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만화가 조남준씨가 에 8년 동안 연재했던 시사만화 를 책으로 묶어 냈다. 연재된 만화 중에 시의성이 짙은 것들을 뺀 114편이 담겨 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만화들이다. 8년이란 세월은 무겁다. 작가는 그 세월을 인생의 10분의 1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거품 같은 놈의 10분의 1”이다.
그의 만화는 발랄하지 않다. 말장난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면적이진 않다.
의 한편 한편이 일정한 수준의 형식미와 이야기를 갖추고 있고, 패러디와 반전의 기법을 활용한다. 뭐니뭐니 해도 그의 장기는 반전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중견 정치인. 정상에선 세상을 좀더 멀리 많이 볼 수 있으니, 정치란 이렇게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 목소리가 묻는다. “정상에서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나요?”(‘다큐멘터리 정상시대’) 은행장과 정치인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는다. 얼마 받았는지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은행장이 답변만 하면 거짓말탐지기가 삐이~ 하고 울린다. 정치인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울린다. 마지막 장면. 검찰이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언론에 밝히려 하자 거짓말탐지기가 또 경쾌하게 울린다(‘거짓말 탐지기’).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계획적으로 성폭행한다. 피해자의 부모는 가해자의 부모에게 책임지고 결혼하면 합의하겠다고 말한다. 합의는 이뤄지고 모두가 행복한 결론에 이르렀다. 마지막 장면은 ‘남편’ 될 사람의 방문에 문을 걸어잠근 피해 여성의 창백한 얼굴이다(‘착각’). 반전은 모두에게 익숙한 논리를 이런 식으로 낯설게 한다.
조남준씨에게는 시인의 감성이 있다. 이것은 가끔씩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잔잔한 만화에서 얼굴을 내비친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보자. 어렸을 때 본 피 묻은 쌀알. 농촌 국도에서 자신이 탄 시외버스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를 치었을 때 사람들 사이로 빨간 피가 묻은 쌀알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것을 보았다. 어린이날 어떤 아버지. 막노동판에서 일할 듯한 복장인 아버지는 피곤에 절어 연방 졸았고, 아들은 아버지의 모자와 휴대전화를 차고 무척이나 들떠 보였다. 크리스마스 오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난 이른 아침엔 온 도시가 오바이트 물결로 출렁댄다. 그중에 라면만 잔뜩 보이던 독특한 오바이트가 있었다. 그것은 흥청대던 연휴에서 외로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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