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우리 옆집 아저씨는 일요일이면 휴일이 감사하다고 손수 만든 깃발을 집 앞에 내건다. 중학생 조카는 종이컵이 싫다고 양철컵을 손목시계처럼 차고 다닌다. 나는 가끔씩 콜라의 강한 세척력을 암시하고자 락스통에 콜라를 부어 마신다. 물론 이 얘기들은 상상이며 머리에 꽃을 다는 사건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경쾌함이 부족한 세상이다.
관절을 움직여 만드는 일반인들의 동작은 ‘춤’이라기보단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세포’ 정도가 되는데, 이 동작이 배양과 증식을 거치면 ‘사건’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위적인 조작들의 집합체가 공공선에 반하는 경우엔 도청, 구타, 구속류의 ‘뉴스’가 되어 세상을 들썩거리게 만든다. 밥그릇 안의 쌀알들이 “날 잡숫고 즐겁게 사시오”라며 칼로리를 제공해줬건만 남는 건 악다구니다. 그리하여 ‘사건’에 피곤해진 우리는 문화인들에게 퍼포먼스를 의뢰해보려 하나 노래·그림 같은 공연·전시들은 ‘사건’보단 ‘상품’이 되려 한다.
얼마 전 음악 재생기 안의 세 곡을 감상하고 감동했다. 휘트니 휴스턴의 <아임 에브리 워먼>(I’m every woman)은 난자 기증의 환상을, 서태지의 <필승>은 예고된 체념을,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는 성과주의에 대한 힐난을 보여주고 있었다. 난 당장 리어카에 앰프를 싣고
유쾌하게 엉뚱한 사건이 지닌 신비한 에너지의 미덕은 우리의 어깨와 목에 뭉쳐진 근육을 풀어준다는 데 있다(저 상상의 퍼포먼스가 유쾌하지 않다면 더 할 말은 없다만). 갈등 양상에 쉼표를 찍어넣고 풍선에서 바람을 빼준다. 하지만 문화방송 알몸 사건 때 인디라는 사람들도 퍼포먼스 대신 기자회견이나 침묵을 택하는 걸 보니, 엉뚱한 세포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하다. 다같이 엉뚱해야 퍼포먼스를 할 용기를 나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떡하나(‘동조’를 보장하는 집단주의는 우리의 본능인가).
암튼 2006년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엉뚱하면 좋겠다. 공공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무조건 엉뚱하면 좋겠다. 분노와 슬픔을 정화하는 데엔 머리띠나 성명서보다 엉뚱한 퍼포먼스가 더 효과적이다. 웃음은 비관을 지워준다. 행여나 누가 나의 ‘사건’을 이해 못해준다면 그저 자기 만족으로 그치고 말면 되고, 한 명이라도 인정해준다면 ‘대중문화’로 재빨리 명명해준다. 만우절에 상큼한 거짓말을 어떻게 해볼까 고민했다는 독일의 언론에 뒤지지 않기 위해 나도 노력하겠다. 다같이 엉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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