ‘알은체’다. 자신을 속이는 장금도에게 “출연자 중에는 선생님 말고도 ‘채 맞은 생짜’가 있습니다”라고 한다. 나무기생이 아니라 회초리로 맞아가며 제대로 학습한 기생이라는 ‘전문용어’에 ‘떨구면 체중이 줄 듯한 큰 눈물방울’이 솟는다. 승낙이다.
“진작 좀 오지” 소리도 듣는다. 서산의 심화영 할머니는 후계가 없다. 충남무형문화재로 ‘승무’를 지정받았으나 4대로 이어지는 중고제 판소리의 맥은 끊겼다. 1980년대 한 장 두 장 발견을 시작으로 100여 장의 유성음반 목록이 작성되며 화려한 국악 가문의 면모가 드러났으나 그뿐이다. “옛날에는 소리 잘하면 감추고 살았지. 요샌 노래방도 있고 다들 자랑이고 벼슬이여, 좋은 세상”이라는 심화영 할머니 말에 저자는 이리 받는다. “중고제 판소리는 영 틀렸다. 할머니의 생애와 더불어 종언을 고할 터이다. 노래가 자랑인 시대에 노래가 죽은 것이다.” 월북한 박동실에게 많이 배웠다고 해서 미운털이 박힌 한애순의 ‘심청가’는 지방문화재로도 지정되지 못해 맥이 끊기려 한다. 이런 시대에 는 마지막 초상이다. 저자의 신명나는 묘사에 그 소리가, 그 춤이 보고 싶다, 한단들 없다. 가고 없다. 진옥섭이 모셔 ‘와이드 화면에 걸맞은 가장 시각적인 소리꾼’으로 칭송받게 된 정광수는 유네스코에서 판소리를 지정받기 닷새 전에 돌아가시었다. 애당초 조선성악연구회 자리는 국밥집이 되었다.
책이 명창, 춤꾼의 재주에 바쳐졌으니 책을 소개하는 이 글은 진옥섭의 재주에 바쳐야 하리라. 침도 안 바르고 어기적어기적 숨 넘어갈 듯한 글 흐름은 침도 안 들어갈 만큼 쫀득쫀득하다. 입을 쑥 눌러 똥구멍이 빠지는 힘이다. 글마치 진옥섭에게 서평은 흥 없는 중언부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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