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오늘의 한국 소설이 보여주는 반인간주의에 반발해 공지영을 찾는 독자들</font>
▣ 이명원 문학평론가
어느 심포지엄 자리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공지영 소설이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라고 말했다. 신문기사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지라, 그 발언의 정확한 맥락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공지영의 문학이 한국 문학의 미래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 문학의 중요한 현재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대중주의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역시 공지영은 한국 문학의 중요한 현재성을 보여준다.
한국 문학의 중요한 현재성
공지영의 소설이 대중들에게 폭넓은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원인은 체계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지만, 특히 공지영 소설이 보여주는 ‘위안의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국 소설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유독 공지영의 이 선전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 사형수와 방황하던 중산층 여성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 그리고 사형수의 죽음을 통한 이별이라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한 철없는 중산층 여성이 절대빈곤으로 유발된 범죄의 순환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은 살인범으로 전락, 이제 사형수의 운명으로 전락한 수용자를 만나게 된다. 물론 그런 수용자를 만나고 있는 이 여성 역시 인생에 대한 비관 때문에 수시로 자살을 연출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정서적 한계상황에 봉착한 문제적 인물인 것이 사실이다. 한 사람은 경제적 빈곤이 인생을 파국으로 이끌었고, 그를 바라보는 한 여성은 내면의 파탄이 파국 일보 직전까지의 상황으로 그를 내몬 셈이다.
이런 상처받은 두 인물이 죽음을 눈앞에 둔 한계상황에서 서로의 지나온 삶을 온전히 껴안으면서, 급기야는 마술적 감정이라 해야 마땅할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당연한 결과지만 그 사랑이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수용자가 사형당하게 되자, 여자는 절규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간단한 스토리다.
공지영이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두 남녀의 만남은 마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극적인 만남을 극화한 이야기처럼, 현실에서는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판타지의 실현 가능성과 그것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리얼리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여자의 갑작스러운 사랑에의 몰입은 ‘연민’의 극대화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런 선택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대중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공지영 소설에 대한 대중적 환호를 이끌어내는 주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위안의 수사학인 것이다.
공지영의 소설을 비판하는 많은 평자들은 그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발성되는 감상주의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공지영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역시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던 페미니즘에 대한 격렬한 인식론의 밑에서 오히려 도도하게 울려퍼졌던 것은 청춘의 감상주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공지영이 와 같은 작품을 통해 하층계급 여성들의 생에 대한 태도를 공감적으로 서술할 때조차, 그것은 ‘연민’이라는 대중적 감상에 호소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또 이것이 봉순이 언니를 둘러싼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을 역설적으로 무디게 한다는 지적은 그것대로 타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대책없는 선량한 태도
작가의 독일 체류 시절이 많은 부분 함축되어 있는 역시, 소설 속에는 현실에 상처받은 다채로운 인물, 특히 역사로부터 청춘을 박탈당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인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일관되게 연민을 동반한 공감의 제스처로 나타나고 있다. 공지영은 그의 소설을 통해, 페미니즘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또 사회적 빈곤과 이에 따른 삶의 전락을 배경으로 배치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구조적 원인이 아니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상처받은 자들의 내면에 대해 서술자나 주동인물이 혼연일치의 감성으로 동화되고 있는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위안의 수사학, 공감적 연민의 증폭, 갈등적 상황을 파생시키는 구조적 해결책이 아닌 마음의 교류와 같은 양태에 대한 고백적 서사가 공지영 소설에 대한 대중적 읽기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공지영 소설의 인물들은 최근작에 올수록 감성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 역시 일종의 ‘착한 사람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도 세속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구조적 모순의 척결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의 대상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식의 의식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 연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을 정서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한 평범한 인간이 갖기 마련인 무거운 부채의식과 죄의식의 해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소설이 날카로운 현실에 대한 각성을 가능케 할 불편한 장르라는 세인의 통념을 무력화 한다.
실제로 내가 만날 수 있었던 많은 독자들, 특히 그 가운데는 공지영이 소설 속에서 묘파한 교도소의 재소자들도 다수 있었는데, 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작가가 공지영이었다는 점은 흥미롭게 느껴졌고, 공지영의 소설이 특히 젊은 학생들과 오피스걸을 포함한 젊은 여성들에게서 열광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부분은 시사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공지영의 소설이 뿜어내는 매력은 내면적으로 또는 상황적으로 고립되어 상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인물들에게, 거의 대책 없다고 표현해야 마땅할 연민과 위안의 시선을 던져주는 선량한 태도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일컬어 위안의 서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공지영은 문학적 대중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이 극대화된 위안의 서사학, 감상주의 또는 문학적 센티멘털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공지영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는 전문가들은 한국 문단에서도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또 연민이 아닌 인간의 존엄으로 대상인물을 상승시키려는 의지가 부족한 채, 오히려 대상을 타자화함으로써 소설가의 부채의식이 휘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평가들의 우려와 비판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심원적인 인간 탐구로 견인하는 계기
문제는 공지영의 소설에 열광적인 동의를 표하고 있는 독자들의 태도를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는 점에 있다. 나는 공지영의 소설에 대한 대중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역설적으로 오늘의 한국 소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현실에 대한 냉소와 비꼼, 또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반인간주의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반동적 독서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공지영의 위안의 수사학, 문학적 대중주의 노선은 한국 본격문학의 대중으로부터의 거의 완벽할 정도의 결여에서 파생된 것이면서도, 동시에 낮은 단계에서의 인간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시작해 좀더 심원한 소설적 인간 탐구로 독자를 견인하는 계기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의 중요한 현재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공지영 소설은 깊은 대중주의의 출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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