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획일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사람 잡는 정체성>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 잡는 정체성>(아민 말루프 지음, 박창호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질문을 붙들고 늘어진다.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에서 태어난 기독교도다. 1979년 종교분쟁에 휩싸인 모국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살육과 차별의 양날을 가진 피 묻은 검이다. 그는 이슬람교도인가 기독교도 인가, 레바논인인가 프랑스인인가라는 질문에 드리운 거대한 함정을 파헤친다.
지은이는 시작부터 한 인간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소 장황하게 따지고 든다.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나 이외의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성별·민족·종교 등 무수한 정보들로 이뤄진다. 문제는 단 한 가지의 요소가 다른 요소들을 압도하고 그 인간을 획일적으로 규정짓게 되는 현상이다. 아랍에서 발칸반도에서 그랬듯, 살육은 어느 날 갑자기 종교와 인종으로 자신을 규정짓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강요는 공동체의 광신도들뿐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의 사고와 습관 속에서도 이뤄진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언제나 하이드의 얼굴을 숨긴 지킬 박사, 잠재적인 살인자다.
장황한 정체성에 대한 논의 끝에 이제 아민 말루프는 이슬람에 대해 입을 연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 중 가장 오해받는 부분일 것이다. 서구는 이슬람이 본질적으로 배타적인 사회를 만든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최소한 18세기 이전까지는 이슬람이 기독교보다 훨씬 관용적인 종교였음을 역설한다.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으로 얼룩진 기독교와 달리 이슬람은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면서 그곳의 이교도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이 근대화를 거치면서 다른 문명들을 모두 자신의 ‘표준’ 아래 줄 세우면서부터 이슬람은 관용을 버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민 말루프는 오늘날 이슬람에 관한 중대한 오해를 지적한다. 때로는 종교가 사회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유럽에 일방적으로 내몰린 아랍 사회가 이슬람 전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은이는 ‘대안적인’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애쓴다. 세계화가 획일화로 변질될 때, 오히려 세계의 ‘나머지 부분’의 사람들은 정체성의 위협을 받고 배타적이 된다. 따라서 세계화의 가능성을 활용하기 위해선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해야 하고, 그 공존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 언어의 문제가 그렇다. 이 책의 한 가지 결점은, 대중을 설득시키기 위해 너무 과도한 의욕을 쏟다 보니, 다소 장황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민 말루프의 논의 속에서 우리는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도 있다. 혹은 동성애자, 혹은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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