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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

등록 2006-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비정규직의 삶을 담아낸 <부서진 미래>가 주는 충격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이것은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살수록 살기 힘든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의 이름은 비정규직이다.

<부서진 미래>(삶이보이는창 펴냄)는 진보 문예단체 ‘삶이보이는창’ 르포문학교실 1·2기 수강생들이 쓴 비정규직 인터뷰와 르포를 묶었다. 가정복지 도우미, 간병인, 건축설계노동자, 영화 스태프, 아르바이트생, 대학 경비, 학습지 노동자, 기간제 교사 등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비정규직은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정금자씨. 남편 사업이 망해 서울로 올라와 처음 찾은 일이다. 간병인은 자신을 환자 생의 마지막 친구라 여기며 잠도 거의 못 자고 뼈빠지게 일했다. 나라가 주인인 서울대병원은 연 2400만원의 운영비밖에 들지 않은 간병인 무료 소개소를 폐쇄시키고 강남에 월 임대료가 2억원인 초호화판 건강검진센터를 세웠다. 유료 소개소들이 들어와 월 회비를 받아먹으며 간병인들을 혹사시켰다. 그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건축설계 노동자 장달수씨. 1990년 운 좋게 대형 설계사무소에 취직했다. 365일 수당 없는 야근, 철야로 인한 인간관계 파괴에 시달리며 버텼다. 떡값 관행과 공공기관마저 돈놀이에 나서는 현실을 보다 못해 설계노동조합을 만들어 해고 0순위가 됐다. 그 뒤로 막노동과 비정규직의 나날들이 시작됐다. 영화 스태프 최진욱씨. 쥐꼬리만 한 돈도 체불될 때가 많고,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얻어맞기도 한다. 400만원을 3개월로, 8만원을 3개월로 분할해 주겠다는 제작사들. 그런데 사람들은 “너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고 묻는다.

구로공단이 화려하게 탈바꿈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외환위기 이후 슬금슬금 비정규직을 늘려가던 기륭전자는 2005년 생산직에 정규직이 10명도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5년 계약직 노동자들의 초임은 64만1850원. ‘잡담’이 해고 사유가 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다.

기간제 교사 원경미씨. 학원 강사를 하다 교사가 천직임을 깨닫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엔 주당 25시간 수업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학교 안 관리자들의 모습에 지쳐가고 있다. 학기가 끝날 쯤에, “재임용권은 나에게 있다”고 협박하는 교장, 자신은 주당 12시간을 수업하면서 기간제 교사를 혹사시키는 교무부장….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신자유주주의의 그림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고통은 ‘사회적 고통’이다. 그래서 이들의 하소연은 ‘얼음 작살’처럼 시리다. 이런 르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변했다. ‘궁상스런’ 이야기들은 인기가 없다. 그건 우리의 맨얼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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